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호 기자가 만난 북녘땅-44] 캐나다 주병돈 박사의 평양생활 10년
[송광호 기자가 만난 북녘땅-44] 캐나다 주병돈 박사의 평양생활 10년
  • 송광호 재외동포신문방송편집인협회 고문
  • 승인 2022.02.14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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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어떻게 바뀌어왔으며, 또 어떻게 변화해 갈 것인가? 1989년 이래 북한을 8차례나 방문해 취재한 송광호 토론토 주재 언론인이 방북 때마다 보고 느낀 점들을 시리즈로 정리했다. ‘바뀌어온 북한’에 초점을 맞춘 이 글은 현재와 같은 남북경색국면에서 긴 눈으로 북한의 새로운 변화를 조망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편집자주>

주병돈 박사(과기대)

북녘땅 평양대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자진 북으로 들어간 한 한인과학자(박사)가 있다. 그는 지난 2010년 10월 평양에 과학기술대학(일명 평양과기대)이 창설(2010년)되자 곧 교수로 취임한다. 그리고 근 10년간 성심성의껏 자원봉사 후 토론토로 귀향했다. 그는 북한에서 선발한 수재들만 모아 놓고 차원 높은 학문을 가르쳤다. 캐나다 시민권자인 주병돈 박사(82세) 관련 얘기다.

평양과기대는 개교한 지 얼마 안 돼 학생들이 모두 선망하는 사립명문대학으로 우뚝 섰다. 과기대 졸업생은 ‘군 복무 면제’로 인기가 높았다. 대학 공용어가 영어로, 강의교재는 모두 영어원서를 사용한다. 강의는 물론 시험과 리포트 역시 영어를 쓴다. 교내 식당을 비롯해 어디서든 영어로 소통한다.

이를 위해 대학생들은 입학 후 1년간은 영어몰입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다행히 북한정부는 평양과기대 경우 자유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자본주의 교육을 승인했다. 북한교육성과 한국의 사단법인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이 공동으로 설립한 북한 최초의 사립대학(이공계 특수학교)이 출범케 된 것이다.

주 박사에겐 확고한 자신만의 신념이 있었다. 교육(강의)에 대한 뜨거운 열성과 의지로서 반쪽 조국을 살린다고 믿었다. 북한 젊은이들에게 시장경제를 가르치면 통일이 더 빨리 오리라는 확신이다. 한국 자본주의와 북한 주체사상사의 간극을 좁혀 이념 차를 해소시킴이 교육목적이었다. 그것이 북한학생을 가르치는 유일한 이유였다.

그는 긴 안목으로 한반도 미래를 내다봤다. 남북이 통일되면 그의 제자들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연결해주는 ‘교량 역할’을 해준다고 믿는다. 이 수재 학생들이 졸업 후에는 북한기관 각처에서 교수, 금융, 행정가 등 관리직 리더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엘리트 학생들이 시장경제와 인간존엄의 중요성을 습득했으니, 북한사회에 교두보 역할을 기대할 수 있지요”라고 말했다.

평양과기대 수업

주 박사는 또 “다른 외국 교수들 역시 자원봉사 하는 이유가 모두 마찬가지입니다”라고 전했다. 외국인 교수들은 미국, 영국, 독일, 스위스, 스웨덴, 캐나다 등지에서 온 박사·석사급으로 모두 월급이 없다. 자비지출의 완전 봉사자들이다. 교수들은 ‘양성된 학생들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기독교 사랑으로 정신무장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국경이 완전 봉쇄돼 외국인 출입은 불가능해 대학은 북한교수진과 몇 외국교수의 원격강의로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주 박사는 평생을 오직 자신 소신과 신념대로 살았다. 그의 일상을 보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쓸모가 없다(Faith without deeds is useless)”라는 속담이 떠오른다. 그는 캐나다 한국과학기술자협회장을 역임했다. 또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은퇴 장로다. 오랜 북미직장생활 퇴직 후에는 부인과 함께 선교사역 겸 북한자원봉사에 뛰어들었다. 북한행 직전에는 중국 호북성 삼협대학(2년)과 연변대학에서 5년간 가르쳤다.

그 역시 평양과기대 교수생활 중 일체의 봉급이 없다. 여행휴가나 왕복항공료 등 모든 경비 역시 본인이 100% 부담한다. 모든 비용은 다행히 과거 미국회사연금과 캐나다 국민연금 등으로 충당돼 큰 어려움은 없었다.

주병돈 박사의 간략한 프로필이다. 1939년생으로 경북 경주 출생. 부산고와 서울 문리대 물리학과 졸업(학사). 미 터프츠(Tufts)대학석사(실험물리학). 보스턴(Boston)대학 물리학박사(이론물리학).

그는 보스턴 대 물리학 강사근무 후 세계적인 보험사 에트나(AETNA) 생명보험회사에 입사한다. 그때 물리학자에서 보험수학자로 변신했다. 그는 오랜 세월 개인/단체보험 통계책임자로 중역이 되고, CFO, CEO(한국지사)가 됐다. 주 박사는 물리학뿐 아니라 수학, 문학 등 예술부문에도 조예가 깊다.

주병돈 박사와 제자들

그는 물리학 전공으로 수학이나 컴퓨터, 논리학 등의 구조를 깊이 습득하게 됐다. 오랜 보험회사 간부직으로 물리학과는 자연히 멀어진다. 평양과기대에서는 확률 미적분학 및 계량경제학, 통계학, 재무관리, 투자학, 화폐금융, 외환론을 강의했다. 교수 숫자가 100여명에서 20명으로 줄어들면서 9년간 매년 학기를 4개월(학기마다 90분씩 3과목)씩 가르쳐야 했다.

학생들은 수재들이라 성적이 아주 우수했다. 그는 “내가 가르친 과목 중 하나가 확률통계론 인데 평균 97점이에요. 100점짜리 학생도 나왔지요. 이들은 시장경제를 배웠고, 강의를 통해 인간존엄 중요성을 머릿속에 자리 잡게 만든 겁니다”라고 했다.

그의 근 10년간 평양생활은 무척 귀한 인생경험이었다. 그러나 늘 즐거움만 안겨주는 생활은 아니었다. 그럴 때 나는 ‘이곳에 순수 자원 봉사하러 왔다’는 사실을 자각하면 불편한 마음이 사라졌다. 그는 “인생은 자신 마음먹기에 달렸어요”라고 말했다. 틈이 나면 대동강 옆 외교관클럽 아틀리에에서 아크릴 페인팅(그림)을 그렸다.

나는 주병돈 박사를 토론토 근교에서 30여년 만에 만났다. 늘 신념에 차 있는 활기찬 모습은 예전 그대로였다. 정말 나이는 그에겐 숫자에 불과해 보였다. 일단 자신의 북한사역이 마무리됐으니, 이제는 제2의 중남미사역을 위해 스페인어 공부 등 준비에 열중하고 있다고 한다. 반가운 만남 뒤 주 박사는 수년 전 썼던 한편의 글을 보내왔다. 평양생활 편모를 그린 수필내용을 소개한다.

평양 대동강 아침

어쩌다 대동강에
- 주병돈(평양과기대 교수/박사)

‘사천성 들어가기가 천당 가기보다 더 힘들다’는 중국 옛말이 있다. 중국 사천성은 사방이 험준한 산으로 싸여있고 옛적엔 내륙으로 통하는 길은 장강뿐이었다. 그 장강을 거슬러 삼협 협곡에 이르면 하늘처럼 솟은 두 암벽사이로 흐르는 급류가 엄청나다. 거기 암벽에 밧줄을 매어놓고 힘센 사공들이 밧줄을 당기며 물결을 거슬러 상류로 올라갔다. 평생 뱃사공을 하다 지쳐 죽으면, 암벽에다 구멍을 파고 그 안에서 편안히 쉬게 했다. 오늘날에도 그 구멍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지난날의 슬픈 스토리다.

오늘날 평양 들어가기는 사천성 가기보다 더 힘들다. 평양은 높은 산도 없다. 고구려 장수왕이 ‘집안’에서 ‘평양’으로 전도할 때 대성산으로 건너왔다. 고작 높이가 얼마 되지 않는 산이다. 그런데도 큰 산이라 하여 방어하기 좋다는 생각이었다. 그곳에 대성산성을 쌓고 백성이 모여 살았다. 안학궁을 축조하고, 세상을 떠나면 석실 위에 흙은 덮은 무덤을 만들어 안장했다. 오늘날에는 ‘안학무덤 떼’라고 불리 운다.

나는 매 학기 평양으로 가는 북한사증(비자) 얻기가 그 전날까지 알 수가 없었다. 학기 시작 날은 진작 정해졌음에도 그렇다. 중국 연길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무작정 심양 행 야간열차를 타면 다음날 아침 도착한다. 심양 도우미가 나와 역에서 우리 여권들을 받아 급히 북한영사관으로 달려간다. 시간은 오직 한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다행히 사증(비자)을 금세 받게 되면, 곧 도우미는 고려항공으로 뛰어가 항공표를 구입한 뒤 심양 타오센 공항으로 달려온다. 우리는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오후 2시 반에 평양으로 떠난다. 그런데 이 ‘007 작전’이 오랜 세월 단 한 차례도 실패한 적이 없다.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이다.

평양과기대

이 북한 비자를 며칠 전에만 발급해 줘도 이 마음고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동료 MIT출신 미국인 교수 R에게 내 희망사항을 전했더니, “그런 기대는 오직 정상적인 나라(normal country)에서만 이루어진다”며 웃으며 넘긴다.

평양의 봄은 대단하다. 사방에 벚꽃과 라일락이 가득하다. (묘)향산에 진달래가 온 산을 덮는다고 한다. 이번 봄에도 동료교수들은 묘향산을 다녀왔지만, 나는 바빠 놓쳐버렸다. 대동강 강변에 자리 잡은 모란봉에서 대동강에 이르는 비탈, 청류 벽에 앉아 있는 부벽루. 그리고 연광정 주변에는 꽃이 가득해진다.

명나라 주지빈 이 조선에 사신으로 와서 이 연광정에 올랐다가 이 풍광을 보고 감탄하여 ‘천하제일강산’이라 쓴 간판을 걸어 놓았다. 그런데 병자호란 때 정태종이 들어와 ‘천하’란 말이 건방지다고 톱으로 잘라버렸다고 한다.

5월이 되면 정말로 하이네(Heine)시처럼 ‘놀라우리만치 아름다운 5월에’을 연상케 된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대동강 강변길에는 하나님 섭리에 따라 아름답고 풍성한 봄이 찾아오는데, 그 길을 거니는 행인은 여전히 배고프기만 하다.

평양과기대 학생들은 숙사에서 강의실이나 식당을 갈 때는 꼭 열을 지어 큰소리를 부르며 속보한다.

평양 대동문(고구려)

“장군님 안 계시면 조국은 없고, 장군님 안 계시면 우리도 없다.” 나는 “장군님 안 계시면 조국은 없고, 장군님 안 계시면 주병돈이도 없다”라고 흉내 내 불렀다. 내가 광증이 들었나 보다. 장군님이 세상을 떠난 후엔 ‘척척척…’이라는 새로운 행진곡이 등장했다.

학생들은 무지하게 수재들이다. 내 강의과목 중 하나가 ‘확률과 통계학’인데 나는 높은 수준으로 가르친다. 작년에는 평균 94%가 나왔다. 보통 몇 개 중국대학에서 강의해 보면 평점 40%가 고작이다. 그것도 수준을 낮춰 강의했는데 그 정도다.

어느 날 평양을 미화시키기 위해 사방에 잔디를 심는데, 학생들이 모두 동원됐다. 공부라면 억척같은 학생들도 이를 배겨나질 못한다.

주체사상의 중심부에서, 자유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를 강의할 수 있게 허락해 준 것도 기적중의 기적이다. 하나님의 역사라고 본다. 나는 씨를 뿌리기만 하면 되고, 수확은 하나님에게 맡길 뿐이다.

우리의 조상 아담, 이브가 에덴에서 쫓겨난 사실이 내 핏속에 흘러들어와 있다. 그 아름다운 곳을 찾아 헤매다 좌절하는 날, 하나님을 만나 에덴동산을 찾았다. 예수님을 따라가면 하늘나라에 옮겨 놓은 그곳으로 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주병돈 그림(평양)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와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수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요한계시록 22장 1-2장) 예수님은 오늘도 준엄하게 내게 말씀하신다. 하늘나라에 옮겨 놓은 에덴동산에 올 때, 혼자서 오지 마. 많이들 데리고 같이 와”라고 하신다.

루크(Luke)는 호주사람으로 미혼교수이다. 평양과기대에 와서 북쪽 학생들을 섬기기 원한다고 했다. 이메일과 스카이핑 면접을 거쳐 드디어 그를 초청하자 그는 너무 기뻐했다. 나는 나대로 우리 동포도 아닌 백인이 북한학생들을 섬기겠다니 감격했다.

그런데 몆 주 있다 연락이 왔다. 그는 “그간 선교 다니느라 오랫동안 어머니를 못 보았으니, 9월이 아닌 11월 평양에 갈 수 있느냐”고 문의를 했다. 나는 좀 언짢았지만 “10월 초까지는 꼭 오라”고 답했다. 그는 또 매우 기뻐했다. 그런데 지난 5월 그가 봉사하는 베트남 외국대학으로부터 “죄송합니다. 루크 교수가 지난 토요일 하노이에서 암살당했습니다”라는 이메일을 받았다. 황당했다. 나는 그렇게 기뻐하던 그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마음이 울적하면 ‘김일성 광장’에 나가길 좋아한다. 확 트인 광장과 앞에 놓인 대동강 때문이다. 모퉁이를 돌아가면 ‘충성의 다리’ 가까운 곳에는 “쑥섬”이 보이기 때문이다. 쑥섬 모래밭에서 참수당한 토마스 선교사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광장에 가벼운 비가 내리고 있다. 폴 베를렌느(Paul Verlaine)시처럼.

“거리에 비 오듯이 내 마음에 비가 내린다.”(2015년 5월 평양에서)

필자소개
강원도민일보 북미특파원, 재외동포신문방송편집인협회 전 대표
대한민국 인권상 수상, 관훈클럽 국제보도상 수상, 한국신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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