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의 붓을 따라] 가슴 설레었던 하루
[이영승의 붓을 따라] 가슴 설레었던 하루
  • 이영승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 승인 2022.02.14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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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돌싱들의 짝짓기 TV 프로가 인기절정이다. 그들이 하루빨리 결혼해 행복한 가정을 꾸렸으면 하는 것이 국민의 절절한 바람이리라. 결혼이 늦어지고 이혼도 많은 세상이니 어찌 그러하지 않겠는가. 글이나 드라마도 거의가 사람 사는 얘기며, 그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는 것이 러브스토리다.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사랑보다 성스러운 사랑도 없을 것이다. 원효는 명성 높은 수도승으로 당시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계율을 파계하고 결혼하였다. 그의 아름답고 거룩한 사랑에 여러 날 취했다가 급기야 그 사랑의 발자취를 찾아 탐방 길에 올랐다. 모처럼 목적 있는 기행이고 멀지 않은 곳이라 발걸음도 가벼웠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원효는 40세가 넘어 신라 29대 무열왕(김춘추)의 둘째 딸과 결혼한다. 요석공주는 명문 귀족 집안의 무장(武將)인 김흠운과 결혼하였으나 백제와의 조천성(충북 옥천) 전투에서 전사했으며, 딸 둘을 데리고 요석궁에서 살고 있었다. 원효가 길거리에서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내게 빌려주겠는가? 내가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깎으리”하고 노래를 부른다. 아무도 그 노래의 뜻을 알지 못했다. 때마침 지나가던 무열왕이 그 노래를 듣고 ‘귀부인을 얻어 자식을 낳고자 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딸과 맺어주고자 신하를 보내어 원효를 궁으로 데리고 간다. 두 사람은 자연스레 만나게 되었으며 원효는 공주의 절세 미모에 매료되어 결혼한다. 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러브스토리인가!

원효는 결혼 후 한때 소요산 기슭에 초막을 짓고 수행했는데 요석공주도 아들 설총을 데리고 별궁에 살면서 남편의 득도를 빈다. 동두천시 상봉암동 소요산관리사무소 동편에 지금도 ‘요석공주별궁지’가 남아있다고 한다. 이를 알게 된 이상 주말부부로 한가한 일상이고 호기심도 많은 내가 어찌 이를 확인하지 않을 수 있으랴. 소요산은 16년 전 포천 지사장 시절 가본 적이 있다. 그때는 교통체증이 엄청 심했으나 지금은 구리~포천 고속도로가 개설되어 막힘이 없다. 하지만 산천은 예나 변함이 없었다.

드디어 현장에 도착했다. ‘요석공주별궁지(瑤石公主別宮址)’라고 새겨진 작은 비석을 보는 순간 왠지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요석공주의 남편을 향한 절절한 사랑 때문인지, 아니면 세월의 무상함을 느껴서인지 알 수가 없다. 소요산에 오르면 원효가 공주를 위해 이름을 지은 공주봉(公主奉)이 있다는데 혼자라서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원효는 신라시대의 명성 높은 승려이자 민족의 위대한 사상가다. 의상대사와 함께 당나라 현장대사의 법문을 배우려 요동까지 갔다가 첩자로 몰려 구금 끝에 풀려나 돌아왔으며, 10년 뒤 다시 가다가 중도 해골에 괴인 물을 마시고 진리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음을 깨달아 돌아온다. 그 후 크게 견성(見性)하여 ‘금강삼매경론’과 ‘대승기승론’ 등 240여권의 저작을 남겼으며, 귀족화된 불교를 민중불교로 전환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화엄연기(華嚴緣起)는 일본 고승이 원효의 생애를 그린 두루마기 그림인데 일본의 국보급 문화재이며, 현재 일본의 여러 사찰에는 우리나라에도 없는 원효의 저작들이 많이 보관되어 있다. 아들 설총도 유교의 거목으로 추앙받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3대 문장가이며 이두문자를 집대성했다. 경산시 삼성산 아래 그를 배향한 도동서원이 있다. 두 부자가 이에 이르기까지에는 요석공주의 영향이 상당했을 것으로 확신한다.

소요산을 뒤로하고 돌아오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공주의 미모가 얼마나 예뻤으면 계율을 파계하고 결혼했을까? 더구나 딸이 둘이나 딸린 과부가 아니던가. 도력 높은 성직자이니 외모만 보지는 않았을 터, 아마도 심성은 더욱 곱고 생각도 깨어있었으리라. 그러기에 남편의 득도를 지극정성으로 내조하고, 설총 같은 천재를 낳아 위인으로 길러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전 남편의 소생 딸을 잘 키워 둘째는 신문왕의 계비인 신목왕후가 되었으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이 얼마나 거룩한 사랑이며, 로미오와 줄리엣 사랑인들 어찌 이에 비하랴.

시장기를 느껴 가만히 생각하니 점심을 깜박했다. 길가 작은 음식점을 들어갔는데 언젠가 한 번 왔던 집이다. 오랜만에 먹는 보리밥이 그야말로 꿀맛이다. 멀리 소요산에 걸린 석양을 바라보니 가슴 설레었던 하루다. 내 남은 세월이 매일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

필자소개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2014)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이사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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