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의 붓을 따라] 민족의 선각자를 그리며
[이영승의 붓을 따라] 민족의 선각자를 그리며
  • 이영승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 승인 2022.02.17 09:3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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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 정승은 조선 전기에 18년간 영의정을 지낸 명재상이다. 그의 우국충정과 청렴을 세종이 얼마나 신임했으면 하루도 빠짐없이 그를 불러 접견했으랴. 세종 시대가 태평성대를 이룬 것도 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그는 송악산 두문동에 들어가 은둔생활을 했다. 태조와 방원이 그의 비범함을 알고 새 나라 건설에 동참해 줄 것을 수차 요청했으나 거절하다가 함께 은거 중인 제현들이 백성을 위해 응할 것을 권고해 결국 나가게 되었다. 그때 함께 은거하던 벗 정건천이 그와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지었다는 명시(名詩)가 심금을 울린다.

그대는 청운에 올라 떠나가고(君登靑雲去)
나는 청산을 향해 돌아가네(予望靑山歸)
청운과 청산이 이에 갈라서니(雲山從此別)
눈물이 벽라의를 적시는구나(淚濕碧羅衣)

황희 정승은 백두산 호랑이라 불린 김종서를 천거해 4군 6진을 개척하고 국방을 강화하는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 일로 임금의 총애를 받아 병조판서에 오른 김종서가 회의 때 자리에 비스듬히 앉아있는 것을 황희가 보고 “병판(兵判)의 앉은 자세가 바르지 못하니 의자 다리가 잘못된 모양이다. 어서 고치도록 하라”고 했다. 김종서가 놀라 자세를 고친 후 회의가 끝나고 황희가 자리를 뜨자 “내가 육진을 개척할 때 밤중에 화살이 책상머리까지 날아들어도 눈도 깜작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식은땀이 등을 적셨소”라고 했다. 이 일로 미안해진 김종서가 지방 순찰을 돌아오면서 꿀을 한 단지 구해 병졸을 시켜 정승께 선물했다. 고맙다는 인사를 기대했으나 황희는 대노하여 “이 꿀은 필시 뇌물로 받았거나 공짜로 얻은 것이 분명하다. 설령 개인 돈으로 구했더라도 녹봉을 받는 공인을 사사롭게 심부름시켜서야 되겠는가!”라며 꿀을 돌려보냈다.

황희 정승은 87세까지 영의정에 재임했으나 공직을 수행함에 있어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고 한다. 상주 옥동서원과 장수 창계서원에 제향 되고, 파주 반구정(伴鷗亭)에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세상이 다 아는 이야기를 새삼 거론한 것은 대선을 앞두고 돌아가는 나라의 꼴이 가관이기 때문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들이 요즘처럼 공사(公私)를 구분하지 못해 국민의 분노를 산 적이 있었던가? 우리 국민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나는 6.25 전쟁 중에 태어나 보릿고개를 겪은 세대다. 억압과 배고픔에서 벗어난 지 이제 겨우 50년인데 어쩌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공직자가 사명감을 잃고 부패한다는 것은 망국의 시작이라 했다. 그야말로 ‘나라의 세금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가 되었으니 이일을 어찌하랴! 목민심서를 쓴 다산이 다시 태어나면 통탄할 일이다.

코로나도 견디기 벅찬데 이 세태를 지켜보자니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없다. 모처럼 바람이라도 쏘이면 답답한 가슴이 터질까 싶어 차에 올랐다. 서울외곽고속도로를 달려 자유로에 들어서니 탁 트인 임진강이 나를 반긴다. 이 길은 내가 14년 전 고양지사장으로 근무할 때 여러 번 다녔던 곳이다. 먼저 반구정에 들러 청렴을 상징하는 황희 정승 영전에 묵념을 올렸다. 반구정 난간에 올라 임진강을 바라보니 14년 세월이 어제인 듯하다.

인근에 있는 율곡 선생 유적지를 찾았다. 율곡은 9번 치른 과거시험을 모두 장원급제한 불세출의 천재다. 선조는 조선의 역대 제왕 중에서 학문이 가장 뛰어났으며, 인재도 당대에 가장 많이 배출되었다. 하지만 선조는 율곡의 천재성을 인정하면서도 끝내 판서 이상 중용하지 않았으며, 구국의 충신 이순신도 신임하지 않았다. 자기보다 나은 인재를 시기했다는 설도 있고 그만한 그릇이 되지 못했다는 설도 있다. 어느 쪽이든 민족의 비운이 아닐 수 없다. 혹자는 율곡이 49세에 일찍 세상을 떠난 것도 선조의 편협된 통치에 화병이 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사가 만사’라는 사실을 모르는 통치자는 없을 터인데 예나 지금이나 그 자리에만 앉으면 왜 눈이 멀어지는지 참으로 어이없고 불가사의하다.

돌아오는 길에 차를 세우고 임진강을 바라보노라니 황희, 이순신, 율곡, 다산 등 민족의 선각자들 모습이 흐르는 강물과 함께 뇌리를 스쳐간다. 그분들은 하나같이 청렴을 덕목으로 삼고 실천했던 위인들이니 마땅히 오늘의 공직자들이 표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매운탕에 막걸리 한 잔 걸치고 나니 막혔던 가슴이 조금은 후련해지는 듯했다.

필자소개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2014)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이사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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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옥선 2022-02-26 14:29:32
감동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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