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의 붓을 따라] 처음 받은 손자의 세배
[이영승의 붓을 따라] 처음 받은 손자의 세배
  • 이영승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 승인 2022.02.07 0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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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두 번째 맞은 설날이다. 금년은 생전 처음으로 손자의 세배를 받은 설이라 특별히 감회가 있었다. 태어난 지 10개월째인 우리 민형이는 아직 세배를 할 줄 몰라 아들 내외가 억지로 시켰다. 그래도 세배는 세배다. 우리 부부가 아들 내외의 세배를 받을 때는 아내가 손자를 안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들 내외가 자기 아들에게 세배를 했다면서 한바탕 웃었다. 지방에 살고 있는 딸 내외는 코로나가 극심하여 올라오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한복을 앙증맞게 차려입은 외손녀가 영상통화로 세배를 받았으니 다녀간 것이나 진배없다.

내가 어릴 적에는 1년 365일 중에 설날만큼 좋은 날은 없었다. 할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는 섣달 그믐날이면 삼촌 3형제 내외분들이 사촌들을 줄줄이 앞세우고 버스에서 내려 20리가 넘는 길을 걸어서 한해도 빠짐없이 오셨다. 그때는 설날이 왜 그렇게도 기다려졌는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뛴다. 그 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60여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설이라는 의미는 해마다 퇴색되어 갔다. 경제 사정이 당시보다 백 배 이상 풍요로워진 요즘 아이들이 세뱃돈으로 동전 한 닢을 받고 그렇게도 좋아했던 마음을 어찌 상상이나 하겠는가.

아내는 처음 손자를 맞이하는 설이라 그런지 예년보다 훨씬 가슴이 설레는 것 같다. 아들이 평소에 좋아하는 음식을 즐겁게 만들고, 돌아갈 때 싸 줄 반찬도 이것저것 준비한다. 손자와 외손녀의 세뱃돈을 각각 챙기고, 며느리 세뱃돈 봉투도 따로 만들었다. 손자만 무탈하게 잘 키우면 그것으로 족하다며 며느리는 주방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한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데 내 몫까지 다 차지할까 봐 은근히 걱정될 정도다. 2년 넘게 외손녀를 돌봐주느라 무척이나 힘겨워했는데 어디서 저런 에너지가 솟아나는지 참으로 신기하다.

아들이 설 전날 전화를 했다. “처갓집에 가서 자고 설날 부모님께 세배가려고 하는데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옛법이야 어떻든 우리는 그렇게 하라고 흔쾌히 대답했다. 바깥 사돈어른이 최근 재취업을 했는데 그 이유가 당신이 직접 번 돈으로 외손자 장난감을 사주고 싶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전해 듣고 감동했었다. 사돈네는 결혼한 자녀 남매 중에서 민형이가 첫 손주다. 외손자가 얼마나 귀여웠으면 그런 생각까지 했겠는가. 아내가 지방에 사는 외손녀를 돌봐주느라 손자에게 자주 가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민형이를 돌봐주는 사돈 내외분께 고맙고 미안한 마음 가득하며, 아들에게도 처가에 관심을 가지라고 늘 깨우쳐 주고 있다.

솔직히 우리 부부도 아들에 대한 애착이 누구 못지않다. 하지만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장가간 아들은 이미 내 자식이 아니다.’ 라는 말이 세상 사람들의 상식이 된지 오래다. 그런데도 그 시류를 깨닫지 못해 자식과 갈등하며 노후를 보내는 사람도 적지 않으니 자식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기가 쉽지는 않은가 보다. 그러나 우리는 아들이 처가보다 친가에 더 잘 하기를 바랄정도로 어리석지는 않다. 인생은 생각하기 나름이라 했다.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더 큰 것이 부모의 마음이 아니던가! 양가에 50% 균형만 지켜줘도 참으로 대단하고 기특하다 생각하며 살리라.

창밖을 바라보니 아파트 외곽의 산책로에 아이들이 눈썰매를 타느라 아우성이다. 내년 이맘때쯤이면 우리 민형이도 저 아이들처럼 뛰어다닐 수 있을 것이며, 스스로 세배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년 설에도 눈이 내린다면 나도 손자에게 눈썰매를 태워 주고 싶다. 열정을 다해 쓴 내 책도 세월이 흐르고 나면 아무도 읽지 않아 방치되고 버려질 것이다. 하지만 손주들이 자라서 할아비를 생각하며 읽으리라 상상하니 에너지가 솟는다. 오랜만에 설다운 설을 쇠게 해준 손자와 며느리가 너무 고맙다.

필자소개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2014)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이사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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