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송칼럼] 그리스여행이 내게 준 선물
[이계송칼럼] 그리스여행이 내게 준 선물
  • 이계송(재미수필가)
  • 승인 2022.05.26 0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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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했던 팬데믹이 완화되자, 아내와 함께 지난달 그리스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은 보는 재미도 재미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느끼는 재미가 더 크다. 또한, 동반자들과 깊은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것이 생각과 삶의 변화로 이어져, 새로운 일상의 지평을 열어 주기도 한다.

“포도가 포도즙이 되면 물질적 변화다. 포도즙이 포도주가 되면 화학적 변화다. 포도주가 사랑이 되고 우정이 되고, 성체가 되는 것, 그걸 메토이소노(성화)”라고 한다. 인간의 진정한 삶은 이런 ‘메토이소노’의 경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고, 행복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이번 그리스여행에서도 경험해 본 것이다.

3천여 년 전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려 노력했다. 아름다운 유적과 유물들을 만날 때마다 이를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그들의 정신을 느낄 수 있다. 인류 인문학의 출발과 보물창고, 그들이 만들어 낸 신화 그리고 아름다운 예술과 깊은 철학, 그것은 인간 정신의 구현, 인류가 끊임없이 추구해 왔던 ‘메토이소노’로서의 ‘자유’와 ‘행복’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옛 그리스인들이 그토록 추구했던 메토이소노의 꿈이 현대 그리스에서는 올스톱된 듯하다. 그리고 그들은 잊힌 민족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듯하다. 안타깝다. 4백 년간 터키인들의 지배를 받았던 탓일까? 옛 영광의 위상을 되찾을 수 없을까? “당분간 가망이 없어 보인다”고 20여 년 넘어 현지에 사는 여행 안내자는 말했다. 겉으로 보이고 말로 들은 시민들의 교양의 수준과 꿈이 그걸 말해준다. 그들이 선택한 정부와 리더들의 모습은 무력하다. 정치는 포퓰리즘에 갇혀있다 하고, 지금 시민들은 옛 위대한 그리스 시민들이 아니다.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내가 가장 감명 깊게 읽었고, 지금도 전자책으로 소지하고 다니면서 틈만 나면 꺼내 읽는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떠올렸다. 위대한 그리스 민족주의자이자, 세계적인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썼다. 그는 소설을 통해서 “인간은 자유”라고 외친다. 그게 바로 그리스 정신이요 그리스의 역사적 사명이라는 것이다. 아크로폴리스나 파르테논신전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의 너머에 자리하고 있는 인간 정신과 자유를 갈망했던 선조들의 의지가 그 소설 속에 살아 있다. 그는 이를 오늘의 그리스인들이 다시 추구해야 할 역사적 사명으로 보았다. 특히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영혼과 육체, 물질과 정신의 임계 상태 저 너머에서 일어나는 변화’, 메토이소노가 그의 소설의 핵심이자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인간적 가치라 여겼다.

그렇지 않은가. 인류 진화의 역사는 온갖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것이었으니… 그리스의 역사적 사명을 새롭게 파악한 카잔차키스의 혜안은 위대하다. 그의 소설은 육체와 영혼의 이분법을 뛰어넘는 새로운 종교관을 또한 우리에게 시사한다. 신은 “인간이 딛고 넘어가게 마련된 그 도약의 디딤돌로 인간이 창조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그의 생각은 신을 포함해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인간의 모습을 상상한 것이다. 법정 스님도 이 소설을 늘 머리맡에 두고 읽었다고 하니, 스님도 카잔차키스의 상상에 동의했을 것이라 믿는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이렇게 떠올리면서 신까지도 인간화했던 옛 그리스인들의 인간관을 새삼 절감했다. 그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인간의 삶이란 행복추구였다는 것, 특히 가장 행복한 삶은 이데아의 실현, 즉 이상을 향한 인간애의 실천이라고 보았던 플라톤의 사상이 그리스 후손 카잔차키스키의 핏속에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포도주의 신으로서 ‘디오니스적인 긍정적인 삶’을 사랑했던 옛 그리스인들의 모습을 또한 그리스에 거리에 앉아 포도주를 즐기고 있는 시민들에게서 상상해 볼 수 있었다.

더불어 한 인간으로서 나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돌아보는 기회도 되었다. 나 같은 늙은이가 평생 쌓아온 이승의 흔적은 죽음과 함께 무엇으로 변해야 하는가? 좋은 세상을 위해 아낌없이 던지고 떠나는 것, 그게 ‘메토이소노’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삶이 ‘물리적 변화와 화학적 변화의 너머에 존재하는 변화’ 즉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이승의 삶이 인간 사회의 거름이 되어 희망이 되고 춤과 노래가 될 때 그 죽음은 ‘거룩하게 되는’ 거다. 그런 깨달음, 그리스여행이 준 큰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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