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재일동포①-2] 1952년 평화조약과 일본의 재일조선인 차별 ‘명문화’
[아! 재일동포①-2] 1952년 평화조약과 일본의 재일조선인 차별 ‘명문화’
  • 다나카 히로시(田中宏) 히토츠바시대학 명예교수
  • 승인 2022.10.24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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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들은 어떤 길을 걸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가? 일본에서 어떤 차별과 핍박을 겪어왔는가? 현재 직면한 어려움은 무엇인가? 일본에서 이뤄지는 ‘한일기자시민세미나’의 강연을 연재로 소개한다. 이 세미나는 일반사단법인 KJ프로젝트 배철은 대표가 진행하고 있다.<편집자 주>

다나카 히로시(田中宏) 히토츠바시대학 명예교수
다나카 히로시(田中宏) 히토츠바시대학 명예교수

2016년 12월 푸틴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습니다. 당시 아베 신조 총리는 푸틴을 지역구인 야마구치까지 데려갔습니다. 어쩌면 북방 4개섬이 돌아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나는 북방 4개섬이 돌아오면 그곳에 사는 러시아인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관심이 갔습니다. 이것은 영토 변경과 주민의 국적 문제로서, 낡고도 새로운 문제입니다.

북방 4개섬에는 2만4~5천 명의 러시아인이 살고 있습니다. 돌려받으면 오늘부터 러시아인은 전부 ‘일본인’이 될까요? 일본 정부 입장에서 그건 싫으니까 영토는 받고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은 모두 ‘외국인’으로 할까요? 그렇게 하면 러시아인은 제2의 재일조선인처럼 됩니다.

보통 외국인은 밖에서 들어옵니다. 입국 시 체류 자격이 정해져서 입국합니다. 그런데 재일조선인들은 하루아침에 ‘외국인’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여권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것과 같은 일이 북방 4개섬에서도 예상됩니다.

반대로 ‘일본인’으로 하면 어떨까요? 전쟁 전에 했던 것처럼 ‘일본 이름’으로 창씨개명하라고 할까요? ‘○○ 스키’는 곤란하다고 해서 ‘키타지마 타로(北島太郎, 북방섬 맏아들)’로 창씨개명하는 걸까요. 러시아 주민을 어떻게 할까요?

나는 히토츠바시 대학에 교편을 잡고 있을 때 영토 변경과 주민의 국적이라는 수업을 개설하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는 알자스-로렌 문제가 있습니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소설에 나오지요.

조선은 병합일부터 ‘완전하고 영구적인 양여’를 했지만, 대만은 다릅니다. 대만과의 시모노세키조약에서는 일본의 지배를 받고 싶지 않은 사람은 2년간의 유예를 주기 때문에 나가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후에도 남는 사람은 모두 일본제국 신민으로 만드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북방영토의 영토 변경과 주민의 국적 처우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총리실 북방영토대책실에 전화해서 물었습니다. 학교 수업에서 북방영토를 다루려고 하는데, 러시아 주민의 국적과 처우에 대해 정부 방침이나 자료는 없냐고 물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다는 대답이어서, 학생들에게도 그렇게 소개했습니다.

“북방영토가 금방 돌아올 것같은 분위기인데 이상하지?” 하고 말하면 어떤 사람은 “아니, 정말 돌아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라고 합니다. 그럴지 모릅니다. 정말 확실히 돌아온다면 나름대로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역사에서 배워야 합니다.

1997년의 홍콩 반환에 관한 ‘영국-중국 협정’에는 향후 50년간은 기본적으로 현상 유지를 한다는 게 포함돼 있습니다. 올해(2022)는 그 25년이 되는 중간 해입니다. 홍콩은 일국양제로 반환되었지만, 점점 그 기조가 힘을 잃고 있어서 큰 소동이 되고 있습니다.

그럼 일본의 북방영토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일국양제로 할까요? 러시아어와 일본어를 공용어로 할까요? 이 점들을 구체적으로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식민지시대에는 대만 학교나 조선 학교도 조선어나 민남어(대만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조선말이나 대만말을 쓰면 ‘말표(言葉札)’를 목에 매달게 하고, 그것이 몇 장 쌓이면 교실을 나가야 한다, 그런 식으로 강제했습니다. 이것을 북방 섬의 러시아인에게 강요할까요?

푸틴이 왔을 때 어느 신문도 이같은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북방영토 반환 후 주민의 처우에 관한 기사나 사설을 쓴 매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기자들이 당시 아베 총리한테 질문했다면 흥미롭겠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1952년 평화조약 발효 후 법제도 급변

일본 전후사에서 가장 중요한 날을 하루 고르라면 저는 망설임 없이 1952년 4월 28일을 택합니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이날을 절대 잊지 못합니다. 일본 본토는 독립했지만 오키나와는 여전히 미군의 점령하에 놓이게 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옛 식민지 출신이 ‘일본 국적’을 잃고 바로 ‘외국인’으로 분류된 것도 이날입니다. 이날 ‘외국인등록법’이 생겨, 이들에게 지문날인 의무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반대운동 때문에 외국인 지문등록 실시는 1955년에 이뤄집니다.

법률은 1월 1일부터 연말까지 국회를 통과한 순서대로 번호를 매겨 나갑니다. 1952년의 ‘법125’가 외국인등록법입니다.

다음 순서인 ‘법126’은 ‘포츠담 선언의 수락에 따라 발하는 명령에 기초한 외무성 관계 제명령의 조치에 관한 법률’이라는 긴 이름입니다. 이 법률은 ‘법 126’으로 약칭됩니다. 당시 입국관리국은 외무성 산하였기 때문에 외무성의 이름이 나옵니다.

‘법126’은 어떤 내용일까요? 일본에 있는 옛 식민지 출신자를 갑자기 외국인으로 만들기는 해도 갑자기 ‘체류 자격’을 정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밖에서 입국할 때는 관광, 유학, 종교(목사)라든가 ‘보도(특파원)’라든가 이런 식으로 비자 자격을 나눕니다. 하지만 60여만의 옛 식민지 출신자를 하룻밤 사이에 체류자격을 나눠서 배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체류자격’, ‘체류기간’이 결정될 때까지 일본에 체류할 수 있다는 잠정조치를 결정한 법률입니다.

그다음인 ‘법127’은 ‘전상병자 전몰자 유족에 대한 원호법’입니다. 거기에는 ‘호적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자는 당분간 이 법률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전쟁에서 죽거나 다친 조선인, 대만인에게는 이 법률을 적용하지 않는다, 즉 전후 보상은 하지 않는다고 선고한 것입니다.

오시마 나기사(大島渚) 감독의 ‘잊혀진 황군’이라는 유명한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1963년 8월 16일 니혼TV ‘논픽션 극장’에서 방영되었습니다. 전쟁에서 다쳐도 일본인의 경우는 상병(傷病)연금이 나오지만 조선인에게는 나오지 않습니다. 오시마 감독은 당초 베트남 전선에서 일본으로 옮겨지는 부상 미군을 통해 당시의 ‘일본의 전쟁’을 조명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본 내 축제 등에서 흰옷을 입고 통이나 냄비를 앞에 놓고 구걸하는 상이군인들이 전후 아무런 상병(傷病)보상을 받지 못하는 조선인들인 것을 알고 카메라를 돌리기로 했다고 썼습니다. ‘잊혀진 황군’에는 전철 안에서 아코디언을 켜며 구걸하는 흰옷 상이군인의 모습도 나옵니다. 그 현상을 만들어 낸 것이 ‘법 127’입니다.

이들 법에 나온 ‘당분간’이 얼마 동안이 아니라 결국 무기한이었습니다.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이 ‘호적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자’는 옛 식민지 출신자입니다. 일본의 호적은 ‘(내지)호적’, ‘조선호적’, ‘대만호적’으로 나뉘어 있고, 같은 ‘제국신민’이라도 따로 관리되는 구조였습니다. 그래서 일본 내지에 있어도 식민지 출신은 내지 호적에 넣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호적에 오르지 않는 사람은 쉽게 말하면 조선인, 대만인이었습니다.

▼ 확산되는 국적 차별

1952년 일본이 주권을 회복하면서 ‘국적을 이유로 한 차별’이 일반화되어 갑니다. 외국인은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게 되었습니다. ‘잊혀진 황군’의 전후 보상이 제1호였습니다. 이어 1959년에 생긴 ‘국민연금법’도 국적조항을 적용해 연금제도에서 제외합니다. 복지국가를 위한 다양한 사회보장제도(예를 들면, 아동수당 3법)가 나오지만, 사사건건 국적을 이유로 재일조선인들은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전쟁 전 공무원에게는 ‘은급법(恩給法)’이, 민간기업 종업원들에게는 ‘후생연금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영업이나 일반인들에게는 그런 제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후에 많고 모든 사람이 65세가 되면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국민연금법입니다.

하지만 이 ‘국민’이라는 글자가 문제였습니다. 외국인은 가입할 수 없는 것이지요. 일본에 살아도 외국인의 노후에 대해서는 모르겠다는 거지죠.

조금 벗어난 얘기지만, 프로야구 구단인 후쿠오카의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왕정치 회장은 젊은 시절 와세다실업 투수로 ‘고시엔’에서 우승했습니다. 그러나 그해 시즈오카 전국체전(1955년)에 와세다실업은 출전하지만, 그는 벤치에서 관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중국인이기 때문에 ‘전국체전’에 나갈 수 없었어요. 외국인이 일등을 하면 화가 나서 그럴지 모르지만. 국민만 참여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나는 예전에 아이치 현립대학에 교편을 잡은 적이 있습니다. 매년 성인식이 되면 시청에서는 안내장을 보내 뭔가 간단한 기념품을 받도록 합니다. 그때 도요타 자동차가 있는 도요타 시가 성인식 안내장을 ‘재일동포’들한테 보내지 않아 저도 항의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시청으로 가서 같은 시민인데 왜 재일조선인을 차별하느냐고 항의했습니다.

당시 시청 과장이 나와 “성인식의 근거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이라면서, “국민이 대상”이라고 말했습니다. ‘국민’이라고 하면 ‘외국인’이 빠지는 거지요. 이런 국적 차별의 이야기를 하지만 끝이 없습니다.

일본 헌법 30조에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납세의 의무를 진다”고 되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국민만 납세의무를 지고 외국인은 지지 않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소득세법 제5조는 “거주자는 이 법률에 따라 소득세를 납부할 의무가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세금을 내는 헌법 30조의 ‘국민’에는 외국인도 포함하는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일본 세법에는 결코 ‘국민’이라는 문구가 나오지 않습니다. ‘거주자’와 ‘비거주자’만 구분합니다. 외국인한테도 세금은 평등하게 거두고 있는데, 왜 이런저런 차별이 허용될까 의문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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