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래일대륙학교 우즈벡 탐방기] 실크로드에서 ‘대륙의 꿈’을 꾸다
[희망래일대륙학교 우즈벡 탐방기] 실크로드에서 ‘대륙의 꿈’을 꾸다
  • 황광석(사단법인 희망래일 상임이사, 대륙학교 교감)
  • 승인 2022.07.21 1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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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간산 리프트
침간산 리프트

“드디어 대륙을 밟게 되는구나!”

‘희망래일 대륙학교’ 연수팀 20명이 6월 24일부터 29일까지 4박 6일간 우즈베키스탄을 다녀왔다. 희망래일 대륙학교(교장 정세현)는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해마다 봄과 가을에 연해주 연수를 진행해왔다.

하지만 코로나 펜데믹으로 대륙학교 7기부터 10기까지 2년 동안 연수가 중단됐다. 코로나가 잦아들면서 여행길이 열리나 싶었는데 다시 우크라이나 사태가 일어났다. 그로 인해 러시아 하늘길이 막히는 바람에 연수팀은 연해주 대신 우즈베키스탄으로 대륙연수를 떠났다.

‘한반도 대륙성 회복 프로젝트’ 희망래일 대륙학교는 봄, 가을 각 3개월간 총 12강좌와 대륙연수로 구성되어 있다. 섬나라처럼 반도에 갇혀있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북한과 대륙의 정치·경제·사회·역사·문화에 대하여 학습하고 실천하는 시민교육 과정이다. 올 9월에는 12기를 맞는다.

사마르칸트 고속기차 플렛폼
사마르칸트 고속기차 플렛폼

이번 연수는 2019년 10월 대륙학교 6기 연해주 연수를 다녀온 후 2년 8개월 만에 열렸다, 그해 12월 1일 ‘TKR-TSR 연결 기원, 한러 청소년 오케스트라 공연’ 행사차 블라디보스토크에 다녀왔다. 그 후 2년 반 만에 유라시아대륙 깊숙이 방문하게 되면서 대륙학교 교감인 나도 가슴이 설렜다.

우즈베키스탄은 소련, 즉 소비에트연방 사회주의 나라다. 이 때문에 학교에서 세계사 공부할 때도 거의 배우지 못했다. 실크로드가 지나가는 길목에 ‘~스탄’ 자가 붙은 5개 나라가 있다는 정도였다고 할까.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 국가 중 인구가 가장 많다. 동서 교류의 중심지이며, 고려인 동포 18만 명이 살아가고 있는 중앙아 중심국가다. 무관심하거나 소홀히 대해선 안 될 중요한 나라다. 작년 12월에 문재인 대통령과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이 세 번째 정상회담을 하고,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 심화를 위한 공동성명’을 채택해 양국 간 우호·협력 관계를 격상시키기도 했다.

문재인-미르지요예프 대통령 정상회담 사진
문재인-미르지요예프 대통령 정상회담 사진

6월 24일 오전 7시 30분, 연수팀은 출발을 위해 인천공항에 모였다. 우리는 <허선행의 한글아리랑> 책 100권을 일행들의 짐에 골고루 나누었다. 책의 부제는 ‘타슈켄트1 세종학당장의 우즈베키스탄 한국어교육 30년 기록’. 1992년 3월, 스물일곱 나이에 우즈베키스탄 한글학교 교사로 봉사활동을 갔다 그곳에서 한글교육에 청춘을 다 바친 허선행의 삶을 조철현 작가가 기록한 책이다. 나는 ‘한길로 산다’는 말이 허선행 같은 분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세종학당을 방문하여 허선행 학당장의 특강을 듣고 세종학당 소개를 받는 여행 일정이 있었다.

비행기는 중국 타크라마칸 사막을 지나 천산산맥을 넘어 타슈켄트에 7시간 만에 도착했다. 천산산맥은 길이 2천km에 너비가 400km에 이른다. 워낙 크고 높은 산맥이라 비행기 창문으로 천산산맥의 만년설이 드문드문 보였다.

입국 심사는 예상 밖으로 신속하게 진행됐다. 가이드를 맡은 수산나 씨의 말에 의하면 “한국의 공항 운영기술진이 공항 운영 노하우를 우즈베키스탄에 전수했다”고 한다. 한국 ICT 기술력을 우즈베키스탄 공항에서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타슈켄트 고속기차 내부
타슈켄트 고속기차 내부

첫 방문지는 타슈켄트 국립역사박물관과 아미르 티무르 박물관이었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시대별로 일목요연하게 역사 유물과 건축물의 축소모형을 전시해 두어 우즈베키스탄 역사 발전상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한 곳이었다.

아미르 티무르 박물관은 티무르 제국에 대한 자부심을 가득 담아놓은 곳이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대제국을 형성했던 우즈벡 민족의 저력과 잠재력이 느껴졌다. 국립역사박물관에는 특이하게 현대 우즈베키스탄을 소개하는 전시공간이 무척 넓었다. 강대했던 우즈벡 민족의 영광을 현대에 되살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과시하는 듯했다.

2019년에 문재인 대통령이 우즈베키스탄을 국빈 방문하여 미르지요예프 대통령과 정상회담하며 악수하는 사진도 박물관에 크게 전시되어 있었다. 가이드는 “우즈베키스탄은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한국어로 인사하는 사람들을 거리에서 많이 만나게 될 거예요”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랬다. 우리 일행들에게 “안녕하시오”라고 반갑게 인사하는 우즈벡 사람들을 첫날부터 돌아가는 날까지 거리에서, 시장에서, 식당에서 수십 명 만났다.

아미르 티무르 박물관 외부전경(타슈켄트)
아미르 티무르 박물관 외부전경(타슈켄트)

이틀째 오전 일찍 우리 일행은 사마르칸트행 고속기차를 타러 타슈켄트역으로 갔다. 남북철도가 운행되고 있다면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이곳 타슈켄트까지 올 수도 있다. ‘2중 내륙국가(바다로 가려면 다른 나라를 2곳 이상 거쳐야 하는 국가)’인 우즈베키스탄은 기차가 주요 운송수단이다. 해운이 불가능하니 육상운송 중 기차가 가장 경제적이고 빠르다. 우리나라 KTX보다 속도가 느리고 객차의 세련미가 떨어지긴 하지만 한국의 4배 면적을 가진 내륙국가로서 매우 중추적인 교통기능을 하고 있단다. 우리가 탄 고속기차는 만석이었고 현대식 건물의 사마르칸트역 플랫폼에는 승하차하는 인파로 가득 차 있었다.

고속기차에서는 각종 과자, 음료수, 과일, 커피 등을 객실을 이동하며 판매하고 있었다. 과자, 음료수 파는 남자 청년 따로, 과일 파는 아주머니 따로, 커피 파는 아가씨 따로 각자 이동하며 영업하고 있었다. 많이 팔려고 아등바등하지 않고 여유롭게 파는 모습이 매우 평화롭게 보였다. 나는 과일과 커피를 사서 일행들과 나눠 먹었다. 차창 밖 푸른 벌판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소, 말, 양 떼들이 스쳐 보였다.

남북철도가 이어진다면, 대륙으로 열차를 타고 달리는 시대가 될 것이다. 나는 열차 안에서 그런 시절이 빨리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2018년 6월에 북한의 찬성으로 국제철도협력기구(OSJD)에 29번째 나라로 가입해 대륙철도 운행의 제도적 제약은 사라졌다. 그런데 DMZ 통제권을 유엔사가 갖고 있어 유엔사의 허락을 얻어야만 기차가 휴전선을 통과할 수 있다. 결국 국제정치적 문제로 우리 철도는 아직 섬나라처럼 휴전선 남쪽에서만 맴돌고 있는 형국이다.

사마르칸트 레기스탄 광장(박아람, 최희신)
사마르칸트 레기스탄 광장

철도는 망(網)이다. 네트워크다. 철도는 네트워크를 타고 부가가치가 증폭된다. 특히 부산은 해상운송의 동아시아 허브로서 대륙철도운송망과 연결되면 어마어마한 물류 혁명이 가능하다. 물류비용 절감에 물류 시간 단축이 겸해져 한반도 물류대혁명이 유라시아로 파급될 수 있다. 특정 나라만 이득을 보는 게 아니라 철도망에 연결된 모든 나라가 제각각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북한도 화물열차 통과료만으로 연간 10억 불의 수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런 ‘대박’ 프로젝트가 국제정치적 역학관계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니 참으로 안타깝다.

사마르칸트 레기스탄 광장에 있는 모스크(신전)와 신학교를 보고는 웅장한 규모에 놀랐다. 화려한 모자이크 타일은 예술미가 넘쳤다. 세계적으로 이슬람을 믿는 인구가 20억 명을 넘는다고 한다. 해가 갈수록 이슬람 인구가 늘어간다고 한다. 불교와 기독교보다 더 늦게 창시된 이슬람이 오늘날 가장 번창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혹자는 이슬람이야말로 평화를 최고 가치로 삼는 종교라고 했다. 하루에도 다섯 번씩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며 수시로 금식하고 음주를 삼간다. 전쟁을 불사하는 호전적인 종교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그것은 서방이 조장한 ‘이슬람포비아(이슬람에 대하여 막연한 공포와 혐오를 느끼는 증세)’의 영향 탓이라고 한다. 우즈베키스탄 국교는 이슬람이다. 우리가 만나는 우즈벡사람들의 인상은 순진하고 착해 보였다. 이슬람국가 IS의 살벌한 이미지와는 느낌이 달랐다.

아프라시압 박물관(고구려 사신도)
아프라시압 박물관(고구려 사신도)

사마르칸트는 ‘실크로드의 심장’이라 불리는 중간 기착지이다. 아프라시압 지하궁전에서 발견된 고구려 사신도는 우리 민족이 실크로드를 이용하여 중앙아시아까지 교류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고려 개성상인이 아랍 상인과 활발히 무역했는데 고구려 시대까지 교류 역사가 올라가게 된 것이다.

아프라시압 역사박물관 유적을 관람하고 나오니 밖은 더위가 한창이었다. 남쪽 나라 이란에서 사이클론이 발생하여 뜨거운 공기를 우즈베키스탄으로 밀어 올려 이상 고온 현상이 발생했다고 한다. 한낮 기온이 40도를 넘나들며 습기도 있고 햇볕도 따가웠다.

우리는 박물관 계단 좌우의 나무 그늘에 앉아 더위를 식혔다. 마침 우즈벡 여인들도 주변에 있었다. 우리 일행중 한 분이 붙임성 있게 여인네들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그들도 싫어하지 않고 방긋 웃으며 사진 촬영에 즐겁게 응해 주었다. 그러자 너도나도 기념사진 찍느라 한바탕 난리가 났다. 이질감 없이 자연스레 어울리는 모습을 보니 수천 년 전부터 우리와 교류를 활발히 한 게 틀림없는 것 같다.

아프라시압 박물관(이동섭과 우즈벡 관광객)
아프라시압 박물관(이동섭과 우즈벡 관광객)

사흘째는 사마르칸트역에서 고속기차를 타고 부하라로 갔다. 부하라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에 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고 한다. ‘지붕 없는 역사박물관’이었다. 아르크 고성, 바라 하우스 모스크, 소련 시절에도 문을 열었던 중앙아시아 유일의 미르 아랍 메드레세 정통 신학교, 징기스칸이 파괴하지 않고 남겨두었다는 칼란 미나레트, 부하라 칸의 여름궁전, 칼란 모스크, 이스마일 샤마니 영묘 등 어마어마한 유적이 도시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약 3시간을 걸어서 관광해야 하는데 날씨가 더워도 너무 심했다. 차량 진입 금지구역이라 에어컨 나오는 버스가 진입하지 못했다. 땡볕에다 바닥의 복사열까지 온몸으로 받는 바람에 우리는 얼굴이 달아오르고 더위 먹은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래서 우리는 부랴부랴 가이드와 의논해 커피숍으로 향했다. 겨우 자리가 있는 곳을 찾아갔더니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야외 커피숍이었다. 그나마 지붕이 있어 다행이었다. 오아시스라는 게 이런 것인가 보다. 커피숍은 3층이라 부하라 유적지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파노라마 기법으로 스마트폰 촬영을 하니 여러 건물이 한 장의 사진에 다 들어왔다.

부하라 전경(커피숍 옥상에서 촬영)
부하라 전경(커피숍 옥상에서 촬영)

저녁 식사를 나비하우스 식당에서 했다. 맛있는 양고기 샤슬릭과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우즈벡 전통 악기 연주와 전통 공연을 감상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전통 의상 패션쇼였다. 그것도 프로 패션모델 네 명이 번갈아 나오며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인 듯한 의상을 선보였는데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날 최고 기온이 43도까지 올라가는 살인적인 더위였다. 하지만 관광을 마치고 흥미로운 공연을 감상하며 맛있는 식사를 하니 피로가 가시는 느낌이었다.

나흘째는 다시 타슈켄트 일정이었다. 우리는 하즈라티 이맘 광장으로 이동했다. 광장에 여러 건물들이 있는데 먼저 7세기에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코란 원본이 모셔져 있는 무이 무보락 메드레세 코란박물관을 들렀다. 코란 원본은 전 세계에 세 개만 있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티무르 황제 시절에 타슈켄트로 가져온 코란이란다. 소련 시절에 모스크바로 옮겨졌다가 다시 타슈켄트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이슬람 국가인 우즈베키스탄의 영적 보물 1호라 할만하다.

바로 맞은 편에는 바라크 한 메드레세 사원이 있었다. 청옥색 반원 지붕 기둥과 웅장하고 아름다운 타일로 치장된 출입문과 기하학적인 공간 구조물과 높다란 첨탑이 규모와 예술성 양면에서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무이 무보락 메드레세(코란박물관)
무이 무보락 메드레세(코란박물관)

점심 식사를 하고 타슈켄트 최대 풍물시장인 초르수 바자르로 이동했다. 어마하게 큰 돔 양식의 시장 건물에다 그 주변에 훨씬 더 넓게 형성된 시장은 우리 남대문시장 못지않게 커 보였다. 시장에는 말 그대로 ‘없는 것 빼고’ 다 있었다. 아이 쇼핑을 한 후 견과류 매장에 가서 호두, 잣, 건포도 등을 구입했다. 우즈벡은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이 많아 과일과 견과류가 특히 달고 맛있었다.

이어서 브로드웨이라 불리는 젊음의 거리로 갔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오가는 행인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거리의 화가와 조각가들이 벌써 자신의 작품을 펼쳐놓고 있었다. 가이드는 우즈벡에 전문 커피숍이 처음 생겨난 곳이 브로드웨이라고 소개했다. 퇴근 시간이 되면 멋쟁이들이 이 거리를 가득 메울 것이다.

오후 5시에 맞춰 타슈켄트1 세종학당을 방문했다. 오후반 학생들의 수업이 끝난 직후라야 우리 일행 20명을 맞이할 공간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1992년 3월 8일, 27세 허선행 청년이 고려인 한글 봉사로 첫발을 내디딘 곳이다. 당시엔 ‘타슈켄트 광주한글학교’라는 이름이었고 건물도 하나만 있었다고 한다.

타슈켄트(초르수 바자르)
타슈켄트(초르수 바자르)

광주시와 교사들의 후원으로 고려인들이 많이 사는 도시 5곳에 한글교실을 세웠는데 이후 후원금이 줄어들어 3년 만에 운영난을 못 이기고 모두 문을 닫았다. 타슈켄트 한글학교도 폐교될 처지였는데 허선행 선생이 교장을 맡아 30년을 이어왔으니 청춘을 다 바쳐 우즈베키스탄에 한글교육의 기틀을 세운 분이다. 올해가 한-우즈벡 수교 30주년이니 허선행 학당장은 수교 직후 입국하여 자리 잡은 ‘1호 교민’이다.

세종학당에는 우리가 초청한 소중한 두 분도 와 계셨다. 한 분은 연해주 한창걸 독립운동가의 손자인 한 블라디슬라브 어르신이었다. 그는 <고려사람>이라는 사이트를 운영하시며 고려인의 정체성을 지켜가고 있다. 또 한 분은 김 블라디미르(한국명 김용택) 어르신으로, 작가이며 고려인의 이주역사에 정통했다.

허선행 학당장께서 우즈베키스탄 한글교육에 대한 특강을 했다. 우리 일행중 한 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 이야기를 해달라”는 요청을 하자, 부모의 이혼으로 어렵게 생활하며 한글을 배웠던 우즈벡 여학생 얘기를 했다. 그 여학생은 한국 유학 장학생 특채 시험에 합격하여 한국으로 가면서 자신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고 한다. 허 학당장은 그 내용에 자신을 아버지로 부르게 해달라는 글귀가 있더라면서 울음을 터트렸다. 제자를 사랑하는 허선행 학당장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타슈켄트1 세종학당
타슈켄트1 세종학당

한글학교 초기에는 대부분 고려인이었으나 2000년을 넘어서면서 우즈벡 사람들의 비율이 높아졌고 지금은 80%가 우즈벡 학생들이라고 한다. 명실상부하게 한글이 ‘코리안 드림’의 언어로 자리 잡게 됐다. 허선행 선생은 “우리가 매일 먹는 빵은 소화돼 없어지지만 제대로 한 번 배운 한국어와 한국문화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꿈의 언어’가 될 것이라고 가르쳐왔다”고 했다.

그날 허선행 학당장과 한 블라디슬라브, 김 블라디미르 어르신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대접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침내 마지막 날이었다. 우리는 숙소에서 약 1시간 반을 달려 침간산으로 이동했다. 침간산은 천산(天山)의 우즈벡어이다. ‘하늘산’이니 산 높고 골이 깊을 수밖에 없어 45인승 버스가 아닌 12인승 승합차 두 대에 나눠 타고 이동했다. 가는 동안 광활한 대지를 맘껏 감상할 수 있었고 1시간 정도 달리니 침간산이 보이고 만년설 빙하가 드문드문 보였다. 기후 온난화로 빙하의 면적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침간산의 높이는 해발 3,309m에 달한다. 침간(Chimgan)이란 말은 ‘푸른 곳’이란 뜻이다. 침간산 꼭대기까지 걸어서 올라가는 트레킹 코스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왕복 10시간이나 걸려 우리는 산 중턱에서 리프트를 타고 침간산 꼭대기와 산 아래를 볼 수 있는 전망대로 올랐다.

침간산은 천산산맥의 끝자락에 있는 봉우리다. 끝없이 뻗어 나간 산자락의 기세를 보니 ‘천산’의 위용을 느끼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천산의 속살을 느낄 수 있는 트레킹을 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며 전망대에서 발아래를 굽어보면서 이런 상상을 했다.

“많은 민족이 그렇지만 우리 민족도 천손(天孫)의 전설을 갖고 있다. 1만 년 전,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이 백두산이 아니라 천산에 내려왔다면, 넓은 들판이 펼쳐지고 강이 흘러 살기 좋은 우즈베키스탄에 백성들의 터, 신시(神市)를 세우지 않았을까. 단군은 화백(和白)회의를 통해 백성들의 뜻을 수렴하고, 풍류(風流)로 세상을 다스렸으리라.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 정신이 여기 침간산 아래 넓은 들에서 실현됐을 법하다.”

차르박호수
차르박호수

침간산을 내려와 해발 1,600m에 있는 차르박 호수로 갔다. 침간산 만년설이 흐르는 강을 막아 형성된 인공호수로 규모가 엄청났다. 우즈베키스탄에는 바다가 없으므로 차르박 호수에 와서 물놀이를 한다. 우리는 호수 주변 맛집 식당에서 점심을 했다. 우리 바로 옆자리에서 한 우즈벡 대가족이 식사하는데 어린아이들의 숫자가 엄청 많았다. 며느리들이 각자 아이들을 무릎에 앉혀 음식을 먹여주고 있는 모습이 정감 넘쳐 보였다.

우즈벡 국민의 평균연령(중위연령)이 37세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45세다. 우리나라보다 8세나 젊다. 총인구에서 경제활동인구 비율이 높으니 그만큼 사회가 활력에 넘친다. 우즈벡 소개 책자에서 평균연령이 젊다는 것을 읽었지만 그 현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도 2002년 평균연령이 34세였으나 20년 만에 11세나 더 늙어졌다. 합계출생률이 0.8명대에 머물고 있어 국가나 지역공동체가 청년 자활과 육아에 대한 획기적인 지원책이 없는 한 앞으로 더 늙어질 것이다. 한국과 우즈벡이 활발히 교류하면 자극을 받아 우리나라도 젊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해보았다.

차르박호수 식당에서(우즈벡 가족들)
차르박호수 식당에서(우즈벡 가족들)

1937년 9월, 소련은 18만 명에 달하는 고려인들을 전격적으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켰다. 일제에 의해 나라를 잃고 타국 땅에서 살아가는 민족의 설움도 모자라 4천 킬로 넘게 떨어진 낯선 중앙아시아에 내버려졌다.

5년 후면 고려인들의 중앙아시아 정주 90주년이 된다. 3세대가 지난 지금은 소수민족 가운데 가장 잘 사는 민족이 고려인이라고 한다. 소련시절 노동영웅 칭호를 25명이 수여했는데 그중 21명이 고려인이다. 외국사절단들에게 자랑하는 콜호즈 협동농장이 김병화 농장, 황만금 농장 등 고려인들이 경작하는 농장이었다. “고려인이 앉은 자리에는 바위에도 풀이 자란다”말도 있다고 한다. 갑작스레 강제이주를 당하는 와중에도 볍씨를 챙겨가 벼농사의 재배면적을 넓힌 민족이다.

우리가 방문한 고려인마을은 타슈켄트 시내에서 차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시온고마을이었다. 고려인노인회관에 버스가 도착하니 벌써 최 게오르귀 어르신이 길가에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회관 안으로 들어서니 고려인 아주머니, 할머니들 10여 명이 예쁜 합창단복과 한복을 입고 우리를 맞이했다. 간단히 서로 인사를 한 후 고려인합창단이 우리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었다. 고향의 봄과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들으면서 가슴이 찡해졌다.

시온고마을 고려인노인회관 리더 최 게오르귀 어르신
시온고마을 고려인노인회관 리더 최 게오르귀 어르신

지금은 고향이 우즈베키스탄일테지만 그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고향은 한반도이고 연해주이다. 노래 제목처럼 돌아갈 곳이 없었던 시절이 30년 전이었다. 이제는 수교하여 대부분의 고려인 어르신들의 자식과 손주들은 한국에 일하러 가고 공부하러 갔다고 한다.

그들은 우리를 위해 수박, 체리 등 맛있는 과일과 떡을 내놓았다. 우리도 어르신들을 위해 준비해 간 영양제와 소정의 금일봉을 드렸다. 약 40분 남짓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따스한 정이 오고 갔다. 어린 시절 경험했던 고향의 인심을 느낄 수 있었다.

고려인마을에 가기 전 아리랑요양원에도 들렀다. 김나영 원장으로부터 아리랑요양원은 고려인 어르신들을 위한 시설이며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에서 직영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모름지기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게 제일의 의무다. 일제하 고려인들은 나라를 빼앗겨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줄 수 있는 나라가 없었다. 얼마나 서러웠을까. 우리 정부가 고려인 어르신들의 노후 요양을 위해 보살핌을 지원하고 있으니 다소나마 위안이 되리라. 코로나19 때문에 고려인 어르신들을 직접 만나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김나영 원장의 야무진 모습을 보니 마음이 든든했다.

아리랑요양원 김나영 원장
아리랑요양원 김나영 원장

우즈베키스탄에서의 마지막 만찬에는 허선행 학당장 부부와 딸이 함께 했다. 그들은 우리를 배웅하면서 우즈벡 약초차를 선물해 주었다. 우리가 <허선행의 한글아리랑> 책을 100권이나 가져다주고 세종학당을 방문해 준 감사의 표시라고 했다. 정이 가득 담긴 고마운 선물을 받았다.

정이란 서로 주고받고 오고 가는 것이다. 서로 주고받고 오고갈 수 없는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 고려인 동포와의 만남과 교류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 어제 만났던 김용택(김블라디미르) 어르신의 고향은 북한이라고 한다. 따라서 남과 북을 모두 다 가보셨다고 한다. 그런데 남한 국적을 가진 우리는 북에 갈 수 없다. 서로 주고받고 오갈 수 없는 시절이 너무나 길고 기약도 없다.

희망래일 창립정신은 기차를 타고 북녘 동포들을 만나고 북한의 명소를 관광하고 유라시아대륙 끝까지 여행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드는 것이다. 이번 우즈베키스탄 역사문화탐방은 희망래일 창립정신을 다시 일깨우는 여행이 됐다. 함께 한 ‘대륙학교’ 졸업생들도 제각기 많은 것을 느꼈을 것이다. 중년들에게는 어린시절 고향 같은 향수를 느끼고, 청년들에게는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여행은 가는 곳도 중요하지만 함께 하는 사람도 중요하다. 4박 5일 동안의 우즈베키스탄 여행은 대륙학교 졸업생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 듯하다.

고려인노인회관 합창단 어르신
고려인노인회관 합창단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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