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조의 맛과 멋을 소개하고 창작을 북돋우기 위해 연재물로 소개한다. 고시조와 현대시조 각기 한편씩이다. 한국시조협회 협찬이다.[편집자주]
* 고시조
대쵸 볼 불근 골에
- 황희
대쵸 볼 불근 골에 밤은 어이 뜯드리며
벼 뷘 그르헤 게는 어이 나리난고
술 닉쟈 체 장사 도라가니 아니 먹고 어이리.
황희(黃喜, 1363〜1452)는 조선 태조부터 세종 때까지에서 18년간 영의정을 지낸 청백리이다. 이 작품은 가을철 농촌의 풍요로움과 즐거움을 노래하고 있는데 한가로움을 즐기는 선조들의 ‘멋’이 잘 표현된 풍류적, 낭만적인 시조로 흥겨운 농촌의 풍경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그려져 있다. 대추의 밤이 익어 저절로 떨어지고, 벼 벤 그루에 게가 기어오르고, 담근 술마저 익었는데 때마침 체 장수까지 지나가니 어찌 술을 마시지 않겠느냐는 시상 전개의 자연스러움이 돋보인다.
* 현대시조
일색변(一色邊).1
- 조오현
무심한 한 덩이 바위도 바위소리 들을라면
들어도 들어 올려도 끝내 들리지 않아야
그 물론 검버섯 같은 것이 거뭇거뭇 피어나야
조오현(曺五鉉, 1932~2018)은 시인, 승려로 대한불교조계종 신흥사 조실을 지낸 분인데 1968년 시조문학을 통하여 문단에 나왔다. 이 시조 ‘일색변(一色邊)은 초월한 일색의 경계를 뜻하는데 현상계의 상대적인 세계 즉, 유무(有無), 대소(大小), 선악(善惡), 시비(是非), 미추(美醜), 생사(生死) 등의 세계를 초월한 하나의 세계 즉, 일색(一色) 오도(悟道)의 경계를 뜻한다고 한다. 대립적인 시비분별이 끊어진 대붕일색(大鵬一色)의 깨달음의 세계이다. 구도자가 깨달음을 얻어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중생을 함께 부둥켜안아야 하고, 속이 터지고 손톱 발톱 눈썹까지 다 빠져서 문둥이가 되어야 큰스님, 도인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시인은 갈파하고 있다. 지장보살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극락이 아닌 지옥을 택했다고 한다. 우리가 무심하게 느끼는 바윗덩이도 그 제 역할을 다하려면 현상계를 초월한 무게를 지니고 현상계의 고난을 다 겪은 다음에야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다는 뜻의 선시조(禪時調)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