[아프로㉓] 아프리카 지도 위에서 청춘의 나래를 펼치다 – 손휘주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석사과정
[아프로㉓] 아프리카 지도 위에서 청춘의 나래를 펼치다 – 손휘주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석사과정
  • 손휘주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석사과정
  • 승인 2021.12.23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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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RO’는 국내 아프리카 전문가들의 모임이다. 외교부 한·아프리카재단에서는 이들의 활동을 소개한 책을 두 권 펴냈다. ‘Af-PRO, 한국과 아프리카를 잇다’는 제목의 단행본들이다. 한·아프리카재단의 허락을 받아, 이 책의 내용을 연재한다.[편집자주]

지리학을 전공한 손휘주 학생은 제대 후 복학하기 전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다. 전 세계 6개 대륙 중 어디를 갈지 고민하던 그는 한 지리 서적을 통해 아프리카 이야기를 접한 뒤 케냐로 향했다. 케냐에서 스스로 얼마나 편협한지 깨달은 손휘주 학생은 더 너른 세상을 보게끔 안내해준 아프리카에 점점 빠져들었다. 첫 여행이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였다면, 두 번째 여행은 다양한 이야기를 수집하여 아프리카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깨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아프리카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보다 참신한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여긴 손휘주 학생은 또 한 차례 아프리카행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 여행길에서 오히려 자신의 한계와 맞닥뜨리며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사람들에게 여행 경비를 투자받는 대신 책을 출간하여 보상할 예정이었으나, 본인이 짠 여행 계획으로는 약속한 책을 완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여행을 중단하고 귀국하여 아르바이트를 하며 투자금을 갚아 나갔다. 이 과정에서 자신에게 실망한 그는 1년 반을 일과 글쓰기로 보낸 뒤, 마지막 아프리카 여행길에 올랐다. 그 길에서 오랜 시간 물음표로 남겨둔 의문에 비로소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바로 자신이 아프리카에 강한 애착을 품어온 이유를 말이다. 아프리카를 통해 여러 차례 성장통을 겪으며 성장한 손휘주 학생의 청춘이 고스란히 담긴 아프리카 답사기에 귀 기울여 본다.

지리학도, 아프리카에 첫발을 내딛다

2013년 전역 후 멀리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어디를 가면 좋을까. 해답을 찾던 중 1학년 수업 시간에 인상 깊게 읽은 책 <분노의 지리학>을 다시 꺼내 찬찬히 읽었다. 책 말미에 다다라서 등장한 구절을 읽고서야 비로소 목적지를 정했다. ‘수십만 년 동안 아프리카는 인류를 기르고 단련시켰으며 전 세계로 내보내어 이 행성을 영구히 바꾸어 놓았다. 아프리카의 시대, 아프리카의 차례가 다시금 돌아올 것이다’라는 구절이었다. 아프리카는 나에게 완전히 낯설고 새로운 대륙이었다. 설레면서도 두려운 감정 속에 아프리카행을 결심했다. 첫 번째 아프리카 답사의 목적지는 케냐였다. 아프리카 55개국 중 가장 정보를 얻기가 쉬웠던 4개국으로 이집트,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냐가 있었다.

그중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영어권 국가, 주변 국가의 언어, 자연 또는 문화경관의 다양성 등 여러 기준에 부합하는 곳이 케냐라고 생각했다. 목적지를 결정한 후 현지에서 합류할 수 있는 케냐 NGO의 봉사 프로그램을 찾았다. 지리 답사가 목표였으나 정보가 많지 않아 답삿길에 나서기가 조심스러웠기 때문에 봉사활동을 하며 현지 적응 기간을 가지는 동시에 답사를 준비할 요량이었다. 봉사활동을 할 지역을 결정할 때는 기후와 인구를 기준으로 삼았다. 케냐 동부의 건조한 곳보다 서부의 습윤한 곳에 더 많은 인구가 살았고 경관도 다채로워 인근에 관광지도 많았다. 그래서 서부 지역의 한 산촌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선택하여 3주간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한 지역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관여하는 프로그램으로 오전에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거나 의료 봉사를 하고, 오후에는 학교에서 학생들과 토론을 하거나 가정 방문을 다녔다.

그렇게 3주간의 봉사활동이 끝난 이후에도 나는 왜인지 홀로 답사를 떠나겠다는 결심이 서지 않았다. 외국인에게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태도나 외지인이 다닐 만큼 대중교통 인프라가 잘 갖춰지지 않은 상황 때문에 적응 기간이 더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두 번째 봉사활동을 이어갔다. 다만 이번에는 건조하고 인구도 적은 동부 지역으로 가보기로 했다. 다행히 같은 기관에서 동부에도 봉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케냐를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산촌을 돌아다니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어느 주민의 마당 앞에 놓인 길을 지나쳐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처음 봉사를 했던 서부 지역의 한 마을에서는 집주인이 나와 통행료를 요구하곤 했다. 동부 지역에서도 남의 집 마당 앞을 지나갈 일이 생겨 조심스럽게 한 발씩 내딛는데 주인이 집에서 나와 내게 다가왔다. 순간 ‘역시’ 싶었다. 그런데 집주인은 통행료를 요구하기는커녕 악수를 청하더니 차를 권했다. 내가 케냐 사람을 잘 모를뿐더러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부끄럽기도 했지만 동시에 또 다른 지역을 가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밀려왔다. 서부와 동부의 작은 마을들을 경험하며 용기 내어 답사를 준비하게 되었다.

케냐 지리 교과서와 지리부도를 구입하여 동선을 짰다. 동선을 완성한 뒤 수도인 나이로비(Nairobi)로 돌아가 거기서부터 케냐를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케냐 관광 비자가 3개월간 유효했으므로 내게는 6주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처음에는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3일 정도 지나자 그 판단이 틀렸음을 직감했다. 거점이 되는 소도시마다 하룻밤 묵으며 이동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나, 한 지역을 하루 내에 둘러보는 일은 어려웠다. 지리학도로서 시장, 길, 터미널, 기차역, 공공시설, 공장 등 다양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시장을 가더라도 사람들을 관찰하며 이 사람의 임금은 얼마인지, 이 물건들은 어디에서 왔으며, 저 가격을 받아 생계가 유지되는지, 사람들은 어디에서 살며 가족 구성원은 어떻게 되는지 등 궁금증이 물밀 듯 밀려왔다. 하지만 매일 이동해야 하니 사람들과 친해질 겨를이 없었고, 친해지지 못하니 사적인 질문을 하기도 어려웠다. 도시와 마을을 이동하며 다양한 경관은 많이 접했으나, 심도 있게 도시와 마을을 들여다보고 현지 사람들을 이해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 자못 아쉬웠다. 그럼에도 다양한 장소를 직접 가본 경험 또한 중요한 만큼, 그 부분에서는 소기의 목표를 이뤘다고 위안했다.

지리학도의 아프리카 유랑기

케냐에서 돌아온 후 블로그에 답사기를 올렸다. 3개월간의 짧은 답사였지만 경험을 글로 푸는 과정에서 현장에서 놓친 것들이 보였고 애정도 깊어졌다. 복학한 후 지리학 수업에서 배운 이론들을 그 자리에서 아프리카와 연결하기도 했다. 미처 의식하기도 전에 머릿속이 아프리카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케냐와 비슷한 입장에 놓인 여러 개발도상국을 다녀오기도 했는데, 케냐에서 받은 만큼의 감동과 울림을 느끼지 못했다. 다른 국가들을 경험할수록 스스로 왜 아프리카에 심취하는지 의아할 정도로 깊이 빠져들었다. 2015년 3학년이 된 나는 취업 준비를 시작하면서 부모님과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길 겸 아프리카 가족 여행을 구상했다.

부모님과 좋은 시간을 보낸 후, 혼자 남아 남부 아프리카 답사를 이어갈 생각이었다. 부모님은 계획이 썩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여행 기간을 9일로 단축하고 목적지를 사람들이 많이 찾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위주로 일정을 변경하는 등 타협점을 찾은 끝에 겨우 부모님을 설득하여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여행 첫날부터 모든 근심과 걱정을 날려버릴 정도로 부모님은 큰 만족감을 드러냈다. 특히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에 큰 감동을 하였다. 아프리카의 매력에 사로잡힌 부모님은 그때부터 내가 아프리카 관련 활동을 하는 데 있어 든든한 조력자로 곁을 지켰다.

부모님을 보내고 홀로 남은 나는 에스와티니, 모잠비크, 짐바브웨, 보츠와나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둘러봤다. 이때의 답사는 케냐를 갔을 때와 달리 또렷한 목적을 띠었다. 케냐를 다녀온 후 주변 사람들에게 생생한 답사기를 들려주거나 블로그에 사진과 글을 정리하여 올렸을 때 돌아오는 반응들을 보며, 다른 사람들 또한 내가 처음 오류를 범했듯 아프리카에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편견을 한 번 깬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의 편견도 깨주고 싶었다. 그래서 두 번째 답삿길에 올랐을 때는 스스로 편견을 벗고 이들의 생활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고, 궁극적으로는 다른 사람의 편견을 깨는 쪽에 답사의 목표를 두었다.

3학년이었기에 짧은 답사로 지리학의 모든 중요한 요소를 아우를 수 없지만 특정 장소나 건물, 우연히 만난 사람을 각각의 중요한 요소로 삼아 그와 관련한 이야기를 균형 있게 푼다면 그것이 모여 하나의 아프리카 콘텐츠가 되리라고 믿었다. 처음 케냐를 갔을 때는 단순히 호기심에 간 것이라면, 두 번째 방문은 사람들에게 아프리카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목적을 뒀던 것이다. 3학년이던 2015년 말까지 나는 블로그 활동을 열심히 했다. 아프리카 관련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스스로의 의지로 애정을 쏟아 만든 콘텐츠였다. 그런데 조회 수를 확인해보면 아프리카 콘텐츠를 소비하는 비율이 현저히 낮았다. 오히려 의뢰와 보수를 받고 만들었던 다른 대륙 국가들의 콘텐츠가 훨씬 높은 조회 수를 기록했다. 사람들이 아프리카에 관심이 없으니 새로운 정보를 올려도 감흥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3번째 답삿길에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다

더 영향력 있는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크라우드펀딩에 도전했다. 사람들에게 투자금을 받아 여행을 다녀온 후 책을 출간하여 보상하는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사람들을 설득하는 동시에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고 답사에 임하기 위해 구체적인 답사 계획과 출판 기획안을 만들었다. 남부 아프리카에서 가보지 못한 서쪽 지역부터 에티오피아까지 5개월 동안 11개국을 촘촘히 잇는 동선을 짰다.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올라가는 경로를 택한 이유는 비구름이 대륙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시기여서 반대 방향으로 이동해 최대한 비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크라우드펀딩에 성공하여 편안한 마음으로 답삿길에 오른 나는 한 달이 지나면서 큰 난관에 봉착했다. 케냐를 다녀온 후 만들어간 콘텐츠와 비슷한 깊이의 이야기를 만들 거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케냐 답사기는 한 국가에 3개월간 머물며 정리한 콘텐츠였다. 5개월 동안 11개국을 답사하며 비슷한 깊이가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물론 케냐 안에서도 여러 지역을 다뤘지만 한 국가에 속해 있었기에 그 저변에 놓인 경제, 정치, 문화, 종교 등의 거시적인 배경은 유사했다. 그런데 세 번째 답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일주일 머물다 나미비아로 넘어가면 다시 한 국가의 배경지식을 공부해야 했다. 나미비아에 적응할 때쯤 되면 보츠와나로 건너가면서 또 새로운 나라를 공부해야 했다. 답사 결과가 깊이 있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약속한 바가 있으니 스스로 채찍질하며 나아갔다. 그런데 탄자니아에서 의지가 꺾였다. 동아프리카에 속하는 탄자니아는 그동안 지나온 남부 아프리카와 정말 다른 세계였기 때문이다. 결국 3개월의 일정만 마친 뒤 돌아왔다.

인생에서 가장 큰 좌절감을 맛본 때였다. 말없이 귀국하여 바로 취직했다. 약속한 책을 낼 수 없었기에 여러 사람에게서 받은 투자금을 갚을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월급을 받을 때마다 투자금을 차근차근 갚아 나갔다. 문제는 교수님과 선생님들이었다. 그분들은 돈을 돌려받기를 거부했다. 어른들께 억지로 돈을 보내드리는 것도 예의가 아닌 듯하여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분들은 대체로 지리 분야 전문가분들이었다. 수업 자료로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으로 3개월 동안 찍은 사진을 정리했다. 수백 장에 이르는 사진들을 압축하여 메일로 보내려고 하니 성의 없게 느껴졌다.

PDF에 사진들을 첨부한 후 언제 어디서 찍은 사진인지 제목을 덧붙였다. 여전히 성의 없어 보였다. 지리전문가더라도 아프리카는 그분들께도 낯선 대륙임을 알고 있었다. 지도를 그려 사진이 어디쯤에서 촬영된 것인지 표시하고 그곳의 지역 정보과 경험을 간단히 써 내려갔다. 수개월에 걸쳐 만든 PDF 파일을 사과 말씀과 함께, 가장 큰 지지를 보내주었던 교수님께 보냈다. 그 파일을 본 교수님이 이대로 책이 되겠다면서 출판사를 소개해주었다. 이렇게 2018년 <동남부 아프리카(지리 포토 에세이)> 책이 세상에 나왔다. 책이 출간된다는 사실은 감사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채워나가는 일이 반성문을 쓰는 일과 같았기에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독자들로부터 자신이 알던 아프리카가 다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는 기분 좋은 반응을 접하기도 했다. 특히 고등학교 지리 선생님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 보람을 느꼈다.

마지막 답사와 새로운 도전

책이 나온 때는 학부생으로서 마지막 학기를 몇 개월 앞둔 때였다. 세 번째 답사를 중단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아픔으로 남아있었다. 다시 동아프리카로 가서 학부 시절 답사의 종지부를 찍고 싶었다. 아디스아바바행 비행기 표를 예약했고 지도를 펼쳤다. 이번만큼은 직접 모든 돈으로 여행을 떠나 나 자신과 아프리카에 집중하기로 했다. 세 번째 답사의 종착지로 계획했으나 가지 못한 에티오피아에서부터 네 번째 여행을 시작했다. 한 달간의 에티오피아 일정을 마치고 케냐로 넘어온 나는 고향에 온 듯 마음이 편안했다. 이른 새벽 나이로비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내려놓고 키베라(Kibera)로 향했다. 키베라는 동아프리카 최대의 슬럼이다. 처음 케냐를 여행했던 2013년, 홀로 키베라를 가려 했을 때 사람들이 모두 나를 말렸다. 위험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케냐를 답사하며 목도한 키베라의 위생 상태는 매우 열악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활상을 관찰하고 대화하며 그곳 또한 평범한 동네라는 것을 배웠다. 5년이 지난 2018년, 키베라를 다시 찾은 나는 역시나 그곳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그 순간, 내가 아프리카를 좋아하는 이유가 특별하지 않음을 알았다. 순수하게 그곳에서 그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한 것이었다. 케냐에 이어 우간다, 르완다, 탄자니아를 답사할 땐 발에 날개가 달린 듯 가벼웠다. 생각지 못했던 풍경과 사람들과의 만남은 동아프리카에 대한 애정을 더욱 키웠다.

학부 시절의 마지막 답사에서 돌아온 뒤 계획대로 마지막 학기를 다니며 취업을 준비했다. 졸업 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아프리카중동팀의 연구인턴으로 근무하다 대학원 진학을 결정했다. 대학원에 입학한 목적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동아프리카 도시를 대상으로 현장 연구를 하는 것이다. 대학원 첫 학기에 개발도상국 대도시와 비공식 거주지를 공부하며 현장 연구를 준비하였다. 연구 지역은 나이로비에서 가장 밀도가 높은 곳이라 여겼던 곳,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 곳인 키베라로 정했다. 케냐를 답사하던 때, 하루는 키베라에서 청년들 대여섯 명이 쓰레기로 막힌 길가의 수로를 뚫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들은 제대로 된 장비 없이 쓰레기를 훑었다.

정부가 방치한 곳이어서 주민들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런 경우 누군가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면 다른 주민들이 소소하게나마 사례를 하는 방식으로 거리의 유지보수가 이루어졌다. 주민들이 한화로 50원을 내는 모습을 보며 나는 외국인이니 5천원 내지 1만원을 내야 하나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청년들은 ‘당신은 주민이 아니라서 돈을 낼 의무가 없으니 그냥 지나가요’라고 했다. 동아프리카의 최대 슬럼이자 우범 지역으로 악명 높은 키베라에서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또 하나의 편견을 깼다. 이곳에서도 사람들이 앞장서서 나은 주거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알았다. 또한 국제기구들이 다양한 개발협력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위험하다는 인식, 정부의 부족한 관심과 지원, 효과적인 사업 시행의 어려움 등이 맞물린 것인지 실제 국제사회의 지원은 많지 않다. 주민자치 활동에 더 나은 장비를 제공하는 일이 다른 지역에 큰 건물을 지어주는 것보다 비용대비 효과적이면서 실현 가능한 사업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현지 사람들의 공간 인식을 지도에 기반하여 파악하고,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지점과 요소를 직접 선택할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 어쩌면 지역 커뮤니티와 주민이 참여하여 주도하는 개발협력 사업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키베라를 대상으로 심상지도를 활용한 실증 연구를 한 학기 동안 준비했다. 그러던 중 코로나19로 인해 계획을 보류하게 됐다. 현재는 공간계량, 준실험적 정책평가, 무작위 대조군 연구(RCT)를 공부하고 있다.

대학원 진학의 두 번째 목적은 지난 아프리카 답사기를 정리하는 것이다. 2013년부터 아프리카를 답사하고 공부한 이유는 아프리카를 좋아하는 마음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들과 아프리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도 컸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가르쳐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아프리카를 소개하여 오해를 풀어주는 방식으로 말이다. 특히, 우리와 우리 집만큼 아프리카 사람들과 그들의 보금자리도 소중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대학원을 졸업한 뒤, 사람들이 아프리카를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을 완성할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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