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희의 음악여행 ㊱] “내 음악에 집중하지 마세요” 미니멀리즘의 선구자 ‘에릭 사티’
[홍미희의 음악여행 ㊱] “내 음악에 집중하지 마세요” 미니멀리즘의 선구자 ‘에릭 사티’
  • 홍미희 기자
  • 승인 2022.07.18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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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사티[사진=위키커몬스]

내게 에릭 사티는 정원의 구석에 있지만 너무 매력적이어서 눈을 뗄 수 없는 꽃과 같다. 에릭 사티(Satie, Erik Alfred Leslie, 1866-1925)는 동시대보다는 현대에 오면서 더 그 매력을 인정받는 작곡자다. 그의 인생은 고달팠다. 스스로 가난뱅이 씨라 부르던 괴짜, 천재 그리고 순정파였던 그의 음악은 의외로 단순하고 편하고 아름답다. 요즘처럼 비가 오다가 갑자기 폭염이 와서 견디기 어려울 때 듣기 딱 좋다.

그의 일생을 간단히 살펴보자. 1866년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사망한 후 아버지의 재혼으로 조부모 아래서 성장한다. 이후 1878년 12살에 아버지가 있는 파리로 가지만 새어머니와 불화를 겪는다. 다음 해인 13살에 파리 음악원 예비학교에 입학하여 음악을 배웠지만 작곡 선생님은 피아노를 전공하라 하고, 피아노 선생님은 작곡을 전공하라는 등 게으르고 재능이 없다는 평가에 학교를 그만둔다.

학교를 그만둔 그는 1882년, 16살에 군대에 입대했지만 자유롭고 반항적인 성향의 그가 군대에 잘 적응했을 리 만무하다. 알몸으로 보초를 서는 등 반항적인 행동으로 기관지염에 걸린 그는 군대에서도 조기 제대한다. 이후 그는 몽마르트르 언덕의 카바레 검은고양이에서 일자리를 얻어 연주하며 생활한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사라방드, 짐노페디, 그노시엔느 등이 이 시기의 작품이다.

달리는 운동선수들(클레오프라데스 화가의 파나테나이아 암포라, 기원전 500년경) <br>
달리는 운동선수들(클레오프라데스 화가의 파나테나이아 암포라, 기원전 500년경) 

짐노페디는 1888년 22살에 쓴 곡으로 고대 그리스의 토기인 암포라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만든 곡이다. 그 암포라에는 그리스의 소년들이 나체로 춤을 추면서 디오니소스를 찬양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디오니소스 축제와 카바레의 사티를 상상하면서 짐노페디를 들으면 너무나 사색적이고 고요한 음악에 어! 하는 느낌을 받는다.

짐노페디는 3곡으로 만들어졌는데 1곡은 느리고 고통스럽게, 2곡은 느리고 슬프게, 3곡은 느리고 엄숙하게 라는 지시어가 있다.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음악으로도 많이 사용되어 음악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들으면 아~하고 알 수 있는 곡이다. 그노시엔느는 오늘날 뉴에이지 음악이라고 회자되기도 하지만 깊이 있는 화성과 곡의 구성으로 대중음악이 아닌 클래식음악으로 평가받는다.

사실 파리음악원을 다녔고 클래식음악을 한 사람이라면 필하모니나, 그에 맞는 작곡, 연주와 레슨을 하는 것이 정형화된 길이다. 그렇지만 그는 돈도 필요했고 그의 연주나 음악에 대해 날카롭게 평하는 사람이 없는 카바레에서 연주하고 살아가는 것이 마음이 더 편했던 것 같다.

카페 검은 고양이(르 샤누아)
카페 검은 고양이(르 샤누아)

1800년대 말, 1900년 초의 몽마르트르는 예술에 대한 열정과 낭만으로 끓어올랐다. 몽마르트르에는 음악뿐 아니라 모든 예술분야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우리는 서로가 알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주고 또 받는다. 예술에서도 서로의 만남을 통해 예술의 사조가 바뀌기도 하고 의식적으로 따라 하기도 한다. 또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예술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는 이곳에서 그의 인생에 영향을 준 많은 사람들은 만났다.

몽마르트르의 카바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인상파 화가 로트렉이다. 사티는 로트렉을 통해 평생의 사랑을 만났다.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사랑이 있다. 그 사랑은 지금의 남편, 부인일 수도 있고, 마음속 어딘가에 있는 그림자일 수도 있다. 아니면 어린 시절 편지 한 장을 건네주던 작은 소년일 수도 있겠다. 사티에게 유일한 사랑은 수잔 발라동이었다. 수잔 발라동을 위해 쓴 곡으로는 너를 원해(je te veux)가 있다. 제목부터 노골적인 사랑의 노래다. 원래는 성악곡으로 가사가 있지만 피아노곡으로도 많이 연주된다.

어쩌면 강하게 표현하는 성악곡보다 여린 느낌의 피아노곡이 더 좋은 것 같다. 가사 일부분을 보자. “나는 당신의 고뇌를 이해해요. 사랑하는 이여 나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따를 거예요.” 왈츠 형식의 간단한 반주에 쉬운 멜로디가 마음속에 박히는 곡이다. 사랑은 시간과 시대에 상관없이 흐른다. 130년 전 그들이 느꼈을 아린 감정과 두근거림은 지금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네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 곡 역시 한 곳만을 바라보았던 그의 사랑처럼 단순하고 아름답다.

왼쪽 그림은 로트렉이 그린 수잔 발라동, 오른쪽은 르누아르 가 그린 수잔 발라동(부지발에서의 춤)
왼쪽 그림은 로트렉이 그린 수잔 발라동, 오른쪽은 르누아르 가 그린 수잔 발라동(부지발에서의 춤)

잠시 수잔 발라동이 어떤 사람인지 살펴보자. 그녀는 세탁일을 하는 어머니의 사생아로 태어나 서커스 단원으로 일했지만 부상을 입고 몽마르트르에 정착한다. 그녀가 처음 몽마르트르에서 만난 사람은 화가 르누아르다. 르누아르 그림의 주인공들이 수잔 발라동이다.

이후 인상파 화가인 로트렉, 드가, 사반느 등의 모델이 되기도 하고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그림에 대한 재능을 발견했고, 그녀 역시 그림을 그리게 된다. 많은 화가들의 모델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또 배우기도 하고 영향을 받기도 했을 것이다. 결국 그녀는 프랑스 최초로 여성 국립 예술원 회원이 된다.

카바레에서 피아노를 치던 사티는 로트렉과 같이 있는 발라동에게 반해 구혼을 했다. 이때 발라동은 사티의 초상화를 그려주었다. 그는 27살에 만나 6개월을 같이 살았던 그녀를 혼자서 알코올 중독으로 59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잊지 못했다. 그녀와 헤어진 후 아무도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했던 3평 남짓의 작은 그의 작은 방에는 피아노와 발라동이 그린 사티의 초상화, 그리고 그녀에게 쓴 보내지 못한 편지들이 있었다. 반면 발라동은 새로운 사람들을 계속 만나며 삶을 이어가다가 “예술은 우리가 증오하는 삶을 영원하게 한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수잔 발라동이 그린 에릭 사티
수잔 발라동이 그린 에릭 사티

사티는 자신이 음악을 연주할 때 청중들이 와서 자유롭게 돌아다니기도 하고 의자에 앉아 대화도 하면서 편하게 들을 수 있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을 ‘가구음악’이라고 말한다. 집안에 꼭 있는 가구처럼 그냥 그 자리에 있으면서 방해되지 않고 생활 속에 있는 음악이라는 뜻이다. 이는 오늘날 카페, 백화점 등 어디에나 깔려있는 배경음악인 BGM과 같다. 그는 카페의 손님들이 자신이 치는 피아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제 음악은 집중해서 듣는 음악이 아닙니다. 계속 말을 하세요. 음악은 듣는 게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그에게서 음악에 대한 마음을 헤아려 본다. 연주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음악적 지식과 고정적인 관념에서 벗어나 부담 없고 자유로운 음악을 듣고 연주하자는 마음이 아닐까. 이렇게 간결하고 곡 하나가 3분을 넘지 않는 축소된 음악, 반복되는 동기의 연주로 현대 미니멀리즘의 선구자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벡사시옹 악보 원본
벡사시옹 악보 원본

반복되는 그의 음악의 가장 대표적인 곡은 누가 뭐라 해도 벡사시옹(짜증)이다. 이 곡에는 연주자에게 주는 메시지가 쓰여 있다. “한 개의 동기를 840 연주하시오. 미리 준비하고 절대적인 침묵 속에서 미동도 없이 연주하시오.” 악보대로 연주한다면 20시간이 넘는 이 곡을 실제로 연주한 사람은 존 케이지였다.

그리고 이 음악회에 끝까지 앉아 있었던 사람은 확인할 수 없지만, 앤디 워홀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괴짜였던 그의 면모는 실생활에서도 볼 수 있다. 늘 똑같은 옷을 한꺼번에 주문해서 똑같은 옷을 입고 우산을 들고 다녔다. 또 시간표에 따라 몇 시 몇 분까지 똑같은 생활을 했고 식단은 흰색의 음식만 먹었다.

이 시대 낭만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다른 예술 사조에게 영향을 주고 서로 협업하기도 하면서 다른 나라의 사조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의 작품인 발레곡 파라드(parade)를 보자. 디아길레프의 발레뤼스(러시아 발레단)에서 발표한 발레곡의 대본은 장콕토가 썼다. 또 무대와 의상은 피카소였고 음악 담당은 에릭 사티였다. 그야말로 별들의 모임이다. 지금 이런 사람들을 모아 공연을 한다면 제작비가 얼마나 들까? 제작비도 그렇고 다양한 개성을 가진 이들이 함께 모인다는 것은 역시 어려운 일이다.

오늘은 ‘나는 너무 늙은 시대에 너무 젊게 세상에 왔다’라고 말했던 외로운 사람, “제발 내 음악에 집중하지 말아 달라”는 그의 말처럼 음악을 어려워하지도, 열심히 듣지도, 신경 쓰지도 않으며, 심지어 음악이 있다는 것을 아예 잊은 듯 살아가는 하루를 지내보자. 단, 옆에 음악은 꼭 있어야 한다. 음악을 무시하기 위해서.

피카소의 막간 무대휘장
피카소의 막간 무대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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