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이어령교수의 삶
[Essay Garden] 이어령교수의 삶
  • 최미자 재미수필가
  • 승인 2022.05.06 0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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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세월 내 글을 사랑해주시던 한 펜의 부인이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년 초에 듣고도 사정이 여의치 않아 찾아뵙지 못했다. 문상을 가려고 두 시간 거리의 가든 그로브로, 수년 만의 외출이었다. 음식을 사려고 들린 상가에 작은 서점이 여전히 있어 반가워 들어갔다. 입구 계산대에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신간이 놓여 있어 한권 샀다. 30여권의 책을 남기고 화학치료도 거부하고 자연인으로 살다 이어령 교수는 떠났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떠나겠지만, 그는 3년의 병고를 찹찹하게 헤치면서 그가 지닌 지식들을 목이 마른 사람들을 위해 마지막까지 나누어 주었다. 부인(강인숙교수)과 살던 평창동 자택을 영인문학관이라고 만들어 놓은 자신의 서재의 침상에서 몸은 비록 앙상하게 되었다. 89세의 나이로. 몇 달 전 준비한 그의 차분한 마지막 작별인사도 유튜브에서 보며 가슴 뭉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생전에 모른 척하던 여러 정치인 여러분이 영전에 찾아와 애도하고 갔다하니 디행이다.

이어령교수는 어느 누구 못지않게 대한민국을 사랑하던 언론인(조선, 중앙, 한국, 경향, 서울 신문 논설위원 역임), 교육자(이화여대 석좌교수), 철학자, 정치인이었다. 마지막 두어 주 전까지도 한 기자와 인터뷰를 주고받으며 그의 구수한 인생철학 이야기를 남겨주었다고 한다. 당시 기자는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기셨다는 말을 듣고 봄이 오면 회복되어 더 많은 이야기를 기대했었지만, 23일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아쉬움으로 작별했다 한다.

지난 인터뷰 중에는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 생전에 이어령 교수에게 물었다던 24가지 질문에 대한 이야기에 대한 삶과 죽음에 대한 기사들이 있었다. 그런 글을 읽노라니 지난 날 한 장면이 떠오른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기업, 삼성의 할아버지 이병철 회장의 사무실 벽에 걸린 ‘공수래 공수거’란 붓글씨가 써진 커다란 액자였다. 잡지에서 보았던 사진이었다. 나 역시도 힘든 파도 같은 인생을 오르락내리락 살아가며 늘 의문을 놓지 않던 화두였다. 나는 어디에서 와서 도대체 어디로 가는가. 과연 우리들의 마지막 혼은 영생인가 윤회인가!

그분은 암 투병 중이라 통증도 심했을 텐데 “그런데 말이야”라며 때로는 힘이 없어도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갈 수 있던 대단한 열정과 의지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한다. 그렇게 어렵게 1월에 태어난 책이 ‘메멘토 모리’이다. 라틴어로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는 심오한 말이다. 이 교수는 이 책에서 삶의 영생을 말했다.

그의 생전 명강의 중에는 흥미로운 것들도 많다. 우리나라 말 중에 ‘죽을 맛이다’ ‘살 맛이다’라는 표현. 사람의 성격을 ‘싱거운 놈 짠 놈, 매운 놈’이라고 하는 말들을 분석하던 지혜로움. 짜고 달고 시고 맵고 쓴 오미자의 다섯 가지 맛 외에도 ‘밍밍하고 슴슴하다’는 말까지. 그만의 해학적인 한국인에 대한 철학이 매우 흥미롭다. 된장과 고추장처럼 곰팡이를 피워 띄우고, 식혜와 김치는 한국인의 삭혀 먹는 음식문화로 멋지게 파헤치는 삶의 철학. 한자인 어진 인을 ‘사이좋게 놀아라’는 해설을 읽으며 당파싸움 좋아하는 어리석은 국민인 우리에게 따끔하게 일침을 놓기도 한다, 감성과 지성의 아이큐로 살아가란다.

또 초대 문화부 장관을 맡아 귀여운 호돌이 상징 마크와 함께 알려진 자랑스러운 88올림픽을 기획했던 분이 아닌가. 한국종합예술학교를 세우게 하여 수많은 한국의 예술인들을 발굴하고 키워내도록 무진 애를 썼다. 지금의 한류열풍 바람을 일으키게 하는 단단한 기초를 마련해놓은 어른이었다. 다만 이어령 교수는 11살에 어머니를 여의었으니 얼마나 외로웠을까.

아마도 그래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벌써 철학적인 삶을 논하는 멋진 시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보통사람은 아니었다. 또한 아쉬움이라면 생전에 아버지로서 젊은 딸의 이혼과 죽음의 아픔을 가슴에 새겼던 일은 가장 큰 상처가 아니었을까. 딸 이민아 목사 10주기 맞아 준비한 그의 시집 ‘헌팅턴 비치에 가면 네(딸 이민아 목사)가 있을까’ 딸아 이제 네가 간 길을 내가 간다. 미국에 사는 딸을 그리워하며 쓴 시를 읽으면 참 허탈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일 년 전에는 ‘영원한 제국’을 집필한 소설가 이인화 교수에게 평전을 부탁하여 완성했다니 곧 출간될 것이다. 또 그의 유고작들도 줄줄이 출간될 예정이라니 반갑다. 공교롭게도 그가 별세할 무렵 이틀 전, 비열한 공산주의 국가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두 달이 넘도록 괴롭히고 있다. 멀쩡하게 잘 살던 이웃나라가 파괴당하고 처절하게 투항하는 대통령과 정부군들의 장면을 영상으로 보며 세상이 기막히고 슬프다. 남의 일 같지 않다. 이어령교수의 애국심처럼 우리 모두가 한국인으로 긍지를 갖는 정신력을 키우며 스스로 부강한 나라가 되어야 할 것 같다.

필자소개
미주 한인언론 칼럼니스트로 활동
방일영문화재단 지원금 대상자(2013년) 선정돼
세 번째 수필집 ‘날아라 부겐빌리아 꽃잎아’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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