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성 칼럼] 뮤지컬 ‘명성황후’, ‘영웅’과 아베 전 총리 피살사건
[정대성 칼럼] 뮤지컬 ‘명성황후’, ‘영웅’과 아베 전 총리 피살사건
  • 정대성 문화칼럼니스트
  • 승인 2022.07.11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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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대학원 시절, 타과에 가서 공연예술론 과목을 이수한 적이 있다. 담당 교수는 공연예술계에서 유명하신 권위자 M 교수였다. 강의는 영어 원서를 번역하면서, 공연 감상문, 비평문, 전문 리포트를 쓰는 식으로 진행됐는데, 감상문을 쓸 공연으로 뮤지컬 명성황후가 지정된 바 있었다. 필자는 무대의 화려한 연출보다는 명성황후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들어서 그 공연을 비판했다가 담당 교수와 의견 충돌이 있었던 기억이 있다.

뮤지컬 명성황후는 민비 살해사건을 명성황후 시해사건으로 격상시키는 역사학계 움직임에 발맞춰 이뤄진 공연계의 움직임이었다. 이 뮤지컬은 대대적으로 기획되고 무대화되어 해외공연도 적극적으로 추진됐다. 그런 점에서 가위 국가적 프로젝트였다고도 할 만하다.

뮤지컬 작품이 만들어지고 해외공연까지 하는 것은 권장되고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경우, 해외에서 전혀 인기를 끌지 못했다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무대예술 기술의 미흡보다는 역사의식의 불협화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명성황후를 국모로 인정하지 않는다거나 낭인 미우라 고로오의 야만스러운 짓을 두둔하려는 게 아니다. 당시는 위급한 국제정세 속에서 망국의 위기를 피하고 독립 유지하면서 일본 뒤를 따라 근대화를 도모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그런 점에서 대한제국 시기 고종과 명성황후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그 자체가 복잡하게 엇갈려 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외세를 골고루 활용하면서 균등외교로 난국을 뚫고 나가려던 고종에 대한 평가가 우선 양극단으로 갈라져 있다. 러시아에 대한 무모한 신뢰, 야합은 과연 올바른 길이었는가 하는 의문도 불식시키기 어렵다.

자강독립 노선을 아슬아슬하게나마 유지하려던 고종이 영미의 도움으로 근대화에 성공해가던 일본에 등을 돌려 러시아를 선택한 것은 치명적 패착이었다. 그 국운을 좌우하는, 망국으로 나아가는 실수에 명성황후가 한몫했음은 역사적 사실이다. 지금 또한 영미 앵글로색슨 및 유대 국제금융자본의 시대가 지속되고 있다. 그렇게 볼 때 뮤지컬 명성황후는 국내에서 국뽕 정서에 호소할 순 있어도 해외에서 성공적으로 받아들여질 리가 없음은 불 보듯 뻔하지 않을까? 서울대 M 교수에 대해 비판을 하는 게 아니라, 그런 실력과 영향력 있는 지성인, 권위자마저 이 쉬운 이치를 무시했으니, 일반인들은 오죽했을까?

그런 뒤, 필자는 안중근 의사 관련 극예술영화 기획에 관여할 뻔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이미 뮤지컬 영웅이 유행하고 있던 때라, 그 뮤지컬 작품과 같은 맥락으로 안중근 의사를 미화하는 영화를 찍고 싶은데, 시드머니가 없으니 일본에서 끌고 왔으면 좋겠다는 한국 영화인들을 만났다.

필자는 일본 메이지대 대학원 시절에 안중근 의사가 쏜 총알이 빗나갔다는 설을 지도교수로부터 강의받은 바 있다. 그때부터 몇십 년 지나, 일본에서는 그 설이 많은 지지를 얻어 여러 역사학자, 역사작가 등이 책으로 낼 정도로 연구가 축적되어오고 있다. 필자는 한일 합작으로 안중근 의사 영화를 만든다면, 일본에서의 그런 새로운 관점을 넣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일본에서 시드머니도 끌고 올 수 있으며, 일본사람들, 나아가 전 세계 사람들이 흥미롭게 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냥 영웅미화담으로 끝난다면, 굳이 한일 합작으로 만들 필요가 없고, 한국에서 단독으로 만들되, 그것은 결국은 자기만족일 수밖에 없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해줬다.

그런데 그 한국인 영화인들은 필자의 말을 잘 이해 못 했던 것 같다. 안 의사의 총알이 빗나갔으면, 안 의사가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을 죽인 것이 아니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안 의사의 의거를 부정하게 된다는 의문을 제기했다. 필자는 안 의사의 그 용감한 행동에 대한 경의와 찬양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안 의사가 영웅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역사적 사건의 이면에는 복잡한 역학관계가 도사리고 있을 수 있고, 그런 숨겨진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영화의 역할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일부 일본 역사학자들이 밝히고 있듯이 일본의 메이지유신은 한반도계 사람들이 영미의 지원을 받아 일으킨 혁명으로 볼 수 있다. 근대 일본의 주역들은 그런 세력들이었으며, 이토 히로부미 또한 야마구치현의 출신으로 한반도계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 문맥에서, 점진적 평화주의자이자 입헌주의자인 이토 암살의 주범은 일본의 토착세력 중에 청일, 러일 전쟁 때 시골 농촌에서 동원되어 희생이 컸던 군부 군인들이라는 설이 있다. 특히 대륙진출을 강하게 바라고 있던 육군 세력이라는 설도 있고, 국제금융세력이 러시아를 시켜서 이토를 제거했다는 설도 있다. 이 같은 여러 가지 추측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그전에 외세는 이토를 시켜서 메이지 천황을 새로 만드는 일을 연출했다는 설도 있다. 그 설에 따르면 이토가 황실의 진짜 후계자를 암살했고, 메이지 천황이 된 자는 이토가 내세운 시골 출신 한반도계 인물이었다는 설까지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사실(?)을 안 의사가 어디서 들었는지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안 의사가 쓴 이토 살해 이유서에서 이유 중 하나가 이토의 그 암살 행위라고 열거한 것이다.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이토의 동양평화론과 공통점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안중근 의사가 참된 영웅적 용모를 지녔음을 알 수 있으며, 동시에 이토 또한 한국인들이 달리 봐야 하는 요소들을 지닌 인물임이 틀림없다.

며칠 전 이토와 같은 한반도계 마을 출신 유력가문 일원인 아베 신조 일본 전 총리가 거리연설 와중에 저격당해 죽었다. 이 사건에 대해 단순 애도부터 얄팍한 조소까지 여러 가지 반응들이 있다. 배경해석도 개인 원한부터 음모론까지 있다. 하지만 필자가 유심히 본 건 영미를 비롯한 해외의 반응이 죽은 아베를 아주 특별 대우하듯 하는 모습들이다.

안중근 의사의 이등박문 저격은 세계적 파문을 일으켰다. 한반도도 경술국치의 회오리에 휘말려 들었다. 이 같은 역사적 교훈을 되돌아본다면 지금, 이 시점은 우리나라에 일시적이나마 위태로운 상황이다. 한류가 무르익어, 한국에 세계 주류 흐름의 기가 흘러들어오고 있던 좋은 시점에 순간적으로 먹구름이 드리워진 느낌이다. 이토 히로부미 이후의 상황처럼 아베 암살이 가져올 후유증이다. 국제사회에서는 뮤지컬 명성황후, 뮤지컬 영웅의 국뽕이 통하지 않는다.

정대성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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