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블루메리아 꽃과 교수할머니
[Essay Garden] 블루메리아 꽃과 교수할머니
  • 최미자 재미수필가
  • 승인 2022.03.14 0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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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세상을 답답해하며 숨이 막혀 살던 두해가 넘어갔다. 어느 사이 조금씩 고개를 내밀었는지도 모르게, 화분에 심어 놓은 블루메리아가 곱게 피어있다. 진분홍 색깔의 보석처럼 여러 겹으로 결을 이루며 피어있다. 오래전 이웃이던 교수할머니가 화분에서 한 뿌리를 툭 잘라 주었던 식물이다. 높낮이를 오락가락하는 매서운 봄날을 뚫고서 피어났다. 마치 나에게 삶의 새로운 희망을 주는 것처럼. 내가 이사 올 무렵에는 이웃에 여러 각층의 교육자들이 살고 있었다.

그중 한 분은 집의 역사 나이처럼 오십 년 넘게 살다간 건강학 여교수였다. 세 해전인가 보다. 대문 초인종 소리에 나가보니 할머니 한 분이 환자 배달 침대에 누워있었다. 퇴원한 환자를 싣고 온 구급 요원들이 집을 잘못 찾아온 것이다. 몇 달 사이에 몰라보게 달라진 앙상한 교수할머니. 나를 알아본 그녀는 내 이름을 부르며 힘없이 웃으셨다. 나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할머니 댁으로 응급환자 배달원들을 따라 들어갔다.

집 안에는 키다리 아들이 나를 반가워하며 어머니의 최근 건강상태를 횡설수설 설명했다. 평소 모자지간에 정이 없어 사무적으로 모시고 병원과 쇼핑을 갈 뿐이고 어머니도 함께 사는 걸 싫어했다. 물 한 컵을 달라던 부탁을 아들에게 전했을 때, 사기 컵의 물을 자기 엄마의 입에 거칠게 들이대던 아들의 불손한 태도를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낳아 길러준 어머니가 치매에 걸렸다며 빈정거리던 그의 말들이 충격적이었다. 85세까지도 남편을 태우고 병원을 들락거리던 할머니가 지팡이에 의지하며 삶을 버티었는데, 3년 전 영감이 떠난 후 지금은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아주 오래전 교수님의 가족이 한집에 살고 있었기에 나는 아름다운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하루는 그 분의 딸이 배가 볼록 올라와 있어 물었더니 임신한 채 파혼했다고 했다. 그 딸은 손녀 출산한 후 일 년 후에는 또 다른 남자와 관계하여 아들을 낳았지만, 어머니는 딸을 구박하지 않고 자식을 이해하면서 한 집에 데리고 살았다.

화가인 아들도 미혼이어서인지 오 십대 초반까지도 데리고 살았다. 교수님은 키가 크고 얼굴에 죽은 깨가 많은 분인데 딸도 그렇게 똑같다. 아버지는 투덜거리시면서 중학생 자식을 둔 나에게 당신도 자식을 키워보라며 한숨을 쉬곤 했는데, 교육자이던 어머니의 모성애는 남달랐다. 교수님은 나를 처음 만났을 때는 조금 거만한 표정이었지만, 어느 날부터 다정해지며 나를 예뻐하기 시작했다.

북한에서 미사일을 쏘고 긴장이 돌때는 한국에서 공부하는 내 자식을 어서 여기로 데려오라며 부부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런 후 공부를 끝내고 돌아온 우리 애가 구십이 된 노부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려고 들렸을 때이다. 부부가 활짝 웃으며 대환영을 하며 소파에 앉아 얼마나 긴 대화를 나누었는지 모른다. 그런 방문이 우리에겐 두 분의 마지막 작별이 되었다.

할아버지가 떠난 후 아내인 교수할머니가 몇 해 후 치매에 걸려 버린 일이 나는 참 슬펐다. 두 번째 구급차 요원들이 교수할머니를 모셔가더니 얼마 후엔 요양원으로 옮겨졌기에 그의 아들이랑 찾아갔다. 나를 본 할머니는 집에 돌아가고 싶다며 가끔은 엉뚱한 이야기를 했다. 그분을 뵙고 온 후 알 수가 없는 외로운 노후가 안쓰럽고 마음이 상해 오랫동안 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강아지와 걷다가 언제든지 노크하면 반갑게 들어오라며 온갖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부부였다. 나의 첫 수필집을 만들 때는 영어 글의 문법을 좀 검사해 달라고 부탁드렸더니 나를 ‘끈기 있는 사람’이라며 격려도 해 주었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딸은 유품을 정리하고 차고 세일을 할 때 이웃은 오로지 나뿐이었노라고 말했다. 듣던 바로는 이웃 가정에 자녀들의 문제가 서로 있었던 것 같고, 너무나 개인에 충실하고 검소한 유태인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은퇴 후 아저씨는 등산을 즐겼고 교수님은 봉사활동을 많이 했다. 늘 유기농 식물성식사를 해서인지 두 분 다 구십을 거뜬히 넘겼다. 예쁜 블루메리아 꽃을 해마다 보면서 두 분을 나는 아직도 그리워한다.

필자소개
미주 한인언론 칼럼니스트로 활동
방일영문화재단 지원금 대상자(2013년) 선정돼
세 번째 수필집 ‘날아라 부겐빌리아 꽃잎아’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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