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성칼럼] 꿈으로서의 그림, 꿈으로서의 정치
[정대성칼럼] 꿈으로서의 그림, 꿈으로서의 정치
  • 정대성 문화칼럼니스트
  • 승인 2022.03.2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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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성 문화칼럼니스트
정대성 문화칼럼니스트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윤석열 후보가 뽑혀, 여기저기서 축하연이 한창이다. 하지만 당선인이 정참석하는 경우는 정작 보지 못했다. 인수위 일, 용산 이전 등으로 몹시 바쁜 모양이다.

정당정치에 무관하게 살아왔고,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응원했지만, 당시 투표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찍은 후보가 당선돼 소외감을 느끼지 않아 좋았다.

새 대통령은 프랑스혁명 후의 나폴레옹처럼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폴레옹을 위해 제3 교향곡 「영웅」을 작곡한 베토벤처럼 나도 시화를 스스로 지어볼까 하지만, 베토벤처럼 ‘영웅’에 실망해 작품을 찢어버릴 일이 없었으면 한다.

나는 작년 여름부터, 『Korea Today』라는 일본어 잡지에 시화를 연재해오고 있다. 시도 그림도 내 ‘오리지널’ 작품이지만 번안시, 번안화를 소개하는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시는 한국어, 일본어, 영어로 쓰고 있다. 원시는 대부분, 한국, 중국의 한시다. 그림은 한중일 전통화와 근대서양 그림의 오마주, 콜라주 같은 혼합 그림이다. 5월호에 게시할 시와 그림을 이왕이면 경사스러운 주제, 내용으로 만들고 싶다.

매월 두 편의 시와 두 폭의 그림을 싣는데, 이번에는 정도전의 「신도팔경시」과 월산대군, 강희맹, 서거정, 이승소, 성임, 김종직, 정수강, 권필, 김삼의당 등의 「종가관등」 시를 번안하려고 한다. 그림은 작자미상인 「태평성시도」를 번안할 계획이다.

그런데 「태평성시도」를 연구하기 위해 서울대의 학위 논문들을 보다가 그 그림이 정월대보름이나 부처님 오신 날과 같은 관등 행사 그림이란 것을 알게 됐다. 사월 초파일이라도 단순히 불교계 행사가 아니라 굳건한 왕권(단군조선의 권위) 아래 잘 교화되어 태평성세를 누리는 이상적 상업 도시의 모습을 그린 것이고 아녀자들이나 노파들까지 골고루 그려져 있거나 한국적인 여러 풍습이 구체적으로 세밀한 부분들에 잘 반영돼있는 등, 중국 명청 시대의 비슷한 그림들과의 차별성도 충분히 있다는 내용의 논문이었다.

하지만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의 글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동아일보』 2014년 9월20일에 입력된 「태평성시도 유감」이란 오피니언이다. “한마디로 중국의 산하, 중국의 집, 중국의 신선, 중국의 아이들이다. (중략)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와 단원, 혜원의 풍속화가 있다고는 해도 작품의 크기가 작고 가짓수가 적으며, 후대에 사조를 형성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조선시대 회화사의 큰 흐름을 바꾸지는 못했다. (중략)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태평성시도」도 그런 점에서 매우 실망스럽다”고 운이 띄워진다.

이어서, “거리에는 패루가 우뚝 솟아있고, 건축물은 자를 사용해 반듯하게 그린 계화(界畵) 화법이며, 화면에 등장한 수많은 사람의 옷과 머리 모양은 더도 덜도 없이 그대로 중국 사람들이다. 두루마리 그림에서 병풍으로 옮겼다는 형식상의 차이만 있을 뿐, 북송 시대와 명나라 대의 쑤저우 항저우 거리를 정밀하게 묘사한 「청명상하도」의 모사판이 아닌가. 우리의 전통 회화가 중국 그림과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할 때가 된 듯하다. 그래야만 진정 우리는 한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게 결론이다. 여기에 이르면, 논리적 파탄 이전에, 몇 가지 기본적인 오류들이 범해졌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첫째, 중국이라는 개념에 대한 오류이다. 현재 중국은 청나라 영토를 이어받게 됐지만, 청나라는 한족의 나라가 아니었고, 역사적으로 한족이 그 넓은 영토를 경영한 시기는 의외로 짧다.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중국은 근래에 만들어진 개념이다. 이것은 일본의 중국학자들도 지적한 바 있어, 일본에서는 이미 상식인 것으로 안다.

따라서, 필자는 중국 회화, 한시 등의 작자들이 순수 한족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넓은 의미로 동이족의 혼혈 후손들은 우리 한민족의 친척 정도로 생각한다. 동시에, 필자가 말하는 한민족도 단일민족이 아니다.

둘째, 한국 회화사에 대한 오인이다. 진경산수화가 정선을 으뜸으로 하지만 그 화풍이 사조를 이루지 못했다고 단언할 수 없다고 본다. 정선 이전에도 안견 등이, 동시대에도 심사정 등이, 후대에도 김윤겸 등 겸재 일파 등이 나와 김홍도 등에도 영향을 미쳤다. 김홍도, 신윤복 이외에도 민속 화가들이 많았다(춘화 작가는 이름을 숨겼다). 또한 민화라는 장르도 있다.

셋째, 그림에 대한 오독이다. 실제로 「청명상하도」와 「태평성시도」를 비교해보면, 화법 및 대상, 주제가 일견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름을 알 수 있다. 우선, 전자는 대륙적인 느낌이 있어 거리들이 넓고 인물들의 조밀도가 낮다. 후자는 서울 종로를 이미지화하고, 처마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습부터가 한국적이다. 그런 처마 밑에 민중의 생활상을 그려내기 위해서 계화 화법을 도입해 집마다 공간을 간신히 확보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아녀자들이나 갓난아기 돌보는 유모까지 그려져 있는 것 또한 한국적이라 할 것이다.

풍부한 교양을 지니신 박 교수에게서 어째서 이런 오류들이 나올 수 있었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름대로 상상해본다면, 박 교수가 불어불문학을 전공하신 분이라 프랑스 회화사의 풍요로움을 전제로, 한국이 빈약하게 보인 게 아닌가 한다.

그러면서, 필자는 에드와드 사이드를 다시금 떠올린다. 1935년 영국령이던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그는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다. 그의 회상에 따르면,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레 귀로 들려온 서양음악의 영향, 그 콤플렉스를 스스로 떨치기 위함이 저 유명한 오리엔탈리즘 연구의 내적 동기였다.

박 교수를 개인적으로 몰라서 그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신 분인지 모르지만, 사이드나, 필자와 비슷하게 서양음악이 자연스레 들려오는 그런 환경은 아니었을까? 필자는 사이드, 푸코 등에 대표되는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콜로니얼리즘 등에 일찍이 주목했다. 기억으로는 내가 한국에 와서 연구생활을 시작했을 무렵, 포스트 어쩌고 하는 논제를 다룬 한국 연구자는 극히 드물었던 걸로 안다.

필자의 고민 또한 자신 속에 내재되어 버린 서양의 시선을 스스로 극복하고, 동양, 또는 나 자신을 어떻게 온전하게 마주 볼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 크게 차지해왔다. 지금은 연구 현장에서 떠난 지 오래지만, 어떻게 보면, 필자가 한시의 번안시, 전통화의 번안화를 연재하고 있는 행위 또한 그런 문맥에서이다.

알고 보니, 박 교수가 한국에 푸코를 최초로 소개하신 분이란다. 필자도 박 교수의 푸코를 읽었을 가능성이 커 학은이 있으신 분인데, 그의 오피니언 글은 옛날 내 사고 같아서 얼굴이 붉어진다.

아무튼 필자는 베토벤 같은 심정으로 「태평성시도」를 그리려고 한다. 이 그림은 원래, 조선을 연 정도전이 꿈꿨던 태평성세를 이상화시킨 것은 아닌가 싶다. 이상화이기 때문에 꿈인 것이다. 유토피아로서의 종로, 서울, 기전(畿甸)이다. 지금 종로 1번지인 청와대가 정권교체 시기에 떠들썩한데, 정치 자체가 원래 꿈의 현실화이다. 얼마나 현실화시키느냐가 정치가의 점수가 된다. 새 대통령이 만점, 또는 합격점 정도는 받을 만하게 선정 베풀기를 비는 마음이다. 사월 초파일 지나자마자 5월10일 취임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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