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열時論] 증심사 길 차량을 통제하다니
[전대열時論] 증심사 길 차량을 통제하다니
  • 전대열(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 승인 2022.11.14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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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열(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전대열(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광주라고 하면 맨 먼저 생각나는 게 일제 강점기 아래서도 독립만세를 외쳤던 학생독립운동이다. 나주에서 광주까지 통학하던 학생들이 기차 속에서 일본 학생들과 패싸움을 하게 된 것이 계기였다. 이때 일본학생들이 조선여학생을 희롱하는 것을 본 조선인 남학생들이 일본학생들을 제지하는 과정에서 패싸움이 되었고 일본경찰은 철저하게 일본학생 편을 들어주는 통에 문제가 커진 것이다. 이 사건은 비록 학생들의 시비에서 터져 나왔지만 소문이 퍼지면서 민족적 감정으로 치달아 올랐다.

호남지역에서 불붙기 시작한 학생독립운동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고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광주학생운동은 광복 후에 11월 3일을 학생의 날로 정하여 국가기념일이 되었다. 그 뒤 4·19혁명 당시에도 광주학생들의 시위는 경찰의 발포로 7명의 희생자가 나오는 피의 데모가 되었다. 이는 마산학생들의 궐기에 이은 최대의 희생이었으며 서울에서의 대량희생으로 모두 186명의 4·19희생자를 내는 참혹한 혁명의 매운바람이었다. 광주는 이에 그치지 않고 1980년 신군부에 맞선 민주화운동으로 165명의 처절한 투쟁의 본고장이 되었다.

그렇다고 광주가 오로지 투쟁의 고장으로만 인식될 수는 없다. 광주는 예향으로서도 어느 도시 못지않은 훌륭한 면모를 갖추고 있다. 외지에 사는 분들이 광주에 다니러 왔다가 아무 식당에 가더라도 수많은 동양화와 서예작품을 보면서 놀라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남종화(南宗畵)의 고장답게 이름이 있는 화가나 무명화가의 그림일지라도 많이 게시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예술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을 엿보게 한다. 그중에서도 국립공원 무등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의 하나인 증심사(證心寺) 길이 있다.

서석대 주상절리로 유명한 무등산은 해발 1187m의 제법 높은 산에 든다. 광주광역시, 화순군과 담양군에 걸친 국립공원으로 울창한 숲과 빼어난 경치가 등산객과 관광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시내버스 종점이 증심사 주차장이다. 여기서부터 걸어 올라가려면 증심사까지 20분 정도 소요된다. 약사사까지는 30분이 더 걸린다.

등산객들이야 일부러라도 걸어 다니지만 문제는 증심사 다 가서 의재미술관이 있다는 점이다. 의재(毅齋)는 허백련화백의 별호지만 의도인(毅道人)으로도 통한다. 허백련은 진도출생으로 운림산방의 소치(小癡) 허련의 집안출신이다. 소치는 호남화단의 실질적인 종조(宗祖)로 불린다. 허백련은 일본 명치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화가의 길로 들어서며 무등산에 자리 잡는다.

그곳에서 20년을 살면서 무등산 증심사 길을 열게 된다. 그는 춘설헌(春雪軒)을 짓고 거기에 기거하면서 작품 활동과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그의 사후 광주시에서는 증심사 주차장 아랫길을 의재로로 명명하고 춘설헌 앞에 의재미술관을 건립하여 유작들을 전시하고 있으며 신인들의 기획전시도 꾸준히 진행한다.

의재미술관은 유료입장이지만 등산객들이 오르고 내리면서 많이 관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미술관 관람은 등산객들만의 전유물일 수 없지 않겠는가. 의재를 기억하거나 그의 작품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어야 한다. 그중에는 나이가 많은 분들도 있을 것이고 다리가 불편한 분들도 있을 것이다. 승용차를 이용하여 미술관에 올라가야 하는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서 이를 강력하게 통제하기 때문에 차량통행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나는 며칠 전 친우 이형복의 초청으로 증심사길을 여러 차례 오르내렸다. 내 일행에는 전북대 예술대학장을 역임한 한국화의 대가 벽경(碧耕) 송계일과 금융인 송규현도 함께였다. 그런데 차량통행을 하려면 미술관 관장이 OK사인을 보내야 한다. 절에 가는 사람은 주지 스님의 사인이 있어야 하겠지. 알지도 못하는 관장이나 주지에게 부탁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명색이 광주광역시에서 관장하는 미술관인데 차량 아니면 20분을 걸어 올라간다는 것은 나이든 분이나 다리 아픈 사람에게는 차라리 관람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립공원을 곱게 간직한다는 취지라고 하더라도 문화예술의 공간조차 접근이 불편하게 한다면 본래의 취지에 어긋나는 일이다. 통제를 하더라도 관료체제처럼 빡빡하고 퉁명스러운 언사는 국립공원 유니폼으로 완장 찬 사람으로 착각하는 잘못된 처사가 아닐까. 친절하게 안내하는 통제의 멋을 부려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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