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성 칼럼] 8, 9월의 기억과 기적… 전후 재일조선인과 구 통일교
[정대성 칼럼] 8, 9월의 기억과 기적… 전후 재일조선인과 구 통일교
  • 정대성 문화칼럼니스트
  • 승인 2022.09.04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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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장군 동상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장군 동상

8월 ‘광복절’이면 이따금 TV에서 재외동포들의 다큐멘터리를 특집 프로그램으로 다룬다. 재일동포들도 3.1절과 광복절 특집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런 프로그램에서 그려진 재일동포의 이미지는 ‘차별받는 약자’나 ‘분단을 안고 사는 민족 비극의 상징’, ‘민족통일의 희망’ 같은 내용이다. 틀린 이미지는 아니다. 하지만, ‘재일조선인’이란 존재가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에 모자람도 느낀다.

그래서 필자는 오래전 재일동포 학자 윤건차 교수 및 한국의 연구자들과 함께『재일조선인 그들은 누구인가?』라는 책을 내면서, 재일동포에 대해 조금 다른 시각에서 조명하는 글을 써서 실었다. 예컨대, 시게미츠라는 일본 이름을 가진 롯데그룹의 신격호 회장과 박정희 대통령의 일화 같은 것을 썼다. 재일동포는 역사의 피해자이지만, 미국의 전후 동아시아정책의 최고 수혜자이기도 하다는 시각이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 본토에 ‘공습’을 했다. 목조가옥이 많다는 것을 알고 일반인들의 주거지역을 불사른 것이다. 시골에 친척들이 있는 일본인들은 ‘소개’해서 시골로 갔다. 돌아갈 시골이 없는 조선인들은 죽기살기로 동경, 오사카에 붙어 살았다. 이들은 불타 죽은 일본인 시체들을 처리하면서 잿더미가 된 땅에 터전을 일구기도 했다.

마침내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특수폭탄’이 투하됐다. 9월 8일에는 소련이 대일 참전을 시작했다. 9월 9일에는 나가사키에도 폭탄이 투하됐다. 필자의 할머니는 멀리 그 빛을 보고는 눈이 멀어졌다는 아픈 가족사도 있다. 미국이 일본제국주의를 그렇게 강타하여 대승을 거둠으로써 전후 세계에서 재일조선인이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우리나라 경술국치일 다음날인 8월 30일 맥아더 장군이 동경에 도착했다. 조선인 대학살이 있었던 관동대지진 기념일 다음날인 9월 2일 동경만의 미주리 함에서 일본 항복 조인식도 거행됐다. 거기에 나타난 일본측 대표는 상해에서 윤봉길 의사가 던진 도시락 폭탄으로 한 쪽 다리를 잃은 시게미츠 마모루 외상이었다.

‘전후’가 시작되자, ‘암시장’이 성황을 이루었다. 재일한국인을 두목으로 하는 야쿠자 조직들이 암약하게 됐고, 미국 민주화 영향으로 좌파가 강해지자 재일조선인을 선두로 하는 노동운동이 격화됐다. 소련은 북한에 영향력을 확보했다. 일본의 전범들을 재판하는 한편, 일본 천황과 리더들을 면죄해주면서 일본사회 경제 재건에 재일한국인도 활용됐다. 일본 내 좌파운동을 진정시킬 방법의 하나로 가난한 재일조선인들을 구제하기 위해 파친코 산업을 허가했다. 파친코 산업과 야키니쿠 사업으로 재일조선인들은 먹고 살 길을 열었다. 그 덕분에 지금도 이 산업은 재일동포 생활의 밑천이 돼 있다.

최근에 화제가 돼있는 구 통일교는 승공연합 등의 반공세력 육성정책으로 키워졌다. 그 결과가 자민당과의 유착이라는 형태로 이어졌다고 불 수 있다. 전후 일본의 평화헌법, 민주주의 교육은 양심적 일본인을 양산했다. 거기에 일본문화적으로(불교문화적으로) 영적인 문제에 일본인이 약하기 때문에 이른바 ‘영감상법’과 같은 수법도 먹혀들어간 것같다.

필자는 전에 어떤 맥아더 재단으로부터 맥아더를 주제로 한 영화를 제작할 것이니 시나리오를 집필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연유로 한국전쟁 관련 영화들을 알아보면서, 고 문선명 총재가 제작한 ‘인천’이라는 영화도 유튜브를 통해 전편을 봤다. 이 작품은 ‘대실패작’으로 소문 나 있는 만큼 여러 흠들이 있었다. 하지만 문 총재가 이 영화를 시작으로 ‘신의 계시’를 보여주는 12편의 영화를 찍을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맥아더의 인천상륙 작전의 성공을 ‘신의 뜻’으로 여겼다는 것 등은 흥미로왔다.

일부 영화평에 의하면, ‘인천’이라는 영화는 “너무나 한국 위주로 만들어서, 미국인들이 격노하여 흥행에 실패했다”는 등의 억설도 보이나, 실상은 그 반대다. 너무 미국 위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일본 (세계일보 회장 이시이 미츠하루) 자금이 들어간 탓인지, 일본 명배우 미후네 토시로오가 일본인 역을 맡아 기관총으로 북한군을 쏘아죽이는 대활약도 한다. 재클린 비셋이 미군의 부인 역으로 남쪽으로 피난 길을 가는 도중 한국 어린 여자애들을 차에 태우게 되면서 수녀원으로 안전하게 인도해주는 감동적인 장면도 있다.

맥아더 장군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군인가계에서 자랐다. 인디언들과 전쟁에 참여했던 집안 출신이다. 그는 필리핀에 오래 있었고, 일본제국주의 멸망을 노렸다. 그가 동경을 거쳐 인천에까지 온 것은 하늘의 뜻이었는지 모른다. 그는 중국에도 원자폭탄을 떨어뜨리자고 주장하여 사임당했다.

이 모든 일들이 ‘하늘의 뜻’이라고 한다면, 그의 존재 역시 모종의 천의를 반영한 것이었고, 그 기반 위의 오늘의 대한민국과 우리가 있게 된 셈이다. 분단된 채이긴 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발전상을 누리고 있는 것은 유엔군 병사들의 희생은 물론이거니와, 그 완강한 노장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우리가 ‘광복절’이라고만 부르는 8.15는 사실은 ‘대한민국 건국일’이기도 하다. 남한 단독선거로 대한민국을 건국한 것은 왕조로의 회귀에 대한 부정, 공화정의 확정과 분단의 기정사실화였다. 9월 8일은 1945년 미군정설치 기념일이고, 9일은 1948년에 북한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창건된 날이다.

소련, 동유럽의 붕괴로 ‘멸공통일’의 슬로건은 무색해졌지만, 일본에서 구 통일교와 자민당은 건재해있다. 지금 일본 매스컴은 구 통일교를 공격하면서 정교유착을 문제삼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동북아의 특수한 관계를 무시한 논의이다. 나아가 아베 전 총리의 ‘국장’ 결정은 일본사회가 너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베 총리는 오바마 대통령을 히로시마로 불러 사과를 받아내지 못하자, 진주만을 방문했을 때 역시 사과하지 않았다. 이런 일로 상징되는 그의 여러 정치적 주장과 시책을 보고 우익적인 일본인들은 그를 영웅시하고 싶은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자는 한국 좌익만큼 어리석어 보인다.

지금 한국은 너무나 ‘징용공’, ‘위안부’ 문제에 집착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미국 맹종의 한미일 동맹 노선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상고사부터 일본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이웃이 싫다고 이사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당부하든 아니든 주체적으로 일본과 사이 좋게 지내야 옳다고 생각한다. 맥아더 미국이 궁극적으로 노리던 만주땅에 지금도 미국이 전략적으로 다가감에 있어 일본 천황의 역할이 크다는 관측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 때에 일본 천황 방한을 이루면서 산적된 여러 문제들을 일괄 처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 것은 한일관계가 너무나 답답하기 때문이다.

정대성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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