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칼럼] 미국가정의 식탁 문화
[김재동칼럼] 미국가정의 식탁 문화
  • 김재동(재미칼럼니스트)
  • 승인 2023.02.06 10: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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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 밥상머리에서 아버지에게 자주 꾸지람을 들었다.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 쩝쩝대는 소리, 국물 흡입하는 소리, 특히 식사 중에 말하면 복 달아난다며 소리 내지 말고 조용히 먹으라는 꾸중 말이다. 그 시절 우리 집은 밥상 앞에 앉는 순간부터, 침묵 속에 밥만 열심히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심지어 밥알을 밥그릇 둘레에 붙여놓고 떼먹지 않는다고 핀잔을 주던 아버지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릴 적 호되게 식탁예절을 몸에 익힌 덕에, 미국에 와서 큰 어려움 없이 미국 식탁 문화에 적응하게 되었다. 미국가정의 식탁에서도 포크와 나이프 부딪히는 소리나 음식을 먹을 때 내는 쩝쩝대는 소리는 예의가 아니다. 미국가정의 상차림은 반 뷔페식이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 식탁 위에 놓인 음식 접시가 손에 닿지 않을 때, 식탁을 가로질러 음식을 덜어오는 것도 큰 결례다. 맞은편에 앉은 사람에게 음식 접시를 건네 달라 하거나, 자기 접시에 덜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예의다.

특별히 삼가야 할 것은 식사 도중 트림하는 것이다. 입안에 음식을 가득 물고 말하는 것 또한 예의가 아니다. 식사가 끝나면 자리에서 일어나 자가가 앉았던 의자를 테이블 안쪽으로 밀어 넣어주는 것 또한 예의다. 그리고 음식을 만든 사람에게 “Thank You(잘 먹었다)”라고 인사말을 건네는 것도 식탁예절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보면 좋겠다.

미국가정에서 식사 중 나누는 대화는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미국 생활에 적응하기도 전에 미국인 가정에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아 함께 식사한 적이 있었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어린아이들과 부모 간의 끊임없는 대화였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아이 말에 사랑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그들이 조잘대는 말을 번갈아 가며 맞장구쳐주는 아빠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어린 시절 침묵 속에 밥만 먹던 습관이 몸에 배어 조용히 식사에 열중하는 나를 이상하게 본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미국가정의 식탁에서는 식사하는 동안 말을 하지 않으면 화난 것으로 믿을 만큼, 식사 중 대화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가족들 간 대화는 식탁에서 많은 부분 이루어진다. 바쁜 일상이 시작되는 아침보다는 주로 저녁 식사 자리에서 하루를 정리하는, 가족 간의 대화가 자연스레 오간다.

한국과는 달리 미국은 밤(술) 문화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저녁 시간은 가족과 함께 하는 문화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미국인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비즈니스 식사 자리는 점심에 갖는다. 특히 직장동료들과 회식이나 술자리는 거의 없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미국가정에서 저녁 식사는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이 일상이다. 미국인들에게 있어 저녁 시간은 그만큼 중요하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식탁에서 소리를 내지 말라던 아버지가 국수나 냉면 등 면류를 드실 때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린 나로서는, 소리 내지 말고 먹으라던 아버지가 적나라하게 소리를 내며 먹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면류를 먹을 때만은 예외였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이후 나도 면류를 먹을 때는 보란 듯이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었던 기억이 난다. 소리 나지 않게 먹는 면 요리는 어쩐지 맛이 없게 느껴졌다.

반면 미국인들은 쩝쩝대는 소리는 물론이거니와, 특히, 면류를 먹을 때 포크에 돌돌 감아 숟가락에 얹어 소리 나지 않게 한입에 먹거나, 면 가락을 입술로 끊어 먹는다. 미국에 와서 면류를 먹을 때 후루룩 소리를 내고 먹다가 주위 사람들에게 눈총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일이 몇 번 있고 난 후로는, 미국인들을 포함한 타 인종들과 면류를 먹을 때 소리 나지 않게 의식적으로 끊어먹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면류를 먹을 때는 후루룩 소리를 내야 제맛이라고 생각한다. 집에서 혼자 라면을 끓여 먹는다든지 아내가 해주는 국수를 먹을 때 마음껏 후루룩 소리를 내며 맛있게 먹는다.

필자소개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 거주
작가, 한국문학평론과 수필과비평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와 수필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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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여아 2023-02-07 15:05:40
매콤한 멸치 국물 국수가 생각난다.
오늘 저녁은 후루륵 소리내며 나도 국수 한그릇 먹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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