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희의 음악여행 ㊴] 음악을 사랑한 정치인
[홍미희의 음악여행 ㊴] 음악을 사랑한 정치인
  • 홍미희 기자
  • 승인 2022.11.22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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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라키스(가운데)와 안소니 퀸(오른쪽)
테오도라키스(가운데)와 안소니 퀸(오른쪽)

만약 대통령이 직접 악기를 연주하고 지휘를 하거나 정당의 대표가 뛰어난 피아니스트라면 어떨까? 우리 구의 국회의원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곡자라면? 상상만으로도 자부심이 가득해지고 즐거운 일이다.

그리스의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는 1925년 태어나 2021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작품으로는 영화음악 ‘페드라’(1962), ‘그리스인 조르바’(1964) 등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곡은 그리스의 메조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의 ‘기차는 8시에 떠나네’이다. 이 곡은 조수미가 불러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테오도라키스의 아버지는 크레타섬 출신의 변호사이고 어머니는 그리스인이지만 지금은 터키에 속하는 체시메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평생 그리스-터키 갈등에 대해 서로 화해하도록 힘썼다. 10대였던 당시 2차대전 중에는 반나치, 반파쇼 투쟁을 하면서 공산주의자로, 전쟁이 끝난 후 1964년에는 국회의원으로, 1967년 군사쿠데타로 독재정권이 들어선 후에는 민주화 운동가로 활동했다. 이후 본국에서 추방당했지만, 해외에서도 계속 저항 콘서트를 여는 등 음악과 정치적인 활동을 병행했다. 1974년 군사정권이 종식된 후 그리스로 돌아왔고 1992년부터는 작곡 활동에만 전념했다. 그는 그리스의 독립, 노동자 해방, 군부독재 타도, 주변국과의 화해, 적대 종식 등의 운동을 하며 그 순간마다 시대적인 정신을 음악으로 표현해온 정치인이자 음악가이다.

구금에서 풀려난 후 파리에 도착한 테오도라키스(1970년)
구금에서 풀려난 후 파리에 도착한 테오도라키스(1970년)

뛰어난 악기연주자로는 1970년~1974년 영국 총리를 역임하고 영국을 유럽연합에 가입시킨 에드워드 히스(1916~2005)가 있다. 그는 1978년 세종문화회관이 개관과 함께 설치한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하기 위해 초청될 정도로 뛰어난 연주자였다. 이 파이프오르간은 독일의 슈케사가 만들었는데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가 “일본 NHK홀보다 하나라도 더 커야한다”고 주장하여 손건반이 하나 많은 6개짜리가 설치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악기다. 그 당시 정치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일화다.

히스는 1970년 총리가 되면서 다우닝가 10번지에 스타이웨이 피아노를 설치하여 총리관저의 중앙홀이 종종 연주장으로 변하곤 했다고 한다. 그는 1961년부터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의 이사회의장, 명예단원으로 자주 객원지휘를 했다. 그의 아버지는 목수였고 어머니는 가정부였는데 그의 어머니가 8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도록 했다. 그가 옥스퍼드 대학을 진학할 때도 오르간으로 스칼라십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연주자였고 옥스퍼드 오케스트라도 지휘했다.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고 퇴임 후 ‘음악’이라는 책을 펴냈다.

히스총리
히스총리

그러나 히스가 음악에서 유명해진 것은 엉뚱하지만 또 다른 곳에도 있다. 비틀즈 노래 ‘택스맨’의 가사에 등장한 것이다. 영국은 당시 고소득자에게 소득의 95%의 세금을 받았다. 그런데 비틀즈가 세금으로 95%를 내고 남은 수입만 해도 수천억에 달했다고 한다. 이들이 낸 세금의 액수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오죽하면 영국이 전쟁에서 진 채무를 비틀즈가 벌어들인 돈으로 갚았다는 하는 농반진반의 이야기도 있다. 하여튼 비틀즈는 영국의 왕실훈장을 받았지만 비틀즈 당사자들이 즐겁지 않았나 보다. 폴 매카트니는 “매우 영광이었다”고 한 반면 조지 해리슨은 “내가 가질 수 있는 명예중 가장 급이 떨어진다”, 링고스타는 “술 취해서 기억도 안난다”는 등의 발언을 했고, 심지어 존 레논은 훈장을 반납했다. 하긴 퀸도 80%의 세금을 냈다고 하고 롤링스톤즈는 세금 내다내다 남프랑스로 이민갔다고 하니 세계적인 스타들에게도 세금은 무서운 존재였나 보다.

TAXMAN 곡이 들어간 비틀즈의 앨범 REVOLVER
TAXMAN 곡이 들어간 비틀즈의 앨범 REVOLVER

비틀즈의 곡은 대부분 존 레논이 썼지만 이 곡은 조지 해리슨이 작곡, 작사했다. 그는 이 곡에서 택스맨~하는 부분을 당시 유행했던 배트맨~에서 차용했다고 하는데 실제 들어보면 배트맨처럼 강렬한 것이 아니라 비틀즈 특유의 부드럽고 오묘한 화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곡의 가사를 잠시 살펴보자.(후렴생략)

세금이 어떻게 될지 말해 주지
네 몫은 하나고, 내 몫은 열아홉이야
5퍼센트가 너무 적어 보이더라도
내가 전부 가져가지 않음에 고마워하렴
네가 차를 운전한다면, 나는 통행료를 걷을 거야 
네가 자리에 앉으려 한다면, 나는 좌석료를 걷을 거야
네가 너무나도 춥다면, 나는 난방비를 걷을 거야
네가 산책을 한다면, 나는 네 발에도 세금을 걷을 거야
어디에 쓰려는지는 묻지 마(하하, 윌슨 씨!)
더 내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하하, 히스 씨!)
왜냐하면 난 세금징수원이니까, 그래, 난 세금징수원이야

이 곡은 1966년 앨범인데 2022년 빌보드 상위권에 올랐다. 택스맨은 말 그대로 세금맨. 즉 세금을 걷어가는 사람인데 위 노래 가사의 윌슨씨는 여당인 노동당수였고 히스씨는 야당인 보수당수였다.

헬무트 총리
헬무트 총리

1974년~1982년까지 독일의 총리로 있었던 헬무트는 음반까지 낸 연주자였는데 히스와 이중주를 연주하기도 했다. 또 다른 정치인으로는 우리에게 친숙한 G장조 ‘파데레프스키의 미뉴에트’를 작곡한 파데레프스키(1860~1941)가 있다. 그는 1918년, 폴란드 정부로부터 주미 대사로 임명되어 뉴욕으로 갔다. 그 해에 폴란드는 공화국이 되었고, 다음 해에 그는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바르샤바 음악원에서 음악을 전공했으며 특히 쇼팽의 연주에 뛰어났다. 우리에게 친숙한 파데레프스키 콩쿠르도 그를 기리는 마음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파데레프스키
파데레프스키

악기를 잘 연주한다는 것은 끈기를 가지고 성실하게 노력을 한다는 뜻이다. 악기는 연습한 만큼의 소리를 들려준다. 파데레프스키도 왜 연습하느냐고 물으면 “사흘을 연습하지 않으면 관객이 알고,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평론가가 안다. 그러나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내가 안다.”고 말했다. 그만큼 악기를 잘 연주한다는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성실함을 나타내는 준거가 된다. 그러나 이제 많은 정치인들이 사랑했던 클래식음악의 시대는 간 것 같다.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고 전공자보다 더 우월한 실력으로 연주했던 이들을 현대에서는 찾기가 어려워졌다.

얼마 전 방한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위해 서울 한남동 관저에는 BTS 한정판 앨범이 비치됐다. 문화는 힘이 있는 곳으로 흐른다. 예전의 왕실과 귀족들이 음악가를 후원하면서 발전했다면 현대는 실용음악으로 그 힘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실용음악을 하는 이들도 무조건적인 성실함과 뼈를 깎는 노력으로 연습을 하고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서 모든 음악에 필요한 것은 재능보다는 성실함이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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