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 한인 모국 귀환’을 보는 러시아 기자의 눈..."그들은 사할린에 남겨놓은 게 너무 많다"
‘사할린 한인 모국 귀환’을 보는 러시아 기자의 눈..."그들은 사할린에 남겨놓은 게 너무 많다"
  • 이종환 기자
  • 승인 2021.12.26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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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국가적으로 한인 귀환 정책 시행”...러시아TV 크세니아 콜치나 기자 취재
사할린 시가지
사할린 시가지

러시아 TV에서 사할린한인 귀환을 소개하는 5분35초짜리 프로그램이 방영됐다. 12월19일 방영됐다. 취재는 크세니야 콜치나 기자가 맡았다. 이 프로그램은 사할린 한인들의 모국 귀환을 러시아에서는 어떻게 보는지 읽을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진행해온 사할린한인 귀환 정책을 되돌아보는 의미가 있어서 이를 소개한다.<편집자주>

사할린에서 한국 소고의 리듬은 거의 민속 음악이다. 사할린은 러시아 지도에서 인구수로 러시아인들 다음으로 한인이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유일한 지역이다. 소고와 북을 치는 동안 풍물패들은 거의 혼연 일체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모국과 동포들과의 혼연일체의 상태는 사할린 한인들의 모든 세대가 전 생애 동안 이루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와서야 이들은 모국과 다시 결합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미 10여 년간 재외동포들의 한국 귀환 및 재외동포 지원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민족을 불러 모으는 것은 사실상 한국 정부의 국가적인 구상이다. 한인들의 모국 귀환 사업을 주제로 한 영화도 제작되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사할린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 중이다. 러시아에게는 이것이 손실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그 누구도 억지로 붙잡아 두지 않을 것이다.

올해 1월 한국은 오랜 세월 기다려온 사할린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 즉 사할린 한인들의 모국 귀환에 관한 법률의 시행에 들어갔다. 이 법에 따르면 사할린으로 강제로 끌려온 한인 고령층 세대뿐 아니라 그들의 직계 후손, 즉 자녀들까지 이제 한국으로 영구 귀국할 수 있다.

영구 귀국 신청서 접수가 발표되자 1,063명이 영구 귀국을 신청했다. 자신들이 이미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있는 이들은 사할린 한인의 역사의 뿌리인 모국으로 돌아간다.

주블라디보스톡 한국총영사관 고문희 총영사 대리는 “사할린 동포들은 일제가 1938년부터 1945년까지 사할린으로 강제 이주시킨 한인들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할린 한인들의 경우 한국 국적 취득 절차를 거치는 것이 아니라 국적 회복 절차, 즉 본국 귀환 절차를 거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20세기 초반인 1910년부터 1945년까지 한국은 일본 제국의 식민지였다. 당시 남사할린은 일본 가라후토 현이었다. 사할린 섬에는 석탄채굴, 삼림벌채, 철도 건설이 필요했다. 이러한 혹독한 노동을 위해 일제는 한인들을 강제 이주시켰다. 일제는 사할린에 최소한 1만6천명의 한인들을 보냈다. 히로히토 일본 천황이 일본군에게 무조건 항복하라고 명했을 때 사할린 한인들의 모든 고난이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1945년 8월 사할린 코르사코프 해안 항구에 한인들이 모였다. 그들은 자유를 얻었고 모두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그곳에서 그들을 고국으로 데려갈 배가 수평선에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도 이들을 모국으로 귀환시키지 않았다. 그때부터 이 언덕의 이름은 ‘눈물의 동산’ 또는 ‘슬픔의 동산’이라고 불렸다. 사할린 한인들의 비극을 기념하는 기념상이 이곳에 세워졌다. 두 개의 동상은 헤어진 한인 가족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들은 영원히 서로를 향해 가고 있지만 결코 만나지 못한다.

강제 이주당한 한인들은 반세기 동안 가족과 친지를 보지 못하고 고국에 가지 못했다. 많은 한인들이 한국식 이름, 일본식 이름, 러시아식 이름이라는 세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서류상의 착오로 이들 중 일부는 국적이 없는 무국적자가 되었다.

사할린 주립 박물관, 진 율리야 역사학 박사는 “나의 어머니와 이모도 현재까지 러시아 국적도 소련 국적도 갖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출생 증명서가 다른 서류들과 다르게 표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이모는 한국식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실수로 착오가 생겼다. 당시 공무원들은 이런 착오를 자주 저질렀다”라고 말했다.

1991년 유즈노사할린스크와 서울, 대구를 연결했던 원격 화상회의는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다. 50년 만에 처음으로 헤어진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가 서로를 마주 보고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할린 한인 귀환 프로그램이 생겨나는 기초가 되었다. 1992년 한국과 일본 정부가 공동으로 사할린 한인 귀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1945년 8월15일 이전에 출생한 사람들이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또 다시 러시아에 있는 자기 가족을 놓아두어야 하는 상황에 부딪혔다. 당시 이들은 자녀를 동반하고 귀국할 수 없었다.

소 옐레나는 2000년 어머니를 서울에 떠나보내며 울었다. 이제는 그녀의 딸이 그녀를 보내며 울고 있다. 새롭게 제정된 사할린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옐레나는 90세된 노모를 방문객으로서가 아니라 같은 한국인으로서 돌볼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장기 거주한 세월로 인해 사할린 한인들의 정신 세계는 많이 변화되었다. 그리고 두 개의 국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그들에게 두 개의 조국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옐레나는 “나는 러시아를 완전히 떠나는 것은 아니라고 느낀다. 나는 절대로 러시아를 완전히 떠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러시아는 나의 조국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고, 우리가 아는 모든 것, 우리가 배운 모든 것, 이 모든 것을 러시아가 우리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다.

사할린 섬에서 러시아인들과 한인들의 문화는 너무나 밀접하게 얽혀있어 이제는 서로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별은 많은 슬픔을 안겨주었지만 사할린 한인들만이 갖게 된 민족적 현상을 일으켰다. 그리고 한국 국적을 얻기 위해 떠나간 사람들이 러시아 국적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그들이 사할린에 남겨놓은 것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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