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마지막 고별인사
[Essay Garden] 마지막 고별인사
  • 최미자 재미수필가
  • 승인 2022.07.09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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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로스앤젤러스에서 발행되는 신문을 우편으로 받아보곤 했다. 지금은 신문이 날마다 집으로 배달된다. 그 기쁨을 즐기는 사람은 남편이다. 방에서 오전 나절 신문을 독파하는 그이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 반면 늙은 노견까지 밥을 챙겨야하는 나는 오전시간이 늘 분주하다.

그래서 남편은 특종기사거리가 나오면 큰소리로 나를 부르거나 신문을 가져와 나의 코앞에 펼쳐 주기도 한다. 오늘은 갑작스런 부음소식에 우리 가족이 잠시 멍해졌다. 수년 전 고인이 타시로 이사를 가신 후에는 한 번도 뵙지 못했기 때문이다.

16년 전인가 보다. 한 지인의 소개로 그분을 처음 만났다. 잘못되어가는 한인사회를 바로잡기 위하여 잡지를 만들려 하니 도와달라고 청하였다. 나는 조용히 수필만 쓰던 터라 금방 대답을 드리지 못하고 망설였다. 한번은 점심을 사주시며 이민 와 고생했고 한때는 가발사업으로 성공한 이야기 등을 들려주셨다.

너무 많아 다 기억을 못 하겠지만 아무튼 대단한 분임을 느낄 수 있었다. 키는 자그마하고 머리는 염색한 것처럼 새까맣고 정의롭고 배짱이 두둑한 분, 매운 작은 고추 맛을 느끼게 하던 성품의 서울사나이였다. 다겟(Dagget) 길에 있는 옛 한인회관 건물 일 층의 넓은 첫 방(고인의 개인 사무실)이 그분이 준비하는 잡지의 편집실이었다.

디자이너와 나, 그리고 사장님. 회의하여 내 아이디어로 만든 잡지의 이름이 결정되니 다음날 ‘주필’이라고 인쇄된 내 명암 상자를 내밀며 잘해보자며 부탁했다. 내가 여성이어서인지 그분과 자주 식사를 한 적은 없다. 가끔 업무계획을 지시하거나 말하실 뿐. 한번은 법정에 가자고 하셨다.

내 생애에 처음 가보는 법정은 회장 입후보였던 여류인사가 부조리 선거와 공금에 대한 것들을 고소한 사건이었다. 고인의 말대로 여러 한인들의 얼굴을 그곳에서 볼 수 있었다. 어디를 가나 돈과 명예가 걸리면 이런 수치스러운 일들은 미국 동포 사회에는 유행병처럼 만연하고 있던 때였다. 당시 이만명도 안 되는 이곳에서도 한인잡지가 비싼 광고비를 받으면서부터 그런 불상사가 아마 시작되지 않았나 추측된다.

고인은 경복고와 연대 상대를 나왔고, 1980년 제6대 한인회장이었다. 지금처럼 공탁금 없이 여러분이 추대하여 봉사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사람이 그리워 이루어진 한인회는 민심이 따뜻했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고인은 수년간 잘못된 한인회에 퍽 분노하고 있었다. 1963년 도미하여 1974년부터 샌디에이고에서 사업을 하며 지도력이 뛰어난 분이었느니 당연했다.

지인들과 바둑을 두거나 골프를 쳤기에 주변엔 형님, 아우라며 따르는 분들이 많았다. 늘 지갑을 열어 식사를 사주던 분이었다고 들었다. 최근엔 아쉽게도 함께 어울려 한인사회를 걱정하던 분들이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났으니 그간 얼마나 허무했을까. 은퇴마을 라구나 우즈로 고인이 이사를 간 후엔 암 진단을 받았다는 슬픈 소식이 들려왔다. 한동안 다시 건강해지셨다는 전화의 목소리를 듣고 나도 안심했는데, 요 몇 해 내가 무심해버린 사이에 이렇게 부음소식이 온 것이다.

다음은 생전에 준비해둔 손수 만든 광고로 유가족이 올린 그분의 마지막 고별인사이다. “사랑하는 선후배 그리고 친지 분들께, 장기간 투병하면서 연락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근 60여 년간의 미국 생활에서 저를 아껴 주시고 격려를 해주신 지인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돌이켜보면 저에게는 엄청난 인연과 과분한 행운이었습니다. 특히나 여러분과의 사회활동은 큼 기쁨이었습니다. 이제 돌아갈 날을 앞두고 저의 운명에 장례식은 간략하게 가족장으로 할 것으로 유언했습니다. 어려운 이 시기에 저의 죽음이 여러분께 도리어 불편함을 끼칠까 우려됩니다. 여러분과 가족이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재덕 올림- ”

광고 속에 한참 패기 있던 모습의 그분 사진을 본다. 부고 속의 마지막 편지의 글귀를 보며 한동안의 추억에 잠기지만 아쉬움의 눈물이 흐른다.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처럼 황소고집이던 고인은 자신이 신념하는 일은 거침없이 밀고 나갔던 분이어서인지 가시는 길도 이처럼 당당했다. 누구나 한번 왔다가는 인생. 훗날 나도 화려한 장례식은 필요 없다. 이분처럼 맑은 정신으로 평소의 목소리나 글로 작별 인사를 지인들에게 나누고 떠날 수 있는 행운이 온다면 욕심일까.

필자소개
미주 한인언론 칼럼니스트로 활동
방일영문화재단 지원금 대상자(2013년) 선정돼
세 번째 수필집 ‘날아라 부겐빌리아 꽃잎아’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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