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의 붓을 따라] 복세편살
[이영승의 붓을 따라] 복세편살
  • 이영승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 승인 2022.08.17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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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때문에 만나지 못했던 몇몇 벗들이 모처럼 자리를 함께했다. 한 친구가 내게 “복세편살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나도 사자성어는 웬만큼 아는 편인데 어떤 한자를 대입해도 도통 뜻이 통하지 않았다. 도저히 모르겠다고 하니 집에 가서 사전을 찾아보라고 했다. 평소에 농담을 워낙 잘하는 친구라 음담(淫談)이나 우스갯소리이겠거니 했다.

집에 돌아와 핸드폰으로 인터넷 오픈사전을 검색하니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의 준말이며, 유사어(類似語)로 ‘나씨나길’이란 단어가 있었다. 다시 나씨나길을 찾아보니 ‘나 씨X(비속어) 나만의 길을 간다’는 뜻인데 흔히 복세편살과 조합해 같이 사용된단다. 국어사전에 이 같은 비속어까지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에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왜 하필 내게 그 질문을 했을까 궁금했다. 그렇다면 그는 내가 다른 사람보다 세상을 더 어렵고 복잡하게 산다고 생각했단 말이 아닌가?

가만히 생각하니 내가 남들처럼 세상을 편하게 살지 못하는 것 같기는 하다. 언젠가 무심코 듣고 넘겼지만 “휴전선 155마일 혼자 다 지키려고 하지 마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금지옥엽 키운 자식을 잃고도 세월이 흐르면 입에 밥 떠 넣으며 사는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내가 백년을 산다는 보장도 없지만, 그토록 산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으랴. 어느 날 이 한 몸 홀연히 눈감아도 세상은 변함없이 돌아갈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세상사 그러려니 하며 살지 못하고 하늘이 무너질까를 걱정하고 있다. 우연히 들은 복세편살 네 글자가 70년 넘긴 내 인생을 뒤돌아보게 하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돌아가는 상황은 어떤가? 세계는 바야흐로 신냉전체제로 돌입했으며, 우리는 강대국들 틈바구니에 끼여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분단된 전시 상태일 뿐만 아니라 코로나와 경제 불황 등을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게다가 국내 정치는 혼동과 갈등이 극치를 달리고 있으며, 여야 공히 당 내부 분열 또한 점입가경이다. 이를 보고 나라 걱정으로 잠 못 이루는 국민이 어찌 나 한사람뿐이겠는가?

삼성 이건희 전 회장은 ‘우리나라는 다 잘하는데 정치만 4류’라는 유명한 말을 남겨 많은 국민의 공감을 일으킨 적이 있다.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고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이면 우리나라의 정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정치인은 입만 떼면 “국민만 바라보며 살겠다”고 말하지만 사욕과 당리만 앞세웠지 진심으로 나라와 국민을 걱정하는 사람 몇이나 될까? 오죽하면 “정치인의 똥은 강아지도 먹지 않는다”는 말까지 있으랴.

국민이 긴 세월 피땀으로 이룬 나라를 잠시 관리를 위임받은 위정자가 사욕을 앞세우거나 무능하면 한순간에 몰락하고 마는 것이 바로 정치다. 현 정치판에 절망한 혹자는 “오늘의 상황에서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혁명밖에 없다”고 울분을 토하기도 하며, 그 말에 공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현대와 같은 정보화 시대에 혁명은 쉽지 않으며, 성공한다 해도 그들이 정치를 잘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결국은 국민이 정신을 차려서 정치를 감시하고 감독하는 수밖에 없다.

정치인은 누구나 개혁과 혁신을 부르짖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바로 정치개혁이다. 먼저 국회의원 수를 절반 이하로 줄이고, 그들의 보좌진도 한두 명으로 줄여야 하며, 권한과 특혜도 대폭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기초지방자치단체에까지 의회가 필요한지도 원점에서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되었다. 유럽 선진국을 모방해 의원 급여를 무보수 취지로 추진했지만 스스로 자정 기능을 잃어 지금은 그 많은 의원들이 고연봉이 된 지 오래이며, 하는 일이라고는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정치 자체의 개혁 외에도 시급히 혁신해야 할 과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중에서도 먼저 공무원의 정원을 엄격히 진단하여 최대한 감축해야 한다. 과거 정부가 하나같이 규제개혁을 외쳤으나 규제는 오히려 심해지고 있다. 규제를 줄이는 방법은 바로 공무원의 최소화이다. 공무원 연금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국민 혈세를 쏟아붓고 있는데도 그 대책은 손도 대지 못하면서 공무원 수를 마구 증원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공무원은 한번 뽑으면 인구가 감소하고 업무가 전산화되어도 구조조정이 어려우며, 도리어 그들이 법과 규정을 엄격히 적용하여 권한을 남용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규제이다. 이는 공무원의 존재 본능이라고 하니 누가 그 입장이 되어도 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 과정에 부패가 싹트게 되는데 부패는 나라를 가장 확실히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라고 한다.

혹자는 “고희를 넘긴 나이니 설마 우리 세대야 못살겠냐?”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백세시대라 아직 30년이나 남았다. 어떻게 이룩한 나라인데 이렇게 무너질 수는 없지 않은가. 정치에 무지한 일개 서생이 무엇을 알겠나 마는 정치가 나라의 발전을 선도하지는 못해도 발목은 잡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오늘도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나는 아무래도 복세편살은 할 수 없을까 보다.

필자소개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2014)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부회장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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