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성칼럼] ‘우리 민족끼리’에서 ‘열린 민족주의’로
[정대성칼럼] ‘우리 민족끼리’에서 ‘열린 민족주의’로
  • 정대성 문화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2.12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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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성 문화 칼럼니스트
정대성 문화 칼럼니스트

2022 남한 대선 경쟁이 한창이다. 분단국가로서 북한의 목소리는 어떨까? 북한 ‘우리 민족끼리’ 방송이 남한 대선 후보들을 논평했다는 기사가 신문보도로 전해졌는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 대한 논평이 빠졌다고 한다. 북한으로서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당선돼 ‘우리끼리’ 놀았으면 좋겠다는 뜻일까? 아니면, 북한 매체 ‘메아리’가 이재명 후보를 “푹 썩은 술”이라고 논평한 것이면 족한 걸까? 북한 내부인사의 논평으로, 이 후보를 “영웅호색” 식으로 재해석하고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적도 있다. “그런 사람이라야 우리와 말을 통할 수 있다”고 했단다.

그렇다고 북한이 한국 더불어민주당과 정치외교, 평화적 대화를 잘 할 수 있는 것일까? 북한은 뒤로는 민주당을 통해 한국의 거액의 비자금을 받았으면서도, 또한, 남한에는 유엔사 해체를 요구하면서도, 자신들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고, 남북미 3자 정상회담 때는 문재인 대통령을 낙동강 오리알로 만든 것처럼 보였고, 개성공단 남북 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등 괜히 남한에 대한 고압적인 태도를 보여 민주당의 입지를 곤란하게만 만들어, 앞뒤가 안 맞는다는 느낌을 줬다.

아무튼, 대선 경쟁 승자가 누가 됐든지 간에 바이든 미 대통령과 한국 새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 간에 남북미 3자회담이 가져질 것은 확실하다고 할 때, 생각나는 의문이 있다. 북한이 그렇게 금과옥조처럼 내걸고 있는 ‘유훈정치’를 정말로 성실하게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필자는 원로 다큐멘터리 작가인 김광휘 작가와 함께 영화제작을 시도하는 기회가 있어 시나리오 작업을 한 적이 있다. ‘한국해군의 아버지’, 손원일 제독의 부인으로 '한국해군의 어머니'라 불리는 홍은혜 여사의 마산 여고 시절을 그린 김 작가의 소설『무궁화와 사쿠라』를 일본어로 번역하고 일본어 시나리오를 작성해 한일 합작 영화를 제작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필자는 더 나아가, 손 제독의 부친인 손정도 목사에 관해서도 공부했고, 내친김에 손 목사로부터 손 제독으로 이어지는 대서사시 같은 장편 시나리오를 쓴 바 있다.

이미 한국에서 언론보도도 많이 나갔지만, 손 목사 집안은 한국 근현대사의 격동기에 참으로 기구한 운명을 겪었다. 후일, 북한 최고지배자가 되는 김일성의 출신이 ‘동녘의 예루살렘’, 평양의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는데, 만주로 이민 간 그의 부친 김형직 선생은 장로로서 세상을 떠나기 전에 어린 아들 김성주(김일성의 유명)에게 유서를 써서, 만주에 와계시는 손 목사에게로 가라는 유언을 남겼다. 소년 김성주는 그 유서를 들고 손 목사한테로 갔고, 손 목사는 그를 따뜻이 받아들여 학비도 대주며 키워주었다.

손목사는 어려서부터 사숙에서 한학을 닦아 평양으로 관리등용시험을 보러 갔다가 조 목사 집에서 기독교를 접해 상투를 잘라 시험을 포기해 집에서 쫓겨난 다음, 감리교 선교사 문요한을 만나 감리교에 들어가 경성에 와서는 정동 제일교회에 참여했다. 그는 ‘청국 목사’, 중국 선교사로 북경에 파견돼, 신민회의 조성환을 만났고, 미국의 안창호, 조성환 등과 정보를 교환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다, 정동교회에서는 3.1운동을 준비하게 된다. 민족대표 33명에 들어갈 뻔한 손 목사는, 거사를 파리 평화회의에 알릴 일을 담당해 해외로 나간다.

이때 잘 알려지지 않은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복벽(황실부활)의 마지막 기회의 상실이었다. 즉, 대한제국 황실의 이강을 모시고 파리로 가기로 돼 있었는데, 이 일을 사전에 안 일본당국이 국경지대에서 이강을 체포했다. 손 목사가 복벽을 뜻했든 안 했든 간에 복벽의 가능성이 소멸된 것이었다. 그래서 상해에 세워진 것이 대한제국 임시정부가 아니라, 대한민국 임정이 됐다. 즉, 공화정이 확정돼 총성 없는 무혈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임시대통령 자리에 이승만이 지목되자, 미국에서 잘 살던 이승만에게 편지를 써서 상해로 오는 고생을 마다하게 한 것이 손 목사였다.

그의 아들 손원일은 상해중앙대학 항해과를 졸업하고 일찌감치 독일 상선을 타 현장 경험을 쌓으면서 독일어도 익혔지만, 실은 짧은 기간이지만, 동경으로 가서 와세다대학 강의록으로 공부하기도 했다. 지일(知日)로 극일하려는 것이, 1945년 일본 패망으로 그 기회가 주어졌고, 이승만 대통령과의 신뢰관계로 바로 해군 제독으로 취임하게 된다. 그러다, 6.25 한국전쟁이 터지자, 이 집안의 기구한 운명이 극에 달하게 되는 셈이다. 손 제독은 아버지가 키운 김일성의 북한군을 상대로 싸우게 된 것이다. 남한의 반공체제 하에서 북한포로나 협력자들에게 알게 모르게 개죽음이 주어지고 있을 때, 손 제독은 국군이 같은 국민을 죽이면 안 된다며 그들을 해군공창에서 봉사시켜 목숨을 구해주었다.

필자가 쓴 시나리오는 이런 데서 끝나지만, 실제 역사는 이어진다. 손 제독의 아들, 현대중공업 등의 임원이었던 손명원 회장이 북한을 방문한 것이다. 필자는 그를 직접 만나 방북 시 실화를 들은 바 있다. 손 회장은 평양의 특별처소를 배정받아, 김일성을 직접 '알현'했고, 긴 시간에 걸쳐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고 한다.

그때 김일성은 겸허한 자세로 남한의 경제성장, 북한의 경제난을 솔직히 인정하고,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 남북경협을 이뤄낼 것이라고 적극적인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나아가, 김일성은 그러기 위해서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언명했다 한다. 손 회장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그 대담을 비디오로 찍었다.

그런데, 남한으로 귀국하자 현 국정원에서 그 비디오를 잠시만 빌려달라고 해서 가져갔는데, 영영 안 돌려준다고 했다. 그 비디오는 어디로 갔을까? 북한이 ‘유훈정치’를 정말로 실천한다면 핵을 포기해서 남북경협, 민족번영의 길로 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국정원이 안 돌려줬다면 그것은 또 무슨 뜻일까? 혹 남한 또한 북핵을 경협보다 앞세운 본심을 감추면서, 미국 비위에 맞춘 것일까?

종전선언은 허울 좋게 들리지만, 유엔사 해체는 중국이나 러시아의 한국 침략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유엔사와 미국, 일본과의 동맹을 유지하면서, 남북경협을 이루고, 만주와 연해주, 몽골까지 세력을 뻗치는 외교철학이 아쉽다.

2022 대선에서, 이런 외교 이치를 깨친 자가 새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 민족끼리’(고립된 자주국방, 위태로운 남북통일)에서 ‘열린 민족주의’(나토 같은 공동방어 체제의 유로공동체 같은 동북아공동체 하의 남북평화통일)로 가야 하는 것이다.

(오는 2월15일은 손원일 제독 42주기, 2월 19일은 손정도 목사 91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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