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조의 맛과 멋 ⑬] ‘오백년 도읍지를’과 ‘절망’
[우리 시조의 맛과 멋 ⑬] ‘오백년 도읍지를’과 ‘절망’
  • 유준호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 승인 2022.08.0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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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조의 맛과 멋을 소개하고 창작을 북돋우기 위해 연재물로 소개한다. 고시조와 현대시조 각기 한편씩이다. 한국시조협회 협찬이다.[편집자주]

* 고시조      
          
오백년 도읍지를
- 길재

오백 년 도읍지(都邑地)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니,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길재(吉再, 1353∼1419)는 고려 말 충신으로 호는 야은(冶隱)이다. 조선이 건국된 뒤 백의(白衣)의 몸으로 영화로웠던 고도(古都) 송도(松都)에 와서 인재들은 흩어져 없어지고, 폐허가 된 것을 보고 인생무상을 느껴 읊은 작품으로 고려 유신(遺臣)의 회고가(懷古歌)이다. 고려의 옛 도읍지 송도에 들러, 나라는 망하고 사람은 없어졌건만 자연은 예대로 아름다우니 인간의 부귀영화란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음을 탄식하며 옛 고려 송도에 있을 때의 영화, 그때의 인물을 찾을 길 없음에 고려 오백 년도 한낱 덧없는 꿈과 같다는 무상감을 비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 작품 밑바탕엔 자괴감, 무력감이 서려 있다.

* 현대시조

절망
- 이은방

한 오락 끊긴 빛줄 칠흑 깊은 수렁인데
가위 눌린 심혼을 뚫고 빠져드는 바다 밑에
별 꼬리 숨는 임종 길을 빗방울은 때린다.      

이은방(李殷邦 1940∼2006)은 충북 옥천 출신으로 호는 옥천(沃泉)이다. 196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나와 한국시조시인협회장을 지냈다. ‘한 오라기 희망의 빛줄기조차 끊어진 절망, 암울(暗鬱)한 깊은 어둠의 수렁 속에 빠져, 마음도 혼도 가위눌려 헤매며 깊은 바다 밑으로 빠져든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 긴 꼬리 끊어지듯 마지막 임종을 하고 가는 저승길에 슬픔 밴 빗방울이 가슴을 때린다’는 시조이다. 절망은 삶의 희망이 사라져 불투명한 앞날이 기다리는 상황이다. 붙잡고 기대볼 한 줌 지푸라기, 한 줄기 빛도 없어 삶을 버릴 지경이다. 절망을 벗어날 방도(方道)가 없다. 그래서 죽음만큼이나 무섭게 느껴지는 존재이다. 이 작품은 극한이 마음에 자리 잡은 인간 심리를 표현하고 있다. 빛과 칠흑, 심혼과 바다가 대립적 이미지로 쓰였고 임종은 빗방울에 호응하여 눈물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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