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무궁화도 자존심 있다
[해외기고] 무궁화도 자존심 있다
  • 이혜원 한뉴문화원 원장
  • 승인 2022.04.07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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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무궁화 할아버지’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주인공은 작년에 한국 나이로 100세가 됐던 뉴질랜드 교민이다. 그는 수년 동안 대한민국 무궁화를 뉴질랜드에서 찾았고, 결국 어렵게 찾은 한 그루로 많은 무궁화를 분양해 냈다. 할아버지 덕분에 뉴질랜드 교민들은 뉴질랜드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대한민국 무궁화를 볼 수 있게 됐다.

오클랜드에서 거주하는 필자는 다른 지역 뉴질랜드 교민들도 무궁화를 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 뉴질랜드 남쪽 크라이스트처치에 있는 송파공원에 무궁화를 심어 보라고 제안했다. 미리 무궁화 할아버지로부터 무상으로 무궁화 묘목을 주겠다는 약속도 받아두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송파공원 관리위원회는 계속 딴지를 걸며 무궁화 묘목을 받지 않는다. 일이 진척되지 않아 마음은 지쳐버렸고, 내가 왜 이 일을 계속해야 하냐는 생각이 든다.

크라이스트처치는 한국인이 두 번째로 많이 찾는 뉴질랜드 도시다. 2011년 큰 지진이 일어나 한인들이 다른 도시로 이주했지만, 그래도 아직 한인이 많이 살고 있다.

크라이스트처치시는 지난 1995년 2월10일, 송파구와 자매결연을 하고 송파구와 국제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 2001년에는 송파공원을 만들며 두 도시의 친밀도를 과시했다. 이 공원은 한국인, 현지인 등 20여 명으로 구성된 관리위원회가 관리하고 있다. 공원의 중요한 결정도 관리위원회가 하고 있다.

처음부터 크라이스트처치 송파공원에 무궁화를 심는 일이 어렵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관리위원회 위원 중 크라이스트처치 시청 직원도 있는데 그는 필자의 제안을 듣고 “무궁화를 심으면 다른 곳으로 퍼지지 않냐?”고 먼저 이메일로 질문을 하고, 나무가 퍼지면 공원을 망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나는 무궁화 할아버지께 여쭤봤고, 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 그렇게 답변했다.

그러자 직원은 “나무가 퍼지지 않는다면 무궁화를 송파구, 크라이스트처치 자매도시 정원에 못 심을 이유가 없다”는 대답을 바로 보내왔다. 당시만 해도 나는 이 일이 잘 진행될 것으로 믿었다. 크라이스트처치로 할아버지를 모시고 가면 할아버지도 기뻐할 거 같았다. 나무를 심을 수 있다는 대답에 그저 감사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 이전 대화는 완전히 무시되고 다른 관리위원으로부터 새로 질문을 많이 받기 시작했다. 무궁화는 어떤 나무냐, 어떻게 키워야 잘 크냐 등등… 나아가 제안서를 작성해 보라는 얘기도 들었고, 무궁화를 심고 싶으면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위원회 중 많은 사람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안 뒤 마음이 불편해졌다.

기가 막혀서 한동안 답변하지 않던 나는 며칠 전 영어로 이렇게 이메일을 썼다. “난 식물학자가 아니라 대답할 것도 없다. 무궁화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구글을 찾아보던지 식물학자를 구하라”고. 그리고 “뉴질랜드 이민 1세대로서 차세대가 뉴질랜드에서 무궁화를 보며 한국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무궁화를 심자고 제안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더 황당한 소식은 관리위원회가 그 공원에 벚꽃(사쿠라) 나무를 심으려 한다는 것이다. 무궁화 심는 데에는 별별 수많은 이유를 달면서, 벚꽃 나무를 심는 것은 괜찮다고? 그것도 ‘송파’라는 이름이 붙은 곳에서?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는 오클랜드에 한뉴문화원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몇 사람과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뉴질랜드에 보급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필자는 대한민국 무궁화를 길러낸 뉴질랜드 100세 할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고 싶다. 할아버지도 무궁화도 자존심이 있다.

이혜원 한뉴문화원 원장
이혜원 한뉴문화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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