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의 붓을 따라] 공룡의 후예
[이영승의 붓을 따라] 공룡의 후예
  • 이영승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 승인 2022.02.28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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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시골에 살 때는 가축이 가족의 일원이었다. 집집마다 소와 개 한 마리는 기본이고 닭도 열 마리 정도는 길렀다. 소는 꼴을 베고 죽을 끓이는 어려움이 있고 개도 매끼 먹이를 챙겨줘야 하지만 닭은 스스로 먹이를 해결해 신경 쓸 일이 없었다. 어쩌다 도시락에 넣어주는 계란프라이와 소풍갈 때 싸주는 삶은 계란은 최고의 특식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닭에 대한 고마움을 알지 못했는데 최근 우연히 닭이 영특한 동물임을 알게 되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털이 없는 닭의 몸통은 공룡을 닮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작은 공룡의 한 종(種)이 바로 닭이라는 설도 있다. 반려동물을 대표하는 개는 사람의 눈치를 보며 아양을 떨지만 닭은 언제나 도도하다. 수탉의 벼슬은 마치 금관을 연상케 하며, 작은 체구에서 내는 울음소리는 천하를 진동시킨다. 닭의 울음소리는 언어마다 다른데 우리말은 수탉은 ‘꼬끼오’, 암탉은 ‘꼬꼬댁 꼬꼬’, 병아리는 ‘삐약’으로 표현한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운치 있고 아름다운 표현이 아닐까 싶다.

양계장에서 사육하는 닭의 수명은 대략 3년 정도이나 방목하여 키우면 10년 정도 생존한다. 수탉은 보통 암탉 20마리 정도를 거느릴 수 있는데 모든 암탉과 하루 2~3번 교접하여 매일 알을 낳게 하니 다른 어느 동물보다 정력이 센 편이며, 암탉을 거느림에 있어 편애하지 않아 암탉끼리 절대 시기하거나 싸우는 법이 없다.

머리 나쁜 사람을 흔히 ‘닭대가리’라고 하는데 이는 근거 없이 닭을 비하하는 말로 사실과 다르며, 고마운 닭에게 대하는 도리도 아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닭의 지능은 7세 아이 수준으로 동물 중에서 상당히 높은 편이며, 숫자 개념과 자기 인지능력이 있고 간단한 연산도 가능하다. 그리고 기대나 분노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으며 24가지 울음소리로 구애와 위험을 알리는 등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한다.

닭보다 못한 인간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많은 동물 중에 왜 하필 닭과 비교했을까 궁금했는데 이제 이해가 된다. 인간(여자)은 한 달에 한 번 배란하지만 닭은 매일 알을 낳으니 닭의 하루는 인간의 한 달과 같은 귀한 삶이다. 닭은 병아리를 부화시키기 위해 21일 간 먹지 않고 알을 품으며, 부화 후 50여 일 키워서 독립시킬 때까지 모성애는 눈물겨울 정도다. 새끼들의 배를 채우기 전에는 먼저 먹는 법이 없으며, 살쾡이나 독수리가 공격해도 물러서지 않고 목숨 바쳐 싸운다. 그야말로 살신성인의 경지로 이 기간의 닭은 가금류(家禽類)가 아닌 맹금류(猛禽類)로 변한다.

더 대단한 것은 새끼를 다 키운 후이다. 그토록 사력을 다해 키웠건만 독립시킨 순간부터 완전 남남이다. 나는 단순히 저능 동물의 생태라 생각했는데 자식을 키우며 인생을 더 많이 살아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인간은 자식을 독립시킨 후 ‘네 인생은 네 인생이고 내 인생은 내 인생’이라며 큰소리치지만 자식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에 비해 닭은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는 기대나 원망이 없으니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道)를 깨달았음이 아닌가 싶다.

인간을 위한 희생과 공헌은 정말 엄청나다. 우선 인간이 가장 많이 사육하는 동물로 2018년 기준 약 600억 마리 도축되었으며, 2위에서 7위(오리 26억, 토끼 22억, 돼지 13억, 양(염소) 9억, 칠면조 7억, 소 4억)까지 합해도 닭의 1/7이 안 된다. 중량으로는 체급 차이로 돼지, 소, 양 다음으로 4위다. 닭은 인류의 단백질 공급원으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동물이며, 천문학적으로 생산되는 계란(2018년 세계 인구 76억 기준 1인당 연간 161개 소비)까지 포함하면 그 영향은 더욱 크다. 만약 닭이 없었다면 인류는 만성적인 단백질 부족으로 오늘과 같은 생존이 불가능했을 것이란다.

사람들은 자칭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 한다. 이는 자화자찬이며 좀 더 겸손해야 할 것이다. 개미, 벌 등 미물도 어떤 측면에서는 인간보다 우월할 수 있으며, 공룡의 후예인 닭만 하더라도 분명 배울 점이 있다. 모든 동물이 생존경쟁을 하지만 인간처럼 종족을 잔인하게 죽이지는 않으며 상생의 이치를 알고 지킨다. 인간이 진정 지구상의 영장으로 존속하려면 먼저 닭의 지혜를 배우고, 은혜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이다. 나는 아직 애완동물을 길러본 적은 없지만 전원생활을 하게 되면 그동안 진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닭을 키우고 싶다.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 한 번 쳐다보는 노란 병아리!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필자소개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2014)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이사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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