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현 미주상공총연 초대회장, “1980년 한인 위상 높이려 총연합회 결성”
김대현 미주상공총연 초대회장, “1980년 한인 위상 높이려 총연합회 결성”
  • 뉴욕=이종환 기자
  • 승인 2023.02.11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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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대 뉴욕한인실업인협회장 때 전국 모임 발족… 창립 때 하와이와 알래스카에서도 참석
김대현 미주상공총연 초대회장
김대현 미주상공총연 초대회장

(뉴욕=월드코리안신문) 이종환 기자   

“본회는 미주지역 한인 상공인(단체)를 대표하며 미주지역 교포경제 관련 단체의 유기적인 협조와 교포 상공인의 권익 신장을 위해 노력 봉사하며, 한-미 양국 간의 유대와 경제교류를 통하여 한인사회의 위상과 경제력을 높이는 데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미주한인상공인단체총연합회 정관의 설립 목적이다. 1980년 11월 5일 뉴욕에서 이런 내용을 포함한 정관을 통과시키면서 미주한인상공인단체총연합회가 출범했다. 이 단체는 나중에 미주한인상공인총연합회로 이름을 바꾸고, 지금은 미주한인상공회의소총연합회로 활동하고 있다.

“미주 13개 지역에서 대표들이 참여했습니다. 13~14개 지역에서는 위임장을 보내왔습니다.”

뉴저지 티넥의 메리어트 호텔에서 만난 김대현 미주한인상공회의소총연합회 초대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소개했다.

“미주 각 지역에서 한인상공회의소, 한인실업인협회 등의 이름으로 활동하던 단체들이 한국 상공인의 날이면 모국 정부로부터 초청을 받아서 서울로 갔습니다. 그러면서 서로 알게 돼 미주에서 연합단체를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연합모임을 제안한 것은 당시 뉴욕한인실업인협회 2대 회장을 맡고 있었던 김대현 회장이었다.

“한인상공회의소가 활동하고 있었던 LA, 시카고, 필라델피아,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워싱턴DC, 볼티모어, 애틀란타, 오레곤 등지에서 직접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심지어 알래스카와 멀리 하와이에서도 참석했습니다. 하와이에서는 한인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하와이한인회장도 지낸 조태룡 회장이 왔습니다.”

이 모임에 시카고에서는 박중구 회장, 볼티모어에서는 민학기 회장, 덴버에서는 나중에 총연 회장도 역임한 최병관 회장 등이 참석했다고 김대현 회장은 회고했다.

뉴욕한인실업인협회 주최로 열린 이 행사에서 미주한인상공인단체총연합회를 발족시킨 참석자들은 이날 맨해튼 43가에 있었던 삼복정에서 피로연을 개최했다.

뉴욕 맨해튼 월가의 황소
뉴욕 맨해튼 월가의 황소

“총연을 만들면서 회장을 선출하자고 했는데, 누군가 저를 추천하더니 다들 좋다면서 박수를 쳤어요. 연말 모임을 겸해서 총연 결성을 제안했다가, 초대회장이란 중책을 맡게 되었어요.”

당시 모임에서 총연회장은 단임으로 1년씩만 맡은 것으로 합의했다고 한다. 총연회장이 감투가 아니라는 의미에서였다는 것이다.

아마 김대현 회장이 초대 총연 회장을 맡은 것은 뉴욕이라는 의미가 컸을 듯하다. 태권도인인 김대현 회장은 워싱턴DC 지역인 버지니아로 건너와서 15년간 태권도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어 뉴욕으로 자리를 옮겨서는 본격적인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스포츠 신발과 장비 등을 개발해 유통했던 것이다.

“태권도용 신발을 만들어 유통을 시작했어요. 맨발로 하면 발에 상처를 입을 수 있거든요. 탁구 등 빠르게 발을 움직이는 종목들은 그에 맞는 신발이 필요합니다. 이 같은 아이디어에 착안해서 스포츠신발사업을 시작했어요.”

당시 태광산업 박연차 씨와도 연결돼 스포츠신발 비즈니스에 한창이었을 때 그는 갓 만들어진 뉴욕한인실업인협회 2대회장을 맡고, 같은 시기 발족한 미주한인상공인단체총연합회장도 맡았다.

뉴욕한인실업인협회가 발족한 것은 1977년 9월이었다. 그해 9월 8일 20여 명의 발기인들이 발기회를 열고 이어 9월 29일 창립총회를 개최해 초대회장에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마친 이영우 회장을 선출했다. 초대 이사장은 재미모발협회 이사장을 역임한 최병철 회장이 맡았다.

뉴욕한인실업인협회는 이듬해인 1978년 11월 GHI 및 블루크로스회사와 단체의료보험 계약도 정식 체결했다. 이어 1976년 6월에는 ‘한미연방신용조합’ 허가도 받았다.

1980년 1월 13일 이사회에서 김기현 회장이 2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부회장에는 하세종 강의용 씨를 선임했다.

“실업인협회가 보험가입을 주도하면서 회원들이 빠르게 늘었습니다. 제가 뉴욕한인실업인협회장을 맡고 있을 때 회원이 무려 1500명이 넘었거든요.”

뉴욕한인실업인협회는 1994년 뉴욕한인상공회의소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2006년 뉴욕 뉴저지 코네티컷의 3개주에서 활동하는 한인상공인단체를 대변하는 단체가 되기 위해 현재의 대뉴욕지구한인상공회의소로 다시 이름을 바꾸게 된다.

뉴욕 그라운드제로
뉴욕 그라운드제로

하지만 ‘The Korean American Chamber of Commerce’라는 영문이름은 뉴욕한인실업인협회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바뀌지 않고 사용하면서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는 게 김대현 회장의 소개다.

뉴욕한인상공회의소 출범에 이어 뉴욕한인경제인협회도 1978년 5월 발족했다. 뉴욕 맨해튼 브로드웨이에 자리잡은 도매상들이 조직한 ‘브로드웨이 상인번영회’가 새로운 이름으로 탈바꿈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는 당시 브로드웨이 한인도매상가는 활기에 차 있었다. 미국 전 지역의 소매상들이 값싼 가방과 잡화용품, 모자, 장갑, 액세서리, 신발, 안경, 시계, 의류제품 등을 구입하기 위해 브로드웨이를 찾았다. 이렇게 시작된 뉴욕한인경제인협회는 1981년 4월 설립된 세계해외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지금의 세계한인무역협회) 출범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김대현 회장이 초대 회장을 맡아 출범한 미주한인상공인단체총연합회는 2대 워싱턴 박일호, 3대 LA 문창배, 4대 시카고 공석준, 5대 애틀랜타 송준희, 6대 시애틀 박현주, 7대 볼티모어 민학기, 8대 덴버 최병관, 9대 필라델피아 박상익 등으로 지역을 돌아가며 총회장이 이어져 갔다. 지금은 플로리다 올랜도의 황병구 회장이 28대 총회장을 맡고 있다.

미주한인상공인단체총연합회는 1991년 제10대 박상익 총회장 때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 설립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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