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희의 음악여행 ㉞] 예술의 전당을 거닐다
[홍미희의 음악여행 ㉞] 예술의 전당을 거닐다
  • 홍미희 기자
  • 승인 2022.05.23 0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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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하우스 앞 벤치
오페라 하우스 앞 벤치

예당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예술의 전당을 걷는다. 어느 날부터 나에게 예술의 전당은 공연장이나 전시회장보다는 지인들과 함께 가서 걷고 차를 마시는 쉼터가 되었다. 예술의 전당은 1988년 2월에 음악당을 개관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1993년 오페라 하우스, 1999년에 한가람미술관을 개관하고 이동 통로 격인 비타민 스테이션이 2008년 완공되었다. 그러나 처음 개관할 당시도 그랬지만 지금까지도 예술의 전당은 섬과 같다. 예술의 전당 앞의 넓은 도로 때문이기도 하고 지하철 하나 없는 대중교통의 열악함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의 경우 지금까지 예술의 전당을 갈 때 한 번도 대중교통을 이용한 적이 없다. 그렇지만 사람의 마음은 참 이상해서 그냥 걷고 싶고 쉬고 싶어 온다면서도 주차를 할 때는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덜 걷는 쪽으로 주차하고 싶어진다. 그럴 때는 제2 주차장을 이용해서 위로 올라가면 음악당 바로 옆이다. 비싼 주차요금이 신경 쓰이면 일요일이나 공휴일에는 대로변에 무료주차가 가능하니 그것도 좋다. 예술의 전당 입구 양쪽에는 커다란 대형카페가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이용하기 편하지만, 왠지 예전에 있던 레스토랑도 그립다.

예술의 전당 입구
예술의 전당 입구

그 안으로 들어가면 4갈래의 길이 있다. 비타민 스테이션을 이용해서 음악당으로 가는 길과 오페라 하우스, 한가람미술관, 한가람 디자인관으로 가는 길이다. 비타민 스테이션에는 오래된 친구 같은 대한음악사가 있다. 어릴 때부터 명동에 있던 악보회사다. 그곳의 공기는 먼지와 같았다. 뿌옇고 오래된 책들이 가득 쌓인 곳에서 곡명만 말하면 말끔한 새 악보가 튀어 나왔다. 그곳에 가면 모든 악보가 있었다. 그 오래된 친구가 새 옷을 입고 어색하게 앉아 있는 듯한 대한음악사를 생각하며 오페라 하우스 쪽 계단으로 올라간다.

지인들과 함께 갈 때 나의 손에는 길 건너의 커피집이나 아래층에서 미리 산 커피가 들려 있다. 그리고 음악당 앞의 벤치나 오페라 하우스에서 차를 마신다. 오페라 하우스에는 포토존도 있고 의상을 전시해 놓은 곳도 있어 잠시 앉아 있어도 눈이 갈 곳이 많다. 사실 운동보다는 사람이 좋고 그렇게 보내는 시간이 즐거운 것이다. 잠시 시간을 보내고 다시 밖으로 나와 계단을 올라간다. 앞이 훤하게 트이며 음악분수가 보인다. 이곳은 밤에 더 좋다.

입구의 방향 안내판
입구의 방향 안내판

초여름 밤 살랑거리는 바람과 함께 음악분수에서는 Volare, Por Una Cabeza가 흘러나오고 아이들은 저절로 움직이는 몸을 주체하지 못한다. 파란 인조잔디 위에는 사람들이 한가롭게 앉아 분수를 쳐다본다. 조명 아래 생동감 있는 분수의 춤과 음악, 정지된 사람들의 모습이 평화롭다. 이럴 땐 조용한 음악보다 즐거운 음악이 더 좋은 것 같아. 제일 좋은 건 아는 음악이고~ 옆자리 지인의 말씀이다. 연주되는 곡명을 스크린을 통해 제목과 내용 정도를 간략하게 설명해 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당의 앞에는 커다란 스크린이 있어 공연이나 전시를 보여주고 있다. 그 앞에서 잠시 구경하다가 햇빛이 따갑거나 바람이 불면 음악당의 안으로 들어간다. 표는 공연장 안으로 입장하는 사람만 입구에서 확인하기 때문에 로비는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어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편하게 앉아 있다가 심심해지면 위로 올라간다. 운 좋으면 리허설을 하는 공연을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금 쉬었으니 또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음악당 앞의 서예박물관을 지나면 우리가 흔히 한예종이라고 부르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동 캠퍼스가 있다.

음악당 로비
음악당 로비

이곳에는 음악원과 무용원이 있다. 낮에는 유리창 안이 보이지 않지만, 밤이면 환하게 켜진 등 아래 무용하는 학생들이 연습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잠시 서서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약간 팔자걸음을 걷고 있는 팔이 긴 아이는 틀림없이 발레를 하는 학생이다. 뭔가를 등에 메고 걸어오고 있는 학생은 악기를 전공하고 있겠지. 때로는 공연이 임박한 오케스트라 단원이나 합창단원들이 뛰어가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마당을 가로질러 계단을 올라가면 국악원이 보인다. 이때부터는 벌써 조경도 달라 소나무들이 줄지어 있다. 음악당 앞의 벤치에는 감나무가, 오래된 카페인 모차르트에는 허브가 가득 심겨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올라가는 계단의 가장 가까운 오른쪽에는 우면당이, 오른쪽에는 국악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정면에는 예악당이, 예악당의 오른쪽 구석에 살짝 국립국악원 사무동이 있다.

국악원 입구
국악원 입구

그 사이를 걸어 나가면 이제 밖으로 나가는 문이 나온다. 그런데 이 문의 기둥은 낯익다. 경복궁 교태전 아미산 화계의 굴뚝이다. 그리고 이어진 담벼락도 붉은 벽돌로 이어져 국악의 분위기를 살렸다. 하지만 교태전은 왕비의 처소고 아미산의 굴뚝 역시 뒤뜰에 자리 잡은 것이니 이것을 대로변 입구에 배치한 것은 뭔가 어색하다. 이렇게 예술의 전당을 걷는 길은 끝이다.

그러나 밖으로 나가서 걷기는 어렵다. 한발 차이로 밖은 걷기 어렵게 되어있다. 하긴 8차선 도로에 차들이 씽씽 달리는데 누가 걷고 싶을까. 그래서 내 마음속에 그려보는 예술의 전당이 있다. 예술의 전당 앞에 넓은 길을 지하로 만들어 그곳이 멋진 광장이 되는 상상이다. 그래서 예술의 전당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누구에게나 편하고 걷다 보면 광장이고 걷다 보면 오페라 하우스가 되는 그런 물처럼 흘러가는 곳을 그려본다.

예악당
예악당

그 광장의 주변에는 예쁜 공방이나 상점이 있을 것이다. 그 건물들은 층수도 나지막해서 2층을 넘지 않는다. 작고 예쁜 문을 가진 피아노 공방을 들어가 보자. 들어가는 문은 좁고 작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조그만 사무실이 있을 것이다. 그 뒤에 있는 넓은 창고에는 오래된 피아노들이 뽀얀 먼지를 안고 줄지어 있다. 예민하게 생긴 주인은 아무에게나 뒤의 창고를 보여주지 않는다. 이곳을 보여주는 사람은 주인과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어야겠다. 이를 모르는 눈치 없는 사람들은 조그만 사무실처럼 생긴 공간을 기웃거리다가 실망하며 다시 나가기도 한다.

그 옆에는 현악기 제작자가 운영하는 공방도 있다. 물론 제작뿐 아니라 수리도 하는 곳이다. 그곳에는 정갈하게 줄지어 걸려 있는 바이올린과 그 부속품은 송진향을 풍기고 있다. 주인은 커다란 앞치마를 두르고 뭔가에 열중하고 있어 말을 걸기 어렵다. 또 국악기를 제작하는 곳도 있다. 커다란 판자가 죽 늘어서서 가야금의 판을 말리고 있고 줄을 갈기 위해 풀어져 있는 악기도 있다.

오페라 하우스 내 전시
오페라 하우스 내 전시

조그만 모형의 피리도 있고 각종 도구가 널려 있어 들어간 사람은 잠시 어디로 발을 옮겨야 할까 망설이게 될 것이다. 춤을 추는 사람을 위한 의상을 제작하는 곳도 필요하다. 연습복도 만들고 안무에 따라 여러 가지 의상을 제작하는 이곳에는 예전에 전설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의 의상이 걸려 있다. 주인은 예전 누구누구가 입었던 옷이라는 얘기를 하면서 수다를 이어가고 옷을 맞추러 온 사람은 무대 위의 자신을 그려보며 꿈을 키운다.

그런가 하면 토슈즈를 만드는 공방도 있겠다. 분홍색의 테이프가 줄줄이 있고 토슈즈의 앞모양을 만들기 위한 모형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것이다. 그뿐일까? 붓과 종이를 파는 곳, 물감과 여러 도구를 팔기도 하고 표구와 액자를 멋지게 제작하는 곳도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공방의 사이사이에는 내가 들어가서 앉고 싶은 카페와 작은 음식점도 필요하다. 그리고 그사이에는 커다란 스크린보다는 눈앞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기도 하는 연주자도 만날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혼자 상상하는 예술의 전당은 섬처럼 따로 떨어진 곳이 아니라 어디에서나 접근하기 쉬운 곳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고 싶고 우연히 지나가다가도 잠시 쉴 수 있는 음악과 무용과 그림의 향기가 가득한 그런 예술의 전당이다.

밤의 음악분수
밤의 음악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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