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6월 6일 현충일이 다음 주 월요일이다. 미국 현충일은 매년 오월 마지막 주의 월요일이다. 주말부터 나는 커다란 성조기를 대문에 펄럭이도록 세우면서 돌아가신 희생자들의 넋들에 진심으로 추모한다. 며칠 전 5월 30일 한인회장(백황기)이 참석하자 연락이 와서 행사장의 주차를 걱정하며 산으로 갔다. 과연 예측대로 미국은 살아있었다.
미국과 자유를 사랑하는 많은 시민들이 산의 추모탑 앞에 모여 있었다. 안내를 따라 근처 교회의 주차장으로 가 겨우 차를 세웠는데, 고맙게도 셔틀버스가 태워다주었다. 셔틀버스에서 만난 94세 무기창고장으로 30년 해병으로 근무했던 분을 뵙고 사진을 찍었다.
우중충하던 예전 방문과 달리 날씨가 너무 화창했다. 한인회에서도 작은 추모 꽃다발을 세워놓았다.
태평양이 바라다보이는 솔리대 사진 추모탑은 1952년에 ‘미국포스트 275대대’에서 한국전쟁에 희생당한 군인들을 위하여 처음으로 세워졌는데, 차츰 육군, 해군, 해병대와 해양경비대, 공군으로 추가되면서 둥그런 벽이 6개로 늘어났고 지금은 약 5700여 명의 고인들의 사진이 들어있다.

슬프게도 1989년 베트남전쟁으로 죽은 사람들 중에는 타종교도 있어 법원에 고소당하여 27년 동안 재판했지만 좋게 해결이 되었다. 그리고 비영리 단체(California Non-Profit 501(C)(3))로 11월 재향군인의 날과 함께 매년 두 번 큰 행사를 이곳에서 하고 있다.
오늘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여 2006년 12월 이라크 라마디에서 차를 타고 가다 폭발사고로 죽은 ‘메간 멕크렁’ 대위를 추모하는 날이다. 최초의 여장교로 희생되었고 소령으로 추모 진급되었다. 기조연설은 당시의 육군 장교였던 삼성 퇴역장군이 나와 그때의 참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메간의 가족인 어머니가 꽃다발과 커다란 기념패를 받았다.
여기와 살며 한국전쟁에서 죽은 아들의 시체라도 만나보는 소식을 기다리다 결국 세상을 떠나던 부모들의 아픈 이야기를 종종 뉴스에서 나는 듣고 보았다. 생전 가보지도 못한 미지의 땅, 한국에서 그들은 자유를 위해 그렇게 젊음을 바쳤다. 대한민국의 한국전쟁(육이오 사변)도 미군과 유엔군이 아니었으면 지금 우리가 어떻게 자유를 누릴 수가 있단 말인가. 요즈음은 학교에서 그리고 부모들은 자기 자녀에게 이런 역사 이야기를 얼마나 깊게 설명해주고 있을까. 올바를 세상을 유지하려면 ‘자유의 진정한 가치’를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필자소개
미주 한인언론 칼럼니스트로 활동
방일영문화재단 지원금 대상자(2013년) 선정돼
세 번째 수필집 ‘날아라 부겐빌리아 꽃잎아’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