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칼럼] 우리들의 블루스
[대림칼럼] 우리들의 블루스
  • 조은경 재한조선족작가협회 이사
  • 승인 2022.06.21 1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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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돌잔치 뒤풀이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이가 나이니만큼 이젠 남녀 구분할 것 없이 육아에 관한 화제를 꺼내 공유하기도 한다. 모두들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에 출연하는 오은영 박사의 진단과 솔루션이 주는 영향에 대해 공감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그래서 난 우리 애가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고 걱정된다니까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지만 일단 웃었다. 왜 굳이 장애라는 단어를 쓰면서까지 이런 심각한 고민을 지레 하는가. 그런데 육아하는 부모라면 아이의 사소한 언행에도 신경 쓰일 것이고 그런 프로그램을 자주 보다 보면 혹여 우리 아이에게도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혹은 미디어가 주는 정보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흔들리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오은영 박사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주는 공신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런 ‘소소한’ 메시지에 우리의 삶이 휘둘릴 필요까지야 있을까.

프로그램을 띄엄띄엄 본 나의 주관적인 감상을 곁들이자면, 의학적인 도움이 필요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따지고 보면 소통부재로 인한 문제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는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고 여길 때 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며, 지금 어떤 기분이 드는지 충분히 물어보거나 들어주어 이해하려는 경우가 드물었다. 오히려 자신의 기준에 따라 아이를 판단하고 자기주장대로 훈육하여 강압적이고 억울한 기분이 들게 함으로써 아이와의 갈등이 깊어지고 점점 더 아이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믿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런 장면을 보는 시청자는 또 어떤가. 자신의 아이가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아이의 사례와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고 느낄 때 그 진단과 솔루션에 귀를 기울이고 집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도움은 될 것이다. 그러나 아이마다 다 다른데 그 진단과 솔루션만으로 자기 아이를 판단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배달 앱을 켰다가 ‘MBTI E 성향은 고개를 들어주세요’라는 이벤트 문구를 본 적이 있다. 그 아래에는 술안주로 먹을 만한 메뉴를 파는 가게들이 노출돼 있었다. 살짝 반발심이 생기긴 했다. 뭐야, E 성향이 아닌 사람은 저런 음식을 먹지 말라는 건가, 아니면 E 성향이라면 저런 음식은 반드시 먹어줘야 한다는 건가. MBTI가 이미 혈액형이나 별자리처럼 회자되고 있다는 말은 들었다. 연예인들의 프로필에 MBTI가 적혀있고 마케팅이나 자기소개서에 MBTI를 활용하며 심지어 어떤 기업에서는 신구세대의 소통을 위해 사원들이 MBTI 검사를 의무적으로 받는다고 한다. 나의 MBTI는 ○○○○이며 이런 성향을 지닌 사람입니다, 또는 당신의 MBTI는 ○○○○이군요, 라고 해서 그 사람을 잘 파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장기적인 코로나 사태로 인해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메타버스의 세계’를 현실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 같다. 온라인을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의식주가 일정 부분 해결 가능하며, 눈을 마주치지 않고도 일을 하거나 모임을 즐길 수 있으며, 학교에 가지 않고도 공부를 하여 새로운 학년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어떤 삶이 더 나은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코로나 때문에 메타버스의 세계를 작으나마 직접 살아내고 있는 듯싶다. 문제라면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데에 익숙해지다 보니 우리는 이제 직접 머리를 맞대고 얼굴을 붉히거나 환희에 젖어 서로를 이해하려는 전의를 어느 정도 상실했으며, 비틀어진 관계의 회복을 두고 전전긍긍하는 삶에 덜 연연하게 된 게 아닌가 한다.

각설하고, 심리학에서 활용되는 MBTI가 왜 이토록 인기를 끌게 됐는지 생각해보니 여기에는 다소 오만한 감정이 실려 있는 것 같다.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구구절절 어필하는 게 귀찮다는 듯이 나의 MBTI는 이러이러한 성향이니 나와 소통할 때면 이런 면에 주의해주십시오, 나는 이러한 것들을 잘할 수 있다고 심리검사에서 이미 확인되어 인정받았으니 나의 인성이나 능력을 의심하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는 MBTI를 보면 서로의 단점을 보충하거나 비슷한 점이 많아서 더없이 완벽한 커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등등. MBTI를 등장시킴으로써 나를 좀 더 빠르고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고, 타인에 대한 정보가 좀 더 풍부하게 입력된다는 건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 효용성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고, 나는 이런 방식의 소통이 과연 가능한지 궁금하다. 하물며 MBTI는 스스로 조작이 가능한 심리검사인데.

인간관계가 형성되고 위기가 생기고 갈등이 해결되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복잡하고 다양하다. 최근에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만 봐도 그렇다.

노희경 작가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이 가슴에 와 닿고 내던지는 대사마다 마음에 들어박힌다. 드라마는 특히 ‘좀비’나 ‘시간여행’ 같이 자극적이고 환상적인 소재가 아니라도, 악 같은 건 필요 없이 오로지 주변의 평범한 일상만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중간에 소재가 일반적이고 가치관이 바랬다며 작가의 능력을 의심하는 글들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작가는 높은 시청률로 많은 사람에게 화답했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구성이 신선하다.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볼 법한, 14명이나 되는 주인공을 내세워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야기를 펼쳐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9개의 에피소드에 제목을 ‘한수와 은희’, ‘동석과 선아’, ‘옥동과 동석’ 이런 식으로 붙였다는 데에 더 눈길이 갔다. 이젠 거의 모든 드라마에서 매회 혹은 에피소드별로 주제를 드러낼 수 있는 소제목을 붙이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는 이름과 이름을 이어주는 식으로 소제목을 달았고 편폭이 길어지는 경우 거기에 숫자를 덧붙였다. 작가가 인간관계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는지, 우리들의 삶에 있어 인간관계는 그토록 어렵지만, 모름지기 풀어야 하는 숙제인지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다른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특이한 구성 때문인지 20회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한편의 소설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특히 주인공이 좌절을 극복하거나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방식이 구태의연하면서도 공감이 가서 판타지가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들 정도였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너무나 익숙해서 당연한 게 아닌가 싶은 갈등 해결방식이 보였다. 상처가 어떤 모양이든 상대방에게 터놓고 따져 그 사람의 ‘변명’을 들어보는 식이다. 그러니까 나의 일방적인 생각과 불만만으로는 인간관계가 회복되지 않는다. 자신에게 혹은 타인에게 관대하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를테면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은혜를 갚는다는 마음으로 매번 친구 미란을 ‘환대’하던 은희가 미란에게서 버림받은 뒤에야 서운했던 감정을 토해내고 뒤늦게 오해를 푸는 것이나, 엄마를 작은 엄마라 부르며 성장한 동석이 계속 옥동의 주변을 맴돌면서 애증의 마음을 드러내다가 여행 도중 끝내 자신한테 미안한 게 없냐고 따져 물은 뒤에야 엄마의 삶을 듣고 응어리가 풀리게 되는 것 등이다. 이는 이미 죽어버려서 더는 ‘왜 그 어린 딸을 두고 자살했냐’고 물어볼 수 없어 안타까워하는 동석의 연인 선아의 서사와 대조되는 부분이라 더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억울해하지만 말고 살아계실 때 직접 물어보라는 선아의 조언대로 동석이 엄마에게 그토록 따지고 싶었지만, 또 그렇게 망설였던 걸 보면 이런 소통방식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알 것 같다.

치고받고 싸우든, 의절을 하든, 관계를 회복하든 모든 언행에는 반드시 이유와 과정이 있다. 그것을 드러내지 않거나 감춤으로써 표출되지 않았던 감정들이 밖으로 나와서 부딪치는 순간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진다. 더욱이 요즘처럼 온라인으로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하는 시기에 이런 소통방식은 진부한 게 아니냐고 웃을지도 모르지만 필요 이상으로 절실하다. “우리들의 블루스”의 높은 시청률이 그것을 방증해주고 있다.

TV를 보면서 나의 아이에게 혹여 문제가 있진 않을까 걱정하는 것도 좋다. 나의 MBTI는 ○○○○인데 너는 뭐니 하고 물어보는 것도 좋다. 그러나 이런 것만으로는 상대방을 판단하고 그와 소통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그에 앞서 나를 말하고, 상대방에 대해 물어보아 감정을 드러냄으로써 서로를 알아가고 보듬는 소통과정을 거친다면 우리들의 삶은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필자소개
중국 화룡 출생.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학부 졸업. 한국 서울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수필, 소설 수십편 발표, 수상 다수. 재한조선족작가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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