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승의 붓을 따라] 맨날 오늘만 같았으면
[이영승의 붓을 따라] 맨날 오늘만 같았으면
  • 이영승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 승인 2022.10.05 1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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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죽마고우 초등학교 동창이다. 어려서 인천으로 올라와 사업에 크게 성공했다. 골프를 워낙 좋아해 동반자까지 회원 대우를 받는 고가 회원권을 두 개나 갖고 있다. 부킹이 되면 수시로 나를 부르는데 가끔은 동반자 선정을 내게 위임할 때도 있다. 그때 나는 친구 한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초청한 두 사람으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들으니 배로 남는 장사를 한다. 골프 부킹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요즘이고 보면 ‘골프 마니아’라는 말을 듣기도 하는 내게는 그가 정말 보석 같은 친구다.

지난주에도 동반자 선정을 위임받아 내 지인들을 초청해 라운딩했는데 일주일 만에 선약이 없냐고 또 전화했다. 다른 일정이 있지만 못 간다고 이유 대면 앞으로 불러주지 않을까봐 무조건 가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자기가 동반자를 초청했으니 나 혼자만 오라고 하였다.

클럽하우스에서 일행을 만나 인사를 나눴다. 동반자 둘은 60대 초반 미모의 여성 CEO라고 사전 귀띔을 받았는데, 의복을 얼마나 화려하게 차려입었는지 첫눈에 보이기를 사오십대 귀부인 같았다. 그중 한 분은 짧은 치마를 세련되게 입은 모습이 마치 TV에서 가끔 보는 연예인 골퍼를 연상케 했다.

드디어 라운딩이 시작되었다. 첫 홀은 대체로 몸이 풀리지 않아 공이 잘 맞지 않는다. 그래서 스코어를 일파만파(네 사람 중 한 사람만 파를 해도 모두 파로 인정)로 적는 것이 통례이며, 그날 운전을 한 사람이 OB를 내면 멀리건을 주는 것도 로컬 룰이 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 남자는 여성과 동반 공을 치게 되면 평정심을 잃거나 주눅이 들어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하는데 나도 분명 그중의 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내가 첫 홀에서 기대도 하지 않은 파를 한 후 6홀까지 연속으로 파를 잡았다. 그리고 파5인 7번 홀은 쉽지 않은 코스였음에도 3온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퍼팅 거리가 20m 넘는 내리막이라 십중팔구 3퍼트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장갑을 벗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 골프라 하지 않던가. 운만 따르면 2퍼트도 가능할지 모른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가볍게 퍼팅했다. 그런데 세상에 이럴 수가, 공이 설 듯 말 듯 대굴대굴 구르더니 힘이 거의 다 소진된 상태에서 잠시 멈추었다가 땡그랑 하고 홀 안으로 떨어졌다. 버디가 된 것이다. 너무도 기묘해서 무어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7번 홀까지 합계 스코어가 –1(원 언더파)이니 나의 30년 골프 역사에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젊은 남자 캐디에게 두 손으로 버디 값을 바쳤다.

그런데 그토록 잘 맞던 공이 그 후부터 샷이 흔들려 8번 홀에서는 보기를 했다. 이런 경우 골퍼들은 흔히 ‘버디 값을 한다’고 말한다. 나도 그놈의 분에 넘치는 버디 때문이라고 위안을 했다. 그 후에도 3홀을 연속하여 보기를 하고 말았다. 오늘의 운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생각하며 마음을 비우기로 마음먹었다. 욕심을 비운 때문인지 다음 홀부터 다시 공이 잘 맞아서 파를 4개나 추가했으며 합계 78타로 라운딩을 마쳤다. 내가 2003년 부장 시절에 79타로 싱글 패를 받은 것이 최저타이니 19년 만에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다만 그때는 화이트 티에서 쳤는데 오늘은 나와 친구 둘 다 비거리가 짧아 시니어 티에서 쳤다. 솔직히 화이트 티에서 쳤다면 보기 플레이 수준의 내 실력으로는 엄두도 못 낼 기록이다.

골프가 직업인 프로들도 잘 맞는 날과 못 맞는 날은 10타 이상 차이가 나며,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잘 맞는 날을 ‘그님이 오신 날’이라고 한다. 나야말로 오늘은 신(神)이 내린 날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나는 여성들과 동반 플레이에 약한 줄만 알았는데 그것은 기우였음을 확인했으니 그것만도 작은 소득은 아니다. 문제는 오늘 내가 공을 너무 잘 쳐서 어쩌면 앞으로 또 불러줄지도 모르는데, 그때는 나의 본래 실력이 여지없이 탄로 나고 말 테니 그것이 조금 걱정이다.

어쨌든 쾌적한 날씨에 공을 싸게 쳤으며 기록경신까지 했다.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그 외에도 두 분 여성이 맛있는 간식을 가지가지 싸 와서 수시로 먹었으니 이런 칙사대접 골프는 생전 처음이다. 고마운 마음에 저녁을 사려고 했으나 짧은 치마를 입었던 사장님이 몰래 미리 나가서 계산해버렸다. 할 수 없이 차에 있던 수필집을 한 권씩 주고 인사를 대신했다. 세상에 어찌 이런 날도 있을까 생각하니 돌아온 후에도 내내 가슴이 설레었다. 남은 세월의 하루하루가 맨날 오늘만 같으면 정말 좋겠다.

필자소개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2014)
한국 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부회장
전 한국전력공사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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