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호의 포스트 펜데믹 로드맵-㊽] 뇌파로 지구 반대편 기계 작동
[이종호의 포스트 펜데믹 로드맵-㊽] 뇌파로 지구 반대편 기계 작동
  • 이종호 한국과학기술인협회장
  • 승인 2022.06.11 0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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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두뇌에서 발생하는 뇌파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유용성이 있다는 것이 발견되자 이를 보다 확장하여 활용하는 방안을 재빠르게 도출한 사람은 SF 물 감독들이다. 그들은 특유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수많은 SF 물에서 인간의 두뇌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내놓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방법이 신체에 전자장비 즉 사이버네틱스(칩 등)를 직접 연결하는 것이다. 수사관을 범인의 소굴에 잠입시키기 위해 수술해주는 예도 있고 뇌 속에 있는 정보를 빼내기 위해 직접 뇌에 시술하는 때도 있다. 작품에 따라 조그마한 칩을 뇌에 삽입한 후 마음대로 조정하여 꼭두각시로 만들기도 한다.

2005년 로잔공대의 헨리 마크램 교수는 IBM의 슈퍼컴퓨터 블루진을 이용해 인간 두뇌 전체에 대한 컴퓨터 뇌 모델을 완성하겠다고 발표했다.

두뇌의 작동 과정을 완벽히 재현해 컴퓨터로 모의실험을 함으로써 두뇌의 신경회로 이상으로 발생하는 각종 정신 질환의 원인을 규명하며 치료법 개발에 도움을 주겠다는 게 연구의 목표이지만 부수적으로 육체의 죽음을 넘어서는 영혼 불멸의 시대가 과학의 발달로 도래할 수 있다는 폭탄선언이 가능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와 같은 장면은 뇌의 신경회로를 읽고 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면 가능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모든 생명체는 ATGC란 4개의 염기가 나열되어 정보를 전달하는 구조로 되어 있고, 인간은 슈퍼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이런 나열 순서를 ‘인간게놈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로 밝혀냈다.

좀 더 과학기술이 발전해 두뇌 조직을 읽어낼 뿐만 아니라, 정보를 쓸 수 있게 된다면 인간 의식을 다운받아 저장하는 것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설명도 일견 그럴듯하게 보인다.

학자들이 이와 같은 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전제에 두고 뇌를 조정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스스로 사이보그가 되는데 앞장선 영국의 케빈 워윅(Kevin Warwick) 교수이다.

그는 1998년 세계를 놀라게 한 실험을 성공시켰다. 그의 손에 실리콘으로 된 칩을 이식했다. 그의 몸에 이식된 칩은 연구실 건물 관리 컴퓨터에 신호를 보내 워윅 교수가 연구실이 있는 건물로 들어서면 자동으로 문이 열도록 전원이 켜지게 했다. 방안에 들어서면 조명이 켜지며 컴퓨터는 “안녕하세요. 워윅 교수님” 하며 그를 반갑게 맞이한다.

그의 컴퓨터는 건물 안에서 그의 정확한 위치를 추적할 수 있다. 이 칩은 이런 동작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든 신상명세를 저장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언제든지 자신이 필요한 정보를 추가로 업그레이드할 수도 있으므로 소위 컴퓨터화한 인간의 시초라는 평을 들었다.

2002년에는 보다 업그레이드된 500원짜리 동전의 4분의 1만한 실리콘 칩을 자신의 손목 정중신경에 연결했다. 이 장치는 뇌에서 팔의 근육과 힘줄에 보내는 신호를 인식하고 팔에서 뇌로 가는 신경 자극과 근육의 움직임을 인식하는 일종의 신호인식기로 이를 외부의 컴퓨터로 전송할 수 있는 체내형 무선송수신기의 일종이다.

즉 그의 팔에 이식된 작은 기계장치는 단순히 신경과 근육 사이에 통하는 신경 전류의 흐름을 읽고 전송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칩을 성공적으로 삽입시킨 후 그는 자신의 손을 로봇 손과 연결했다. 그의 부인인 이레나도 시술을 받았다. 그들의 목적은 두뇌에서 발생하는 전류를 컴퓨터를 통해 읽은 후 어떤 특정 물체를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즉 인간의 뇌가 의심 없이 외부의 힘을 조종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실험이 매우 위험한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정중신경은 손의 움직임과 느낌을 대부분 제어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워윅은 손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연구를 위해 자신의 몸을 기꺼이 실험 대상으로 제공한다는 것은 잘 알려졌지만, 그것은 과거에 과학지식이 별로 없었던 시대에 자주 벌어졌던 일로 현대에서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런데 그의 실험은 성공했다.

칩이 제대로 작동하자 그는 자신의 손목을 움직임으로써 로봇을 움직이게 할 수 있었다. 그의 정중신경(팔의 안쪽 한가운데를 지나는 큰 신경)에 심어놓은 전극들이 신경계를 통해 전달되는 전기 자극을 포착했고 이 펄스 신호를 컴퓨터가 해독하여 로봇을 움직이게 한 것이다. 그런데 그 로봇은 워윅 교수와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미국에 있었다.

사이보그 기술을 이용해 단지 생각만으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기계 장비를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워윅 박사의 연구가 매우 획기적인 성과인 것은 신경계에 어떤 장치를 이식한 후 이를 전자 신호로 조절함으로써 인간 뇌의 전기화학적 균형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즉 아스피린을 먹지 않아도 전자 신호를 주입하면 두통을 치료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부인 이레네와 인터넷을 통해 두뇌의 뇌파로만 감정과 생각, 행동을 이동시키는 실험도 수행했다. 이것은 인터넷을 통해 워윅 신경계에서 이레나 신경계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두 사람이 대화 없이 교감할 수 있다는 가설도 성공적으로 입증했고 말 그대로 ‘부부간의 일심동체’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정밀하지는 못했다. 정중신경은 수만 개의 신경섬유로 이루어져 있다. 그곳에다 전극을 박아 넣었으므로 전체 신경 다발에 자극을 줄 수는 있지만 개개 신경섬유에 자극을 주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정교한 제어를 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워윅 교수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당초에 목적했던 바대로 작동한 것은 로봇을 개발하는 학자들에게는 아주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손목에 칩을 이식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영화에서처럼 뇌 안에 칩을 이식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필자소개
고려대학교·대학원 졸업, 프랑스 페르피냥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 및 과학국가박사 학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서 연구 활동
저서: 「침대에서 읽는 과학」, 「4차 산업혁명과 미래 직업」, 「로봇은 인간을 지배할 수 있을까?」, 「유네스코 선정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유적으로 보는 우리 역사」 등 10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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