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여기와 거기 세계의 경계
[해외기고] 여기와 거기 세계의 경계
  • 황현숙(칼럼니스트, 호주 캔버라)
  • 승인 2022.05.02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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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현세를 뜻하며 거기는 죽은 후에도 영혼이 영생의 세계로 들지 못하고 경계에서 머물러 있는 신비적인 세계라고 한다.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은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회한과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시공간을 초월한 죽음과 삶의 경계는 과학적으로는 증거 할 수 없는 일부 사람들의 경험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의혹을 가지든, 믿음을 가지든, 이 또한 개인적인 인식론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존재한다는 영혼의 현존에 호기심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1990년에 방영된 ‘사랑과 영혼(Ghost)’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Unchained Melody’라는 주제가에 매료됐고 남녀 주인공들의 애절한 사랑에 가슴이 아리는 간접 경험을 했다. 여주인공, 데미 무어의 청순하고 애련한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은 영매를 통해서 신에게도 전달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영혼에는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는 것을 영상을 통해서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 어둠은 악으로 연결되는 자연법칙에서 여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실존하지 않는 생명체에서 느낄 수 있는 빛의 에너지는 참으로 강렬했다. 그 후에도 ‘사랑과 영혼’은 텔레비전에서 여러 차례 재방영됐는데 늘 변함없는 감동을 안겨 주었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In Between’이라는 슬픈 로맨스 영화를 흥미롭게 보았다. 영화 속의 ‘인 비트윈’ 이란 뜻은 최근에 사망한 사람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마지막 연락이 필요한 기간의 개념인 ‘In Between’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줄거리는 단순한 편이며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만난 두 남녀가 오해와 갈등을 일으키며 서로를 알아가면서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여자는 부상을 입고 점차 회복되지만 남자는 죽음을 맞이한다. 여주인공 테사는 남자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에 무척 힘들어하며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만나서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는 염원을 가진다. 그 둘은 ‘인 비투윈’의 시공을 초월한 공간에서 다시 만나게 되고 테사가 남친 스카일러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한다. 결국 착한 영혼은 하얀빛 속으로 서서히 사라지고 두 사람은 치유가 된다. 천국으로 가는 영혼은 눈부신 빛살 속에서 삶의 공간에 살아남은 사람에게 희망이라는 빛을 남겨주고 떠난다.

불교에서는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잘못된 지난날의 자신을 되돌아보며 새로운 나를 찾아보는 시간여행이 49일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영화에서 나타난 시공 초월의 현상은 불교에서 말하는 49일의 의미와 상통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가족들은 죽은 사람의 49재를 지내주며 편안하게 저세상으로 잘 떠나가기를 빌어준다. 망자는 49일 동안 생전의 가족이나 연인의 곁에 머물며 쉽게 떠나지 못하고 미련이라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음새를 연결하며 머문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바로 여기와 거기의 세계로 연결되어 맞닿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영원한 세계로 완전히 떠나기 전에 미련을 털어버릴 수 있도록, 중도의 세계를 현세와 거기의 세상 중간에 누구도 깨부수기 힘든 단단한 유리벽을 세워 놓은 게 아닐까 하는 실없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티베트의 지혜’라는 책 속에 삶과 죽음을 설명할 때 ‘바르도(Bardo)’라는 언어를 설명한 부분이 나온다. 바르도는 죽음과 환생 사이의 중간상태라고 소개하며 바르도는 몇 가지 다른 부분으로 분류된다. 불교에서는 환생과 윤회를 기본 철학으로 신봉하는 종교이기 때문에 더욱 심오한 경지를 보여준다. 결론을 말하면 서로가 이 세상에서 살아있는 동안에 마음을 열고 많이 사랑하며 보듬어 안는 것이 최상이라는 가르침을 준다.

이젠 긴 시간이 흘렀지만, 친정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본 후에 호주의 내 터전으로 돌아와서 크게 몸살을 앓았다. 그때 노인요양원에서 삶과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노인 어른들을 보면서 심한 가슴앓이를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아래의 글을 쓰게 됐다.

“엄마는 양산 통도사 부근의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도립 노인전문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그곳은 심한 노환과 치매, 중풍에 걸린 노인들을 전문 의료인과 간병인들이 24시간 돌보는 시설이 훌륭한 도립병원이다. 엄마가 그런 병실에 누워있다는 현실은 내 가슴에 이미 큰 상처를 남긴 셈이다. 1년 반 만에 보는 엄마의 모습은 이미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닌 죽은 사람의 얼굴처럼 보인다. 의식도 없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애처로운 모습을 보니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흐른다. 그곳은 삶과 죽음이 함께 존재하는 문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과 죽음의 문턱이 있는 제2 병동.”

의료인들은 그 병실을 제2 병동이라고 불렀다. 가능하다면 지금이라도 이 막내딸은 인 비트윈(In Between)의 세계에 닿아서 엄마와 아버지의 손을 맞잡고 싶다.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내 삶 속에 배여 있는데 나이가 들었다고 달라질 게 뭐가 있을까. 이별 연습은 언제나 아프기만 하다.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시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 나에게 새로운 질문이 또 하나 생겼다. 결국, 삶과 죽음이란 손등과 손바닥의 관계처럼 맞닿아 있는 것이라는 해답을 스스로 얻게 된다. 손등을 뒤집으면 삶이 보이고 손바닥을 다시 뒤집으면 죽음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닐는지.

황현숙(칼럼니스트, 호주 캔버라)
황현숙(칼럼니스트, 호주 캔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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