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칼럼] 미국 총기문화의 폐해
[김재동칼럼] 미국 총기문화의 폐해
  • 김재동(재미칼럼니스트)
  • 승인 2023.02.18 0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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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13일 미시간 주립대학(Michigan State University)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또 일어났다. 3명이 죽고 5명이 중상을 입었다. 범인은 43세 흑인 남성 앤서니 맥레이 (Anthony McRae)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로써 올해 들어 67건의 총기 난사 사건이 미국 내에서 발생했다.

전에 살았던 집에서의 일이다. 이사 들어가기 전, 집안 페인트를 먼저 하기로 했다. 안방 화장실 캐비닛 위쪽을 정리하던 페인트공이 나를 찾는다고 했다. 그는 손에 작은 상자 세 개를 들고 있었다. 먼지가 두껍게 앉은 걸 보니 전 집주인이 기억을 못 하고 이사를 나간 것이 분명했다.

귀중품이 아닐까? 내심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잰걸음으로 방을 나왔다. 단숨에 차고로 내려가 쓰레기통 뚜껑을 열고 쌓인 먼지를 털어냈다. 첫 번째 상자를 열어 보았다. 사냥용 망원경이 들어있었다. 두 번째 것을 열었다. 열쇠 꾸러미가 나왔다.

세 번째 상자는 묵직했다. 혹시 금괴? 상상의 나래를 펴며 상자를 여는 순간, 자그마한 권총이 앙증맞게 누워있었다. 38구경 스미스 웨슨 스페셜리벌버(Smith & Wesson M360J .38 Special)였다. 실탄 세 발과 핀, 공포탄 한 발도 있었다.

이렇듯 미국에는 총기가 흔하다. 아주 간단한 절차만 거치면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총기회사와 딜러들은 매년 몇 차례씩 50개 주, 크고 작은 도시들을 돌며 총기판매 쇼(Gun Show)를 할 정도로 미국에서 총기는 전자제품 정도의 필수품이 되어가고 있다.

2017년 10월 1일 라스베이거스 스트립(Las Vegas Strip)에서 열린 컨트리 뮤직 콘서트 루트 91 하베스트(Route 91 Harvest) 축제 중, 인근의 만달레이베이 호텔(Mandalay Bay Resort and Casino) 객실에서, 범인이 관객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기를 난사했다. 약 3만 명의 군중 앞에서 컨트리 가수 제이슨 앨딘이 노래하던 중이었다.

앨딘은 총소리에 노래를 멈추었다. 관객들은 갑작스러운 공연 중단에 의아해했다. 그때까지도 무차별 총격사건 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사건 발생 초기에 관객들은 불꽃놀이를 하는 것이라 착각했다. 주변 사람들이 쓰러지고 군중이 긴급하게 움직이자 상황을 파악했다고 한다.

범인은 24정의 총기로 천여 발 이상을 난사했고, 61명의 사망자와 867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사건 1시간 후 범인은 숨진 채 발견되었다. 그는 네바다주 메스키트(Mesquite, Nevada) 에 거주하던 64세 백인 남성 스티븐 패독 (Stephen Paddock)으로 밝혀졌다.

한편 1992년 4월 29일 LA 폭동 때의 일이다. 경찰과 주 방위군이 베버리힐스(Beverly Hills) 지역에 우선 배치되는 바람에, 한인타운 상점들이 폭도들에 의한 약탈과 방화 피해가 극에 달했다. 이때 LA지역 해병전우회, 한국전쟁과 월남전 참전용사, 총기 조작이 가능한 일반인들이 자경단을 조직해 한인타운을 필사적으로 지켜냈다.

웨스턴에비뉴(Western Avenue) 의 가주마켓 지붕 위에서 사장과 직원들이 총을 들고 마켓을 방어하는 모습이 지상파 TV에 생중계되었다. 이 장면을 지켜본 미국인들 사이에서 자기방어(Self-Defense)를 위해 총기 소지가 필수적이라는 여론이 크게 형성되기도 했다.

미국 총기문화의 시발점은 1791년 12월 15일 확정된 수정헌법 제2조(Second Amendment)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 “잘 정비된 민병대는 자유주(州)의 안전 확보에 필수적이다. 따라서 시민의 총기 소유와 휴대의 권리를 침해받을 수 없다.(A well regulated Militia, being necessary to the security of a free State, the right of the people to keep and bear Arms, shall not be infringed.)” 시민이 총기를 소유하고 사용하는 것을 국가가 막을 수 없다는 법적 장치인 것이다.

이후 서부개척 당시 광활한 국토의 특성상, 행정력이 닿지 않는 지역은 스스로 지켜야 했던 시대적 상황이 총기 소유 자유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치안이 불안하고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는 사회적 구조에서, 모든 위험으로부터 가족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총기 소유는 필수였다.

그러나 2백 년을 훌쩍 뛰어넘은 21세기 초일류 문명국가 미국에서 여전히 231년 전 제정된 수정헌법 제 2조가 적용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 생각한다.

전미총기협회(National Rifle Association)는 정치계 로비로 막강한 힘을 과시하고 있다. 수년간 재정 문제와 내부 갈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 내 가장 강력한 총기 로비 단체다. NRA는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미국 의회의 총기 관련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자는 거의 만장일치로 더 엄격한 총기 규제법을 지지했다. 이들 중 92%가 총기 규제법 강화에 찬성했다. 반면 공화당 지지자는 24%만이 엄격한 총기 규제법에 동의했다. 민주당도 공화당도 지지하지 않는 경우 45%가 엄격한 총기 법을 원했다.

미국은 총기 소유가 허용되는 다른 나라에 비해 1인당 평균 총기 소유 비율이 매우 높다. 최근 스위스의 국제 무기 조사 기관 ‘스몰암스서베이(The Small Arms Survey)’에 의하면, 100명당 120.5정의 총기를 소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수치는 2011년 100명당 88정에 비해 월등히 증가했다. 미국에는 개인이 소유한 총기가 약 3억9300만 정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현재 3억3190만의 인구보다 총기 숫자가 더 많은 셈이다.

필자가 거주하는 유타주의 여러 도시에서도 매년 크고 작은 총기사고가 수십 건 발생한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2007년 2월 12일 주도인 솔트레이크시티(Salt Lake City) 다운타운 지역에 있는 트롤리스크에어 몰(The Trolley Square Mall) 총기 난사 사건이다. 범인을 포함 6명이 목숨을 잃었고, 4명이 중상을 입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2020년 한 해 동안 총 4만5222명이 총기 관련 부상으로 사망했다고 분석했다. 최근 들어 강력한 총기 규제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개인의 총기 소유가 아무리 법적으로 보장된다 해도 시대가 바뀌었다. 총기 난사가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이제는 심도 있는 국민적 논의가 필요할 때 아닌가 싶다.

필자소개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 거주
작가, 한국문학평론과 수필과비평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와 수필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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