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주화운동 대부 김정남과 재일카톨릭신자 송영순 오간 서한 공개
“(김지하) 시인은 75년 3월17일 구속돼 3월20일부터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된 이래, 2년 6개월이 지나도록 여전히 독거상태가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국회 발언, 변호인단의 법무부 장관에게의 항의를 계획하고 있습니다만, 이 같은 사실을 외국에서 널리 규지시키고, 나아가서는 항의 전문이나 규탄모임을 갖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1977년 하반기 김정남이 송영순에게 보낸 편지 내용 중 일부)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지난 3월11일 온라인으로 ‘해외에서의 한국민주화운동과 국경을 넘는 연대의 역사’라는 제목의 국제학술회의를 열어, 영화 ‘1987’의 실존 인물이자, 한국민주화운동의 대부라고 불리는 김정남 선생과 재일가톨릭신자이자 민주화 운동가인 송영순 선생이 1970~80년대 주고받았던 서한들을 공개했다.
김정남 선생은 1964년 6·3 항쟁 당시 시위를 주동한 ‘배후인물’로 몰려 감옥살이를 한 이래 20년이 넘게 주요 민주화운동을 기획하고, 민주화 운동가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온 인물이다. 1970년대 큰 화제였던 김지하 구명운동의 실무적인 역할을 주도했으며 민주회복국민회의, 3·1민주구국선언 등에 참여하기도 했다.
재일동포 송영순 선생은 한국민주화운동의 ‘대외 비밀창구’였다. 일본그리스도인교회협의회, 일본기독인 긴급행동 등 단체에서 활동한 그는 김정남 선생이 서울에서 보내는 각종 민주화 투쟁 자료를 받아서 일본 신문 등에 배포하거나 때로는 미국에 보내기도 했다. 김수환 추기경과 일본 시라야나기 세이이치 대주교를 연결해 주기도 했다.
김정남과 송영순 선생이 서한을 주고받았던 시대에는 정보와 뉴스가 심각하게 통제됐다. 200여 통을 주고받는 동안 김정남은 마리아, 송영순은 바울이라는 이름을 썼다.
이들의 서한은 지난 2004년 송영순 선생이 갑자기 사망한 뒤 발견됐다. 김정남 선생은 보안을 위해 모든 자료를 없앴지만, 일본에 있던 송영순 선생은 자료 대부분을 간직하고 있었다. 송영순 선생이 사망한 뒤 아들 송영빈은 자료를 발견하고 10개 박스로 나눠 김정남에게 보냈다.
이번 국제학술회의는 1부(한국민주화운동과 미국·독일에서의 연대 활동), 2부(일본에서의 한국민주화운동과 일본 시민들의 연대)로 나뉘어 진행됐다. 김정남-송영순 선생의 서한에 대한 발표는 2부에서 김원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했다. 그는 ‘해협을 건넌 편지들’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1980년대 카톨릭교회를 포함한 일본 내 지원단체들을 통해 한국 문제를 알리는 운동이 전개돼 왔다”면서 “이 가운데 5·18의 진실을 일본과 해외에 알리는 경로로서, 가톨릭 측의 통로가 김정남과 송영순이었다”고 강조했다.
안병우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은 “한국민주화운동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의 지지와 연대를 통해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초국가적 연대의 경험은 매우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며, 이번 국제학술회의를 통해 한국민주화운동 연구의 나아가야 할 방향이 새롭게 모색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