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희의 음악여행 ㊶] 한음회가 열어준 새해 선물
[홍미희의 음악여행 ㊶] 한음회가 열어준 새해 선물
  • 홍미희 기자
  • 승인 2023.01.15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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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토끼의 해에 만난 수궁가
크라운해태제과가 11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최한 '제2회 한음회'에서 '왕기철' 명창이 '심청가' 중 '심봉사 눈뜨는 대목' 공연을 펼치고 있다.[사진제공=크라운해태]
크라운해태제과가 11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최한 '제2회 한음회'에서 '왕기철' 명창이 '심청가' 중 '심봉사 눈뜨는 대목' 공연을 펼치고 있다.[사진제공=크라운해태]

늘 같은 자리에 있어 고마운 것들이 있다. 제2회 한음회(韓音會) 판소리 공연을 보기 위해 찾아간 세종문화회관은 예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밤에 보이는 광화문의 거리는 반짝거렸고 세종문화회관 건물은 조명을 받아 모습을 바꾸며 빛나고 있었다. 이 공연은 서울시 무형문화재인 명고 정화영이 연출을,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 교장인 왕기철이 사회 및 해설을 맡았다. 일반적인 판소리 공연과는 달리 해설이 있고, 잘 알려진 대목들을 연주하는 공연이어서 그런지 이른 시간부터 많은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티켓을 받고 로비에 잠깐 있자니 멋진 한복을 입고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윤영달 제과전문그룹 크라운해태의 회장이다. 알고 보니 오늘 공연은 크라운해태에서 후원하고 있었다. 유럽 예술이 합스부르크가의 후원으로 꽃필 수 있었던 것처럼, 한 그룹의 후원은 우리 전통음악을 발전시킬 수 있는 모태를 마련해 주는 일이다. 또, 후원하는 것을 지나 공연을 직접 관람하는 마음은 무대에 서는 연주자들에게는 큰 힘이다.

공연은 송서로 시작되었다. 무대의 오른쪽에는 피리, 대금, 해금, 거문고, 장구가 반주를 하고 율창을 하는 전승자들이 바닥에 앉아 소리를 한다. 연주가 끝나자 사회자가 등장해서 제일 먼저 한 질문은 “한음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여기저기서 답을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다른 공연과 달리 청중들의 반응이 빠르다. 벌려진 판에 놀러 온 사람들답다. “한국의 소리입니다. 오늘 공연은 자연의 소리와 삶 속의 희로애락을 담아서 부르는 소리가 어떻게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담았습니다”고 서두를 시작했다.

송서는 한마디로 책 읽는 소리다. 천자문을 외울 때 하늘천따지 검을 현 누를 황 이렇게 음률을 얹어서 외웠듯이, 글 위에 음률을 얹어서 노래하듯 불렀던 소리가 하나의 음악장르로 발전한 것이 송서다. 오늘 연주한 촉석루는 조선 숙종 때 문장가 심유한이 지은 한시로 진주 남강 촉석루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소리의 기록은 조선 영조 30년(1754) 조선 시대의 선비 유진한의 문집인 만화집이다. 호남지방을 갔다가 춘향가를 듣고 인상 깊었던 내용을 장문의 한시로 남긴 것이다. 사회자는 스크린에 띄운 만화집을 보며 이도령이 춘향이가 보낸 서간을 읽는 장면을 노래로 불러준다. 일반 사회자와 다른 품격이다.

열여춘향슈절가(만화본 춘향가 일부)
열여춘향슈절가(만화본 춘향가 일부)

다음 공연은 살풀이다. 원래 살풀이는 악기로 반주하지만 오늘은 사람의 목소리까지 함께 하는 구음살풀이에 맞춰 춤을 추었다. 춤이 끝나자 왼쪽에서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사회자가 나타난다. 등장하는 방법도 예술이다. 이러한 춤과 노래는 주로 잔치에서 연주되었다. 특히 조선 시대에는 과거에 급제하면 축하하는 잔치를 열어야 했다. 오늘날 이러한 잔치의 내용을 세세히 알 수 있게 된 것은 송만재의 관우희라는 시집 덕분이다. 과거에 급제한 아들을 둔 아버지 송만재는 돈이 없어 잔치를 벌일 수 없었다. 그래서 잔치를 상세히 묘사한 50수의 시를 짓고 발문을 남겼다. 이 책에는 아버지의 애틋한 마음, 잔치의 모습, 그 소리를 듣고 웃었다 울었다 하는 관객의 모습이 그대로 그려져 있다.

이번 곡의 배경은 서울이나 경기도 근방에 자리한 양반집 잔치마당이다. 경기잡가로 연주되는 소춘향가는 춘향이 집에 몰래 찾아간 이몽룡에게 자기 집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여러 명이 움직임 없이 장구장단에 맞춰 앉아서 부른다. 이렇게 경기소리로 만나본 춘향이는 색다르다. 잡가는 일단 사설이 길고 앉아서 부른다. 그래서 좌창이라고 한다. 후렴구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경기민요는 서서 춤추며 부르고 후렴구가 있다.

잡가가 끝나고 판소리 분창이다. 당시에는 판소리 공연을 여러 명의 광대가 나누어서 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예전의 방식대로 여러 명이 함께 적벽가 중 조자룡 활 쏘는 대목을 노래한다. 어느덧 사회자는 다시 등장해 스크린에 담긴 평양감사의 잔치 모습을 설명한다. 그림 속 소리꾼 옆에는 명창 모흥갑이라는 작은 글씨가 있다. 19세기 평양에서 열린 이 잔치에서 모흥갑 명창의 소리는 4km, 즉 10리 밖에서도 들렸다는 일화도 함께 전한다.

평양성도 모홍갑 판소리도[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평양성도 모홍갑 판소리도[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다음은 전통기악곡의 꽃인 산조다. 산조는 원래 독주악기가 연주하는 곡으로 다른 이름으로는 가사가 없는 소리라고 할 만큼 음악적인 짜임새가 소리의 영향을 받았다. 오늘은 독주가 아니라 여러 가지 악기가 합주로 연주하는 산조다. 연주 도중 스크린에는 산조음악을 탄생시킨 명인들이 비춰진다.

사회자는 다시 등장해서 질문한다. “옛날에는 실력 있는 광대, 소리꾼들을 어떻게 발굴했을까?” 오늘날에도 명창이 되는 등용문으로는 많은 경연대회가 있다. 그중 가장 역사가 깊은 것으로 조선 시대부터 이어온 전주 대사습놀이가 있다. 대사습놀이의 명창으로 최고의 영예는 어전광대로 왕 앞에서 노래하는 것이었다. 임금의 총애를 받고 벼슬에 오른 모홍갑, 송홍록, 박유전 명창의 드라마틱한 얘기를 들려주던 사회자는 최초의 여인명창인 진채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마친 후 큰 소리로 “명창 무대에 대령하랍신다~”라고 외치자 무대 위에는 남장을 한 소리꾼과 고수가 나타났다. 북소리가 울리고 소리는 시작되었다. “그때에 별주부가~” 수궁가 중 자라가 토끼를 유인하는 이 대목은 특히 서울시 무형문화재인 정화영고수의 연주로 빛을 더했다.

19세기 후반에는 여성명창도 등장하고 그야말로 저잣거리에서 궁에 이르기까지 소리의 인기는 대단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소리의 매력에 푹 빠진 시기였다. 그러다가 20세기에 서양식 극장이 나타나면서 소리를 활용한 새로운 공연양식이 탄생했다. 창극이다. 창극은 여러 사람이 각자 배역을 맡아서 연기를 하면서 소리를 하게 된다. 오늘은 창극으로 흥보가 중 화초장 대목을 연주했다. 그 유명한 “화초장, 화초장”이 나오는 대목으로 놀부의 익살에 모두가 웃으며 하나가 된다.

진채선 명창
진채선 명창

“오늘의 마지막 무대는 접니다.” 사회자의 말이다. 역시 스타는 마지막에 나타나는 법. 이어 묻는다. “제 모습이 달라졌죠?” 맞다 의상이 달라졌다. 심청가 중 가장 극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심봉사가 눈뜨는 대목을 부른다고 한다. 시작된 소리는 심봉사가 눈을 뜨는 대목에 이르렀다. “심청이가 살아오다니 웬 말이냐. 내가 눈이 있어야 내 딸을 보지. 아이고~” 심봉사의 슬픔은 계속되다가 드디어 “눈을 끔적, 끔적… 눈을 떳. 떳!!!” 하며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한다. “여기 오신 모든 분들, 금년에는 심봉사처럼 눈을 떠서 좋은 일만 있도록 한번 눈을 떠 봅시다.” 벌써 여기저기서 미리 소리 지르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심봉사의 “쫙!” 선창에 모두는 외친다. “쫙! 쫙! 쫙! 쫙!”

공연이 끝났다. 환호 소리와 함께 희망의 눈을 번쩍 뜬 사람들은 올 한 해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하며 공연장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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