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성 칼럼] 양자얽힘된 두 ‘이상한 나라’에 대한 ‘이상’한 진단
[정대성 칼럼] 양자얽힘된 두 ‘이상한 나라’에 대한 ‘이상’한 진단
  • 정대성 문화칼럼니스트
  • 승인 2023.02.09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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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천재 모더니즘 시인 이상이 쓴 난해한 시를 물리학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광주과학기술원 이수정 교수와 미국 UC머세드 박사과정 오상현 씨가 이상의 연작시 <건축무한육면각체> 중 ‘진단 0:1’을 일정하게 반복되는 시공간의 암시로, 기하학적으로 풀이했다. 과연, ‘1234567890’의 수열판 대각선 위치에 ‘・’이 하나씩 삽입된 해당 작품의 숫자표를 포개어 이어붙이면 2차원의 종이를 말아서 만든 원통형 또는 도넛 모양의 3차원 입체가 나타난다. 이는 이상의 다른 작품들에 나타나는 반복, 무한, 공포, 권태, 자기분열 등의 주제와 상통되며, ‘1’부터 ‘0’까지의 수열이 무한히 반복되는 순환마디이자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시공간 좌표, 즉 ‘주기경계조건 모티프’라고 한다. 당시 유럽에서 유행한 차원주의(Dimensionism)보다 혁신적인 시도라고.

1936년 파리에서 ‘차원주의 선언’이 발표됐다. “1. 선을 떠나 면으로 들어가는 문학 2. 면을 떠나 공간으로 들어가는 그림 3. 닫힌 부동의 형태에서 튀어나오는 조각 4. 여태까지 전혀 그려내지 못했던 4차원 공간의 예술적 정복”이란 선언이다. 이상의 해당 시는 식민지하의 조선건축학회의 일본어 잡지 <조선과 건축> 1932년 7월호에 일본어로 실렸는데, 1934년 7월 28일부 <조선중앙일보>에 연작시 오감도 중의 <시 제4호>로서 조선어로 실리기도 했다. 후자에서는 숫자가 거울문자처럼 반전돼있다.

이상(본명, 김해경)은 1910년대, 20년대 유럽의 기욤 아폴리네르가 쓴 다다이즘 시가 일본에 일본어로 번역 소개되던 시기에 성장했다. 보성고보를 거쳐, 서울대 공대의 전신인 경성고등공업학교를 다닌 그는 식민지의 모던 도시 경성에서 서구의 그런 유행을 접했거나, 경성공업학교 도서관에 일본의 문예지들이 있어 그것들을 읽고 세계 최첨단 문예사조의 양분을 흡수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식민지 도시 경성에 살고 있던 이상이 파리의 ‘차원주의’보다 4년이나 앞서며 세계적 동시성을 획득해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다.

작년 10월, 양자 얽힘에 관한 연구로 세 연구자의 노벨물리학상 동시 수상 발표 후 다시 양자역학 붐이다. 필자 또한 양자역학에 관심을 가져왔다. 예컨대, SF 영화 <인터스텔라>가 특수상대성원리의 시공간이나 고급수학의 차원의 이미지를 절묘하게 영상화했다. 주인공 죠셉 쿠퍼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목성 저편의 웜홀(블랙홀) 탐사를 떠난다.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우주항해로 쿠퍼와 그 딸은 통신 두절이 되는데, 이른바 ‘와프’ 같은 고차원의 여행을 시도하여 3차원의 지구의 집을 찾아가 딸에게 신호를 보내는 CG 장면은 가관이다. 아버지가 죽었다고 생각했던 딸이 영적 자극을 받아 그걸 알아차리고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걸 감지한다. 이 영화의 이론적인 오류를 지적하는 자들도 많지만, SF는 어차피 공상과학 아니더냐?

작년 3월에 개봉된 한국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또한 “영화는 어차피 영화 아니더냐” 하는 영화다. 막중한 주제를 다룰 만한 절호의 제재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안이한 승화로 마무리돼버린 느낌을 받은 평론가들이 혹평을 했기 때문. 이 영화에선 탈북하여 남한의 한 명문 자사고 수위로 근무하는 천재 수학자 ‘리학성’과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고 있는 그 학교 수포자(수학포기자) ‘한지우’ 사이의 비밀스러운 사제 간의 사랑 얘기가 그려진다. 리만 가설을 푼 ‘리학성’은 북한의 화학무기 관련 계산을 맡고 있었는데, 살인 무기의 제조에 가담하는 것이 싫어서 탈북했다는 설정이다.

북한 수학자의 핵미사일 비밀누설 사건이나 간첩 사건 등이 실제로 여러 차례 일어난 바 있는 터라, ‘리학성’이라는 상상의 인물로 여러 가지 줄거리를 전개할 수 있었지만, 결국엔 가슴 흐뭇해지는 뻔한 스토리에 그쳤다는 악평이다. 그런 스토리라면, 미국 영화 ‘굿 윌 헌팅’이나 ‘파인딩 포레스트’와 다를 게 뭐 있냐는 식이다. 하지만 제목에서 남북한 모두 ‘이상한 나라’라고 갈파한 이 영화는 21세기형 ‘광장’(최인훈 소설)과 같은 양념을 나름대로 버무렸다는 뜻에서, 약소 분단국가의 처참한 현실을 상업주의 영화 문법의 한계 안에서 최대한 묘파했다고도 볼 수 있으리라.

1997년 IMF 사태 때부턴가 나라가 어려우면 나도 함께 어려워지리라는 고집스러운 오기의 연장선에서 광야에 나가 연단을 받을 대로 받게 된 필자는 한때, 가족들에게 생활비조차 못 보낸 시기가 있었다. 이 영화의 ‘한지우’의 아버지처럼 돼버린 셈이다. 필자의 딸은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게 되는데, 딸이 고등학교 때 수학을 어떻게 공부했을까? 엄마한테 맞아가면서, 아니면 이 영화의 ‘김근호’ 같은 악덕 교사의 괴롭힘 속에서 공부한 건 아닐까? 그런 자책감과 자괴감이 이 영화를 보면서 치밀어 올라왔다. 딸이 이화여대 수학과에 입학한 다음에야 필자는 딸을 이화여대 캠퍼스에서 만났다. 그때, 수학 공부의 의미를 우주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의 신비를 파헤치는 작업이기 때문에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는 것이라고 혼신의 힘을 다해 딸에게 말해주었지만, 딸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원체 필자는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우주의 가장 큰 것들과 자신의 주변이나 두뇌 안의 아주 작은 것들이 서로 같거나 상통되는 것 아닐까 상상하곤 했다. 눈 감고 펼쳐지는 무한한 우주! 양자역학과 인문예술철학은 중학교 무렵에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유카와 히데키 박사가 노장사상에 정통해있었다는 사실에서 통일됐다. 고등학교 때, 상징주의, 인상파, 후기인상파, 추상화, 입체파, 야수파, 미래파, 다다이즘, 아방가르드, 모던아트 등으로 이어지는 현시대 사조까지 공부했다.

사진기의 발명이 사실주의에 종지부를 찍게 하고 인상파의 출연을 낳게 했듯, 양자역학 등 과학 발전이 모던아트로 이어진다. 또한 과학주의가 사회과학을 낳으면서, 한편으로는 자유주의 경제학으로, 한편으로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론으로 갈라진 것이 결국엔 냉전에까지 다다랐다. 좌파는 기술적 발전이 인간을 착취와 노동에서 해방해 준다고 믿고, 우파는 기술혁신이 자본주의 자유경제를 연명시키거나 계속 성장시켜준다고 믿는다.

한편, 왕족, 지주, 자본가의 사회가 노동자, 농민의 연대운동으로 해방된다고 믿는 것은 과학의 합리성, 자명성을 흉내 낸 것이나, 그걸 신봉하는 예술은 일명, 프롤레타리아 문화운동으로 발전돼 나와, 비판적 리얼리즘, 알기 쉬운 대립구조의 혁명예술, 구성주의, 심지어는 무국적의 추상예술 등을 낳았다.

다른 한편으론, 과학의 혁명적 발전으로 밝혀지는 양자 세계의 불가사의한 현상, 그 불확실성이야말로, ‘불확실성의 시대’와 같은 베스트셀러나 유행어를 낳게 했고, 포스트모더니즘이나 추상화, 모던아트 등의 유행을 가져왔다. 좌파와 우파의 문예사조는 둘 다 각 국가, 민족의 전통문화를 적대시하거나, 문학이나 예술 그 자체에 반기를 들어 ‘반문학’, ‘반아트(反ART)’ 같은 슬로건까지 내세우면서 결국엔 추상예술이라는 늪에 함께 빠졌다.

추상예술은 건국신화나 종교화 같은 ‘커다란 이야기’를 거절하며 부정한다. 각 개인은 원자화돼 자신의 작품을 간신히 그 개인의 이름으로써 성립시키기에 급급하다. 개성을 내세우면서 개성이 없어진다. 몰개성의 세계가 순수예술로서 성립한다. 필자에게 중학교 때 처음으로 본격적 미술 지도를 해주신 선생님이 추상화 화가셨다. 우주 공간 같은 그림만 그리시는 분이셨다. 그래서 필자는 추상화에 익숙하지만, 현재 필자는 동양 전통화와 근대서양 미술의 융합에 관심이 있어 콜라쥬 같은 그림만 그리고 있다.

슈뢰딩거는 “고양이는 죽어있고 동시에 살아있다”고 했고, 니체는 “신은 죽었다” 했지만, 양자역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필자는 아인슈타인의 유일한 오류라는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필자는 대학에 몸담은 연구자 시절에 포스트콜로니얼한 사조에 영향받은 글을 쓰기도 했는데, 대한국인으로서 약소민족의 주체라는 것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럴 때 완전 무국적의, 자기주장 위주의, 또는 몰개성한 추상화에 대해서는 아직은 의문을 가진다. 한국미술이 사실주의, 낭만주의, 상징주의, 인상파, 입체파 등의 서양 사조를 꼭 따라 해야 한다는 것만은 아니나, 미술작품에 전통이나 문예사조에 대한 철학적 대화가 담겨야 한다고 믿는다. 특히 압축 근대는 겪었지만, 미완의 근대로 그쳐 있는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더욱 그러하리라 믿는 것이다.

최근, 두뇌과학과 양자컴퓨터의 융합은 인조인간과의 공존 같은 꿈을 앞당기고 있다. 우리 미래가 정말로 장밋빛인지 아닌지는 불문한 채 말이다. 그 유명한 <1984> <블레이드 러너> <그날 이후(threads / the day after)> 같은 관리사회, 인조인간의 반란, 화학무기, 핵무기 자체의 위험성에 대한 공포가 있다. 현재 남북한으로 볼 때, 북한은 그러한 의미의 완전한 관리사회이며 핵무기 보유국이다. 남한은 상당 부분 관리사회이지만 자유주의를 표방하고, 핵무기를 가지려고 했지만 못했다. 남북한은 마치 분리된 한 짝의 광자처럼 확률론의 불확실성 속을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돌고 있다. 그리고, 인지를 초월한 망원경 또는 현미경 아래서 인공과 자연이 하나 되어, 두 ‘이상한 나라’들은 빛마저 굴곡을 시켜 삼키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다.

첫머리의 이상 시에 대한 또 하나의 해석. 스티븐 호킹스 박사가 물체의 열복사(radiation)에 착안하여 블랙홀 역시 열복사를 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래서 블랙홀 주위에는 우주의 온갖 역사가 홀로그램으로 무한압축된다. 저 이상 시의 수열이 도너츠형으로 바뀔 수 있다면, 그것은 마치 블랙홀 주변에 무한압축되는 기억의 홀로그램이요, 그것은 바로 극도로 추상화된 인간존재 그 자체다. 극도로 무정하고 부조리한 식민지 및 분단 조선에서 몹시 인간답게 살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이상적(李箱的/異常的/理想的) ‘인간’, 현재 남북한의 ‘리학성’, ‘한지우’들, 그리고 무수의 민초들은 블랙홀 같은 무한중력으로 바뀌어, ‘날개’를 잃어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런데 이상 문학의 진수가 ‘조선 여인의 말캉한 따스함’이라고 할 때, 인조인간에게는 아무리 해도 불가능하여 지극히 소중해질 인간 본연의 특징은 반드시 죽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기 때문에 아름답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이상한 가역반응’ 속 인간의 존엄성인 것이다. QED

정대성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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