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칼럼] 눈물만이 진실된 감정인가
[대림칼럼] 눈물만이 진실된 감정인가
  • 정련 재한동포문학연구회 이사
  • 승인 2022.09.16 14: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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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무척이나 아끼던 후배가 마음 아픈 일을 당했다. 회사를 그만둬야 하겠다고 이별을 고해오는 후배를 생각하면서 며칠이나 눈물을 흘렸다.

또 얼마 전에 2년 이상 준비했던 프로젝트가 드디어 중요한 진전을 보이게 되어, 축하파티를 가지게 됐는데, 사장님께서 진두지휘한 니가 한마디 해라 하고 하시는 말씀에, “우리 정말 고생 많았죠”라고 하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유독 요즘 눈물이 많은 것인가. 내가 감정표현을 솔직하게 한 것이 얼마 만인가 싶다.

미숙한 엄마였던 나는 갓난아이에게도 화를 냈다. 그러다가 차츰 화를 내더라도 짜증은 옳지 않은 것이라고 느끼면서 아이에게 보여주는 나의 모습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나는 늘 현명한 엄마여야 했고 아이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친구처럼 코멘트를 할 수 있는 엄마여야 했다. 성과는 나쁘지 않다. 사춘기인 아이와 진심 어린 대화가 잘 되고 있고 아이는 나에게 고민 이야기를 편하게 한다. 우리는 제법 친하고 서로에게 격려와 애정을 아끼지 않는 사이가 되어 있다.

얼마 전 막내 아이의 메타버스 속 부캐(본인의 두번째 캐릭터)를 발견하고 적잖게 당황했다. 사실은 화가 났던 것 같다. 10살 어린 아이답지 않은 과감한 대화들, 집에서는 허락되지 않는 욕설들, 죽고 싶다는 하소연을 보면서 아이의 폰을 잡고 한 시간 동안 아무런 말도 못 한 채 앉아있었다. 사실 나는 우리 아이들의 폰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남편 폰도 그렇다. 비밀번호도 모르고 뭘 하고 있어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그날은 막내 아이가 규칙을 여러 번 어겨 아빠가 폰을 압수하고 비밀번호를 누르라고 한 상황이었다. 그날 나는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 마냥 마음이 복잡했다. 결국 화를 내지 않고 조용히 한시간을 들여다보다가 “엄마가 생각이 정리가 잘 안 되어서 그러는데, 주말 동안 엄마가 고민을 조금 더 해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겠어”라고 하고 아이를 방으로 보냈다.

그 주말, 나는 오은영 선생님의 책을 사서 정독을 했다. 나의 놀라움과 정리 안 되는 생각은 100% 나의 무지에서 온 것이라고 확신했다. 요즘 아이들이 어떻게 놀고 있고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고 나에게 표현하지 않는 감정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일요일 저녁 막내 아이를 불렀다. “엄마가 너희 나이의 아이들이 어떻게 노는지 잘 몰라서 많이 당황했어. 엄마가 더 많이 공부하고 노력해보도록 할께. 다만, ‘죽고 싶다’고 한 너의 메시지는 캐릭터 설정에 필요한 것이였니, 아니면 진심도 어느 정도 섞여 있는 거니?”

막내로서 집에서 살아가면서 투정도 많고 영악하게 언니와도 부모와도 협상을 척척 잘하는 아이여서 미처 신경 쓰지 못했지만, 나름 외면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과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더 막내 아이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관심을 가지겠다고 약속했다. 이렇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나의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엄마여야 했고 엄마였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덧 만 16년이 됐다. 나는 상무라는 직급을 가졌고 본부장이라는 직책을 가졌다. 언제부터인지 편하게 점심 먹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금기시됐다. 오늘 점심 어떤 팀장님이 옆 팀 아이들과 점심을 먹는다고 해서 “나도 껴주라” 했더니 당황하여 달려왔다. “상무님, 점심은 제가 모실 터이니, 아이들끼리 가라고 하겠습니다. “

경제학을 전공한 나는 학부 때의 알량한 지식으로 회사라는 것은 효율성을 위한 조직이라고 생각했다. 항상 최선의 답을 가장 간결한 방법으로 찾아내야 하는 것이 회사원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선배에 대한 존경도 이로부터 출발했고 후배들에 대한 요구도 늘 이런 자세를 바탕으로 했다. 일하면서 틀린 것은 틀린 것이니 인정하고 수정하는 것이 당연했고 그런 틀린 점을 발견한 나는 지적을 정확하게 하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엄마가 되고 나의 아이를 바라보는데, 이렇게 사람과 사람이 다르게 태어나고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감정이 소중하구나를 느끼면서 내 생각은 완전히 바뀌게 됐다. 회사라는 곳은 누군가는 꿈을 이루기 위한 곳이고 누군가는 월급을 벌어 가족의 삶을 이어가기 위한 곳이고 누구에게는 중요성 1등급 80%짜리라면 누구에게는 중요성 n등급 20%짜리 곳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나는 ‘존중’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존중’을 시작하면서 내 ‘진심’을 숨기는 것도 함께 시작했다.

가장 쉬운 예를 들자면, 후배들은 증권발행 프로젝트 관련 계약서 검토요청을 늘 나에게 한다. 나는 늘 수정을 해서 후배들에게 돌려준다. 그 후 유사한 계약서가 왔을 때 내가 기존에 했던 코멘트를 참고해 수정해놓고 검토 요청을 하는 후배도 있지만 몇 번이나 똑같은 계약서를 보내는 후배도 있다. 물론 누구는 예쁘고 누구는 아쉽겠지만, 나는 늘 웃으며 수정을 해서 돌려보낸다. 매너라는 것이 장착되기 시작한 것이다. 조금도 용서 없이 잘못된 것을 지적질 하던 나는 수신자에 나도 포함된 이메일을 확인하고 잘못된 점을 알게 되면 1대1 회신으로 기안자에게 수정의견을 전달하고 그 기안자가 모두에게 수정이 된 이메일을 다시 공유하게끔 했다.

본의 아니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직급과 직책이 바뀌어 가게 됐고,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나날이 늘어만 갔다. 하지만 어느 순간 회사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정보’들을 알게 되면서, 중요한 ‘의사결정’들을 접해 가면서 나는 목소리를 숨기고 희망찬 척 웃으면서 지내게 되어 있었다. 회사란 정말 하나의 커다란 생명체 같아 하나하나의 결정에 따라 순식만변(瞬息万变)한다. 2천 명의 마음을 다루어 가는 회사는 하루하루 다이나믹 그 이상이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커다란 권리가 허투루 쓰일까 봐, 중요한 의사결정이 오해로 이어질까 봐 노심초사했고 더더욱 나의 진심을 깊숙이 숨길 수밖에 없었다.

12월 결산인 회사들은 대개 그렇겠지만, 10월쯤 되면 회사에 살생부가 생겨난다. 그만둬야 할 임원과 계속 함께할 임원, 남아서 끌고 갈 조직과 없애야 할 조직, 그리고 승진대상자들에 대한 평가와 심사 등등. 나는 회사가 돌아가는 생생한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 자로서 회식을 이어가며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혹여나 술 취한 나에게 중요한 정보가 튀어 나갈까 감히 술에 취하지도 못한 채 정신을 차리고 하루하루를 버텨 간다.

머리 기댈 곳만 있으면 숙면을 하던 내가 2016년의 어느 날 수면장애를 맛보게 됐다. 주저하지 않고 정신과를 찾아갔다. 나는 사소한 생각의 습관을 고치면 삶의 질이 훨씬 나아질 것 같다는 기대를 하고 찾아갔다. 3시간이 넘는 상세한 검사 결과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 감정표현을 억제한 나머지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고 한다. 당신이 뭘 상상했든 지금 상황은 그 이상이라고 한다.

그렇게 6년을 선생님을 만나 상담을 하며 약으로 숙면을 겨우 유지하며 버텨왔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직장생활이 길어지면서 나의 직급과 직책은 의도한 바와 달리 계속 바뀌게 되고 나를 해를 쫓는 해바라기처럼 살피는 사람들이 나날이 많아만 져갔다.

그동안 마음을 숨김없이 질렀던 적이 딱 한 번 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자리에 있는 나보다 더 고민을 해야 하는 분에게 조직에 대한 실망감을 가감 없이 표출한 적이 있다. 서로 알고 있으면서 터트리지 않았던 선을 튕기면서 속 시원한 후련함이 아니라 어떤 애매한 종류의 안타까움 같은 것이 느껴졌다. 서로의 속수무책함을 서로에게 확인시켜 준 느낌이라고 할까. 하지만 그분을 제외하면 나는 내가 알고 있는 회사에 대한 조직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와중에 정신과 선생님이 그 한자리를 맡아 주셨다. 그리고 나는 더 깊숙이 나를 숨기게 됐다.

지난주 중요했던 그 날, 우리가 2년 넘게 노력을 해오면서 절대 안 될 것 같은 고비도 여러 번 있었으나 포기하지 않고 시도를 해오던 일이 제대로 된 진도가 붙으면서 감독 당국에서 회사를 방문하여 ‘실사’를 하고 갔다. 너무 떨렸다. 내가 고3 때 대학시험(高考)을 볼 때도 그렇게까지 떨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치러야 할 절차를 마무리하고 방에 돌아왔지만, 방에 앉아있기가 어려워 괜히 서성거렸다. 1년보다도 긴 하루가 끝내 마무리되고 긍정적인 답변을 받고 그들은 돌아갔지만 나는 긴장감 때문인지 잘 돼 가고 있는 흥분 때문인지 더더욱 자리에 앉아있기가 어려웠다.

모두발언에서 눈물을 찔끔 흘리고, 끝까지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오늘 이상의 긴장감으로 모두 집중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러고 파티 2차에 가서 모두가 함께 울었다.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감정을 깊숙이 묻어 놓고 살다 보면 내 감정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전혀 알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나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인간의 언행, 표정이 주변에 끼치고 있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 그리고 나는 그러한 선한 영향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은 아무리 논리적으로 생각을 해봐도 뛰어넘지 못하는 나의 산 같은 것이다.

요즘 들어서 부쩍 눈물이 많아졌다. 나눠야 할 슬픔도 기쁨도 그만큼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긍정적인 변화라고 본다. 어쨌든 눈물만큼은 가장 진실된 내 감정인 것이다.

필자소개
2002년 흑룡강성 문과 수석, 북경대학 경제학원 국제경제무역학과 졸업, 동북아신문 칼럼니스트, 현재 브이아이금융투자 기획담당 상무, 재한동포문학연구회 이사, 수필 수기 칼럼 여행기 등 수십 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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