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성칼럼] 춘원 탄생 130주년에 ‘계몽의 변증법’을 되뇌다
[정대성칼럼] 춘원 탄생 130주년에 ‘계몽의 변증법’을 되뇌다
  • 정대성 문화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2.15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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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성 문화 칼럼니스트
정대성 문화 칼럼니스트

재작년은 단재 신채호 탄생 140주년, 작년은 가람 이병기, 인촌 김성수 탄생 130주년이었고, 각각 큰 행사들이 열렸다. 올해 3월4일은 춘원 이광수 탄생 130주년 되는 날인데, 과문인지라, 아무런 행사소식이 안 들려온다. 30년전에는 춘원을 둘러싼 활발한 토론이 이뤄져 큰 행사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춘원이 이른바 ‘친일문인’으로 평가절하돼있어, 그래서 그런 걸까?

30년 전에 MBC가 『춘원 이광수』라는 다큐멘터리를 작성했다. 배우 문성근이 춘원 역을 맡아 이른바 ‘변절’ 후의 학도병출정 연설까지 연기하여 재현한 것이 기억에 새롭다. 필자는 그 연설이 있었다고 하는 바로 그 강당이 아직 그대로 남아있던 동경 메이지대학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때마침 석사논문 주제를 춘원과 ‘계몽의 변증법’으로 정했던 때였다.

필자의 논고는 춘원의 ‘친일’행위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쓴 『계몽의 변증법』의 문제의식에 환원, 대입하면서 재해석해보고자 하는 최초의 시도였다. 완성도가 낮아서 실패작 논문이었지만, 필자의 문제의식은 몇몇 근현대 연구자들에게 자극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는 계몽, 문명이라는 것이 직선적으로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지그재그로 진보와 퇴보를 되풀이하면서 나선형으로 진행된다는 기본 모티프 아래, 희랍에 근원하는 서양문명이 야만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 유럽문화에 보이는 반유대주의에 대한 절망적 반론을 전개한 셈이다. 잘 알려진 대로, 그 배경에는 그들이 마르크스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독일 나치스와 소련, 그리고 미국의 물질 자본주의문명에, 인간정신의 퇴락을 봤고, 동시에 그들이 유대신학에 입각해서 인류의 구제를 계시하고자 하는 동기가 깔려있었다.

춘원은 후쿠자와 유키치, 나츠메 소세키, 토쿠토미 소호 같은 일본의 계몽주의 교육자, 작가, 언론인의 영향을 받았다. 우리는 나약한 소세키에게 문명에 대한 비관론, 회의론이 제대로 그늘을 드리우고, 힘센 후쿠자와, 소호 같은 낙관적 문명론자들이 문명의 야만성을 체득하는 사실을 목도한다. 예컨대, 황실중심주의자가 된 후쿠자와의 탈아입구론이 그것이다. 근대일본의 경우, 일본전통문화와 서양문물, 서구문명이 묘한 결혼을 했었다. 그런데, 우리의 춘원은 어떠한가?

마침, 지금부터 100년 전 즈음의 일이다. 작가로서 현대 한국어를 확립하고, 압도적 인기를 얻고, 나아가 2.8독립선언문의 기고자, 상해임정 『독립신문』 주필로서 명성을 떨친 춘원은 일개 작가활동에만 국한되지 않고, 허영숙의 권유로 국내로 돌아가 사회운동가로 나아간다. 도산 안창호의 영향 하에, 흥사단의 국내 조직인 수양동맹회(동우구락부와 통합하며 수양동우회로 개칭) 운동에 뛰어드는데, 국내 문화운동의 신호탄이 「민족개조론」(1922)이었음은 아이러니한 일이며, 단재에 의한 의열단의 「조선혁명선언」(1923)과 대조되는 바이다.

말하자면, 중국, 조선 개화파의 실패에 실망한 후쿠자와가 “중국, 조선은 일본이 관계를 끊어야 할 악우(구제불능의 불량배)”라고 규정한 것처럼, 무력노선에도 외교노선에도 해외독립운동에 한계를 느낀 춘원은 국내에서 무실역행, 실력양성을 내걸며, “나태하고 거짓말만 하는 조선민족성은 악”이라고 논파한 셈이며, 그 사상적 기저에는 이상화된 서양에 대한 동경과 이성, 계몽, 문명에 대한 순진한 신뢰가 있었던 것이다. 자명한 결과로서,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문화적 민족주의자들이 일망타진되어 고문을 통해 모두 이른바 친일파가 되거나 죽음으로 몰렸다. 즉, 문명의 대리인인 일본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확인되는 동아시아적인 특징에서 현시대에 중요한 새 시각을 도출해낼 수 있다. 춘원의 사상과 운동의 뿌리가 된 도산의 흥사단 등과, 일본의 아시아주의, 대동아공영권 구상 등은 서양사상이 아니라, 유교, 선비문화 등의 동아시아문화를 공통분모로 둔다. 그 배경에 있던 일선동조론은 유명하지만, 한편으로 일유동조론이 주창되고 있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시대에 재구성해보자면, 한국인, 일본인, 유대인이 다 한 가족이라는 한일유동조론이 성립된다.

30년 전, 필자의 논증은 서툴렀고, 애송이의 말장난으로 끝났다. 그러나, 이제 와서 보니, 필자가 미국망명유대인의 사상을 받아들이려 했다는 시도의 의미를 스스로 재평가, 재해석해보게 된다. 1945년 미국이 동경, 오사카에 대공습하고, 오키나와에 상륙,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특수폭탄’을 터뜨려, 일본을 패망시켰다. 그런 뒤, 한반도에서 국군에 의한 양민학살, 미군에 의한 평양 대공습, 상륙작전, 산간지대 게릴라전 등이 있어, 온 나라가 엉망이 되며 분단이 고착화되었다. 그 와중에 춘원이 사망했다. 고아였다가 문명에 희망을 찾음으로써 살고, 계몽으로 민족을 이끌던 춘원이 그 문명의 야만성에 의해 죽음을 당한 것이다.

한편, 유럽에서는 나치스의 유대인학살이 있었고, 영국 등의 중동에 대한 외교적 속임수가 있었고, 결국,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세워졌는데, 영국과 미국의 유대세력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가 확실화됐다. 동북아에서는 중국, 대만, 남북한, 싱가포르 등이 유지되거나 새로 세워졌고, 대다수 재일한국인들은 덕분에 먹고 살게 돼, 일부는 실은 일본사회를 지배하는 세력이 됐다. 춘원에게 모자랐던 것은 이런 냉엄한 현실, 심오한 진실에 대한 투철한 인식이었다. 도산을 죽음으로 몰고 간 폭력에 쫄쫄 매기보다, 도산이 뿌리내리던 광야에 눈길을 보냈어야 했다.

우리는 단순한 친일, 친미 논쟁과 신식민주의, 세계화 비판, 일본우익 비판, 얄팍한 음모론을 넘어서서, 이런 깊숙한 인식, 즉, 절망의 세계에서 신에게 선택받아 인류를 구제할 ‘한일유’라는 자각에 도달해야 한다. 오늘날도 ‘계몽의 변증법’이 전세계적으로 지속되고 있으며, 3주 뒤면 새 대통령을 뽑을 한국이 이른바 좌파건 우파건, 철학도 세계관도 없이 헤매고 있음을 볼 때, 춘원은 우리의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자기비판할 때의 거울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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