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204] 김학순 할머니
[아! 대한민국-204] 김학순 할머니
  •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 승인 2022.01.31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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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김정남(본지 고문, 전 청와대 사회교육문화수석)

미국의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즈(NYT)가 2021년 10월25일자 신문 부고면에서 김학순 할머니에 대한 기사를 다뤘다. 1997년 12월, 폐질환으로 세상을 떠난 지 24년 만이다. “더 이상 간과하지 않겠다(Overlooked No More)”는 기획 시리즈의 일환으로 김 할머니의 생애와 증언이 이끌어낸 역사적인 의의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이다. 이 시리즈는 NYT가 1851년 이후 제대로 보도하지 못한 부고기사를 늦게나마 기억하자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2018년 3월에는 이 기획을 통해 유관순 열사를 추모한 바 있다.

기사는 1991년 8월14일, 김 할머니가 일본 종군위안부 증언을 위해 처음으로 TV 카메라 앞에 섰던 장면으로 시작한다. NYT는 “’전(前) 위안부 여성’이라는 할머니의 타이틀 자체가 일본의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수십년간 부인해 왔고, 지금도 부인하고 있는 역사를 똑바로 마주 보게 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 할머니는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지배하던 시기, 명백한 강압과 폭력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수치심 탓에 숨어있어야 했던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대변한 것이다. 김 할머니의 용기 있는 증언은 다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이끌어냈을 뿐 아니라, 성착취를 당한 세계 각국의 피해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친 역사적 유산이 됐다고 NYT는 평가했다.

게이 맥두걸 전 유엔 특별보고관은 최근 한 컨퍼런스에서 “내가 보고서에 쓴 어떤 것도 김 할머니의 30년 전 증언이 미친 영향력에 비하면 그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맥두걸은 지난 1998년 특별보고관 시절, 보고서를 통해 일본군의 위안소 운영을 반인륜적인 범죄로 규정한 사람이다.

김 할머니가 최초로 공개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 종군위안부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낸 이후, 1992년부터 한국의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수요일마다 집회가 열렸고, 쏟아지는 증언과 비난에 견디다 못한 일본정부는 1993년 역사적인 사과문을 발표했다. 당시 일본 측은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으로 위안소를 설치하고 운영하는데 관여했다”면서 위안부 동원에 ‘강압적인’ 수단을 사용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비록 완벽한 인정과 사과는 아니었지만, 김 할머니의 용기 있는 증언이 이끌어낸 ‘역사적인 한 발자국’이었다.

한일관계를 전공한 역사학자 알렉시스 더든 미 코네티컷대학 교수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김학순 할머니는 20세기에서 가장 용감했던 인물 중 하나”라며 “그녀의 진술은 그 주장을 밑받침할 문서 증거를 찾아내도록 유도했고, 이것은 유엔으로 하여금 전쟁범죄와 반인륜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 일본 정부에 책임을 묻는 시발점이 됐다”고 말한다.

기사는 말미에 김 할머니가 생전에 한 마지막 인터뷰를 재조명하고 있다. 김 할머니는 온라인 매체인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필요하다면 110살이나 120살까지 살고 싶다”면서 “그들(일본정부)의 진심 어린 사과를 듣는 것 이외에 더 바라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자신의 위안부 사실을 밝힌 뒤에도 지치지 않고, 살아있는 내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법적인 책임과 배상을 요구했으나 그의 생전에는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김 할머니가 첫 증언을 한 8월 14일은 ‘세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제정됐고, 2007년 미 의회의 위안부 결의안이나 2010년 시작된 해외 위안부 기림비 설립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김학순 할머니는 감추어진 반인륜적 역사의 진실을 인류 앞에 드러나게 한 용기 있는 여성 영웅으로 길이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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