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희의 음악여행 ㊳] 사라진 악기 아르페지오네
[홍미희의 음악여행 ㊳] 사라진 악기 아르페지오네
  • 홍미희 기자
  • 승인 2022.10.2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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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마지막. 벌써 가을은 깊게 다가왔다. 낮에는 덥기까지 했던 날씨가 하루 아침에 영하를 기록하고 밖에 앉아 차 한잔 마시기도 어렵게 됐다. 이렇게 늦은 가을이 되면 불현듯 떠오르는 곡이 있다.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다. 이 곡은 1824년 11월 비엔나에서 작곡됐다. 만들어진 계절이 그래서인지 이 곡에서는 가을의 쓸쓸함이 가득하다. 슈베르트는 1797년 태어나 1928년 사망했다. 이 곡이 만들어진 1824년에 슈베르트는 27세의 젊은 나이였지만 이미 병이 깊어 긴 병원 생활과 함께 고통을 많이 받고 있었다. 그래서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 또다시 눈이 떠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까지 말했던 시기였다.

이 곡의 원제는 Arpeggione Sonata in a minor D. 821으로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가단조 821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작품번호를 뜻하는 D.는 슈베르트만의 고유한 것으로, 평생 슈베르트를 연구하고 시대순으로 작품번호를 붙인 도이치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일반적으로 작품번호는 op.를 사용하지만, 작곡자가 유명하고 작품이 많은 경우 모차르트 K. 바흐 BWV. 하이든의 Hob처럼 연구자의 이름을 따서 작품번호를 사용하기도 한다.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

곡의 제목인 아르페지오네는 6줄짜리 현악기로 기타를 활로 연주할 수 있도록 만든 악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 악기는 1823년에 슈타우퍼(J.G. Staufer)가 만들었는데 크기는 첼로와 비슷하고 구성음은 미-라-레-솔-시-미로 기타와 같았다. 그래서 슈타우퍼는 이 악기를 기타첼로 또는 기타 다무르, 즉 사랑의 기타라고 불렀는데 사용하는 사람이 적다 보니 동시대에 사라진 악기가 됐다. 그런데 이 악기를 위해 만든 곡은 슈베르트가 작곡한 아르페지오네 소나타가 거의 유일했기 때문에 이 악기의 이름은 기타첼로가 아닌 아르페지오네로 남게 됐다. 존재를 뛰어넘는 곡의 힘이다.

아르페지오네는 음역도 넓고 화음을 연주하기도 좋았던 장점에도 불구하고 왜 금방 사라졌을까? 음악을 좋아해서 아마추어 합창단에서 노래하는 지인이 있다. 중학교 동창들끼리 합창단을 조직하고 8년째 1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연습하고 연말이면 연주회도 열고 있다. 그런데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이 마음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합창단에서 새로운 곡을 연습할 때마다 악보를 초견으로 노래하고 각 파트의 음정을 잡는 것이 어려웠다고 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레슨을 받는다고 했는데 막상 몇 달 후 만나니 레슨을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본인은 음정을 잡고 악보를 보는 법이 필요했는데 막상 배우러 갔더니 계속 “아~~” 소리만 질렀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한 것 같은데 선생님은 계속 그 소리가 아니라며 다시! 다시! 하니 두 달 동안 소리만 지르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그만두었단다.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일견 이해가 가기도 했다. 레슨을 하는 입장에서는 좋은 소리를 만드는 발성이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니 계속 소리 만들기를 했을 것이고, 레슨을 받는 입장에서는 좋은 소리보다는 연주하는 노래의 음정이나 박자, 파트를 따로 연습하기를 원했으니 서로의 니즈가 달라 오래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현악기에서 발성연습과 같은 것이 활 연습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 같은 교수님께 배웠다. 선생님께서는 “활은 내 팔이 그만큼 길어진 거라고 생각해라”고 하셨다. 활은 피아노를 칠 때의 손가락처럼 소리의 강약과 느낌을 조절해 주는 역할을 한다. 활을 세게 그으면 큰 소리가 나고 약하게 그으면 작은 소리가 난다. 소리의 강약뿐일까? 활을 조금만 쓰는지 많이 쓰는지에 따라 소리도 달라지고 그 긋는 속도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스타카토와 살짝 튕겨주는 스피카토, 슬러 등 음악에서 음정이 아닌 모든 느낌을 활이 담당한다. 그래서 처음 악기를 시작하면 활 연습만 계속하게 된다. 그래서 활 연습만 계속하다가 그만두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활 연습은 지루할 수도 있지만 초보자를 벗어나도 준비운동을 하는 것처럼 늘 기본적으로 하게 된다.

활 쓰기의 어려운 점은 또 있다. 활은 브릿지와 지판 사이에 있는 불과 5cm 내외의 좁은 공간에서 현과 직각을 이루면서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활은 어깨보다 손목을 사용해야 하는데, 어깨를 움직이는 순간 활은 지판이나 브릿지 위로 삐져나간다. 그래서 활을 쓴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인데 현이 4개도 아니고 6개의 줄을 가진 악기라면 어떨지 짐작이 간다. 그래서 아르페지오네는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금방 사라진 악기가 된 것 같다. 그러나 악기는 사라졌어도 아름다운 이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는 여러 악기로 편곡되어 오늘날에도 많이 연주되고 있다.

아르페지오네는 첼로와 비슷해서인지 주로 첼로 곡으로 많이 연주된다. 첼로는 도-솔-레-라의 기본음을 가지고 있는데 비올라 역시 첼로와 기본음이 같아 비올라로도 이 곡을 연주하는 경우도 많다. 하긴 아르페지오네는 첼로보다는 음역이 약간 높았다 하니 어쩌면 비올라가 이 곡을 연주하기에 더 알맞은 악기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첼로보다 현이 2개 더 많은 아르페지오는 첼로보다는 음역이 넓고 크기는 약간 작아 주법도 더 다양했기 때문에 첼로로 이 곡을 제대로 연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곡은 소나타로 3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1악장이 Allegro로 빠른데 가단조이고, 2악장은 Adagio로 아주 느리지만 마장조, 3악장은 다시 Allegretto 단조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느리면 단조, 빠르면 장조인데 이 곡은 정반대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막상 곡을 들으면 그것이 반대로 배치됐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아름답고 슬프지만 우아하고 밝다. 이 곡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부분은 바로 1악장의 첫 부분이다. 전주가 나오고 첫 음이 울릴 때 심장이 턱! 하고 내려앉는 느낌을 받는다. 낮은 음으로 강하고 길게 울리는 소리는 앞으로 연주될 20분이 넘는 모든 시간을 대변하고도 남는다. 거기에 맑은 2악장은 덤이다.

이 곡을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무렵이었다. 카세트테이프를 사서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들었다. 연주자도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고 테이프 겉표지의 색도 까마득하다. 가슴 떨리는 기대감으로 음악을 듣고 또 들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오늘 늦은 가을 아침 이 곡을 들으니 레슨 받으러 가던 상도동 선생님 댁의 골목길과 “이 정도는 해야지~” 하고 말씀하셨던 지금은 고인이 되신, 나를 무척 이해해 주셨던 선생님이 떠오른다. 이제는 음악에서도 떨림보다는 지난 시절의 아련함만 기억나는 나이가 됐나 보다. 가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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