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칼럼] 이동식 간이화장실과 인권
[김재동칼럼] 이동식 간이화장실과 인권
  • 김재동(재미칼럼니스트)
  • 승인 2022.11.05 12:1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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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건설현장 간이화장실 수 법제화...한국은 삼성그룹조차 논란

모든 생명체는 먹어야 산다. 우리 몸 안에 있는 세균은 물론, 들판의 잡초도 먹지 않으면 죽는다. 생명체가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하면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 인간도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먹고 나면 반드시 거쳐야 할 다음 단계가 있다. 먹기만 하고 배설하지 못한다면 그 또한 죽음에 이를 수 있다. 먹고 나면 우리 몸의 소화 기관들이 자동으로 작동한다. 그런 다음 생리현상이란 이름으로 배변과 배뇨를 통한 배설을 해야 한다. 그것은 생명 유지에 있어 기본이다.

그러나 21세기 신(新)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배뇨와 배변을 규제당하는 일터가 많다고 한다. 며칠 전 Costco에서 차에 기름을 넣고 오는 길이었다. 고속도로 옆 작은 규모의 아파트 공사장을 지날 때, 길게 늘어선 이동식 간이화장실이 눈에 들어왔다. 어림잡아 12개 정도가 일렬로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예전에는 그런 광경들을 무심코 지나쳤다. 그러나 얼마 전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을 뉴스를 통해 접한 뒤부터, 이동식 화장실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당시 뉴스는 인천 송도 삼성바이오로직스 공장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화장실을 가지 못해 참다가 방광염에 걸리고, 옷에 오줌을 지리기도 한다는 내용이었다. 간이화장실을 설치했지만 사람 수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서 기다리는 시간 또한 문제로 지적됐다.

심각한 것은 간이화장실 지붕이 뚫려 있고 칸막이 높이가 사람 키보다 낮다는 점이었다. 위에서 옆에서 화장실이 다 들여다 보여, 프라이버시를 침해당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넘어 초일류 다국적 기업으로 발돋움한 삼성 계열사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점에 놀라움을 금할 길 없다.

한편 경기도 화성시의 한 신축 아파트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새로 입주한 아파트 실내에서 역한 냄새가 진동해 천장을 뜯어보니 인분이 가득 찬 플라스틱 봉지가 나왔다는 것이다.

지난 5월 신축 아파트에 입주한 A씨는 입주 직후부터 정체불명의 악취에 시달려야 했다.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자 참기 힘들 정도로 냄새가 심했다. A씨는 냄새를 없애기 위해 방향제를 뿌리고, 청소를 해도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결국 시공업체에 민원을 제기했다.

현장을 방문한 시공업체는 악취가 나는 방을 살피다 천장에서 인분이 가득 담긴 봉지 3개를 발견했다고 한다. 이웃 B씨 집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B씨 집의 천장에서도 인분이 담긴 봉지 1개가 나왔다. 시공 노동자들이 이를 제대로 치우지 않고 공사를 마무리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런 상식 밖의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한국의 허술함이 낳은 결과이다. 시공사가 이동식 간이화장실에 드는 경비를 줄이기 위해 노동자들 각자 알아서 해결하게 했던 것이다. 이같은 비양심적인 기업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미국에서는 건설공사 규모에 상관없이 단위면적당 노동자 수에 비례해 이동식 간이화장실을 설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시로 나오는 현장점검(inspection) 시 경고를 받고, 시정될 때까지 공사가 중단될 수도 있다. 초대형 건축공사장은 물론이거니와 규모가 작은 공사장에서도 법에서 정한 간이화장실 설치 기준을 지켜야 공사를 진행할 수 있다.

심지어 일반 가정집 수리를 하는 시공사들도 기간에 상관없이 노동자를 위해 이동식 화장실을 설치해야 한다. 공사현장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국가가 보장하는 법적 장치인 것이다.

대한민국은 세계 10번째 경제 대국이며, 자타가 인정하는 선진국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의 경제 규모는 올해까지 세계 10위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경제와 문화 강국이라 일컬어지는 대한민국에서, 건설현장 노동자가 화장실 시설이 열악해 대변을 플라스틱 봉지에 해결하고 있다면 누가 믿겠는가.

내가 사는 유타주는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이 내린다. 이런 날씨 때문에 도로관리 공사가 연중 진행된다. 크고 작은 공사장 주변에는 어김없이 이동식 간이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다. 주 정부가 건설현장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의 공사현장에 설치되는 이동식 간이화장실은 건설현장 노동자들의 인권이다.

이 글을 쓸 때 이태원 참사 소식을 접했다. 그저 황망하고 비통할 따름이다. 희생자의 명복을 빈다.

필자소개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 거주
작가, 한국문학평론과 수필과비평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와 수필을 쓰고 있다.

김재동 재미칼럼니스트
김재동 재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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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환 2022-11-11 21:45:03
그러
하군요..

먼곳미국
유타에서
한국소식
보내주어
고맙
습니다...♣

김금환 2022-11-11 21:45:37
일체유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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