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성 칼럼] 드레스 입은 조수미, 한복 입은 모나리자
[정대성 칼럼] 드레스 입은 조수미, 한복 입은 모나리자
  • 정대성 문화칼럼니스트
  • 승인 2023.02.2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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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출장 시 오랜만에 친여동생과 사촌형제들, 그리고 처음으로 여동생의 딸을 만났다. 오빠, 형님 이런 단어들만 한국어로 말할 뿐, 회화는 다 일본말이다. 질녀는 한국인이라는 자각이 무뎌 보이는 고교 1학년생이다. 그 나이 무렵에 기호로서의 ‘조선’적인지, 한국 국적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조선’적으로 남더라도 북한을 지지한 것도, 한국을 부인한 것도 아니다. 재일동포들은 본국에 대해서 잘 몰른다. 지금은 다행히 K-pop 등 한류라는 문화코드만은 주어져있다. 하지만, 수험생인 질녀는 한류에도 관심이 없는듯했다.

일본에 태어난 조선인, 한국인은 민족학교에 다녀도 한국어를 익히지 못하고, 안 다니면 전혀 못 한다. 필자의 경우, 난생처음으로 들은 음악이 요람에서 듣던 카라얀 전집 레코드였고, 베토벤 ‘제9 교향곡 합창’ 노래를 듣고 그것을 조선어로 착각하고, 감탄하며 춤추곤 했었다. 부유층 일본 유치원의 피아노 발표회 때 식은땀을 흘려 웃음거리 된 후부터 음악은 좌절했고, 만화 그리기를 좋아하다가 중고등학교 때 유화(서양화)에 빠졌다. 미술, 음악 등 예술은 개인의 인격 형성뿐만 아니라, 자기동일성 형성에도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조총련 민족학교 바로 옆에 있는 기독교 교회에 다녔는데, 민족학교에서는 북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교회에서는 일본어 찬송가를 불렀다. 찬송가에 관해서 말하자면, 일본어 찬송가는 와닿지 않는 느낌이 있다. 훗날, 한국어 찬송가에 눈물 흘릴 줄 몰랐지만, 한국어가 더 노래 가락에 맞는 것 같고, K-pop의 원동력도 한국어의 힘 덕분인 부분이 크다고 본다. 대학에서 ‘조선어’ 과목을 가르쳐주신 고 윤학준 선생은 필자에게 이미자, 금강경, 옛날 동요, 옛날 가곡, 북한 가곡 등을 추천해주셨다. 같은 대학 정치외교과 일본인 선배는 고려대 교환 유학을 몇 년 갔다 왔다고 자랑하면서 자신이 고대 여학생으로부터 선물 받았다는 한대수 테이프를 필자에게 줬다.

고교 때부터 밥 딜런을 즐겨 듣던 필자는 한대수 음악을 좋아하게 됐지만, 그가 활동을 일찍 끝내버린 것이 아쉬웠다. 같은 대학 ‘한학동’ 친구들은 <친구> <아침이슬> 등이 담긴 김민기, 양희은, 노찾사 테이프를 줬다. 필자는 젊음의 오기로 북한 가곡도 많이 섭렵했고, 마당극 운동 전수하러 온 한국인들한테서 민요, 창도 배우고 탈춤도 배워봤다. 대학의 한국인 유학생 선배들과 단란주점을 가거나, 몇몇 일본인 사업가들의 돈으로 아카사카 등지의 코리안 클럽에서 매일같이 한량 노릇을 하며 <목포의 눈물> <눈물 젖은 두만강> <타향살이>부터 길옥윤, 조용필 등까지 한국 노래를 두루 익히며 즐겨 부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경대 함께 다니던 한인 유학생 친구(현재, 국민대 정외과 교수)가 필자에게 한국가곡 테이프를 줬다. <동심초> <보리밭> <저 구름 흘러가는 곳> <선구자> 등의 가곡들을 굶주린 아기가 애미젖을 빨아먹듯 연신 들었다. <선구자> 하면 정치평론가 고 정경모 선생(1주기가 지남)의 십팔 번. 시도 때도 없이 아무 데서나 그 노래를 부르셨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필자에게 일본어 고전문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것도 윤학준 선생과 함께 정경모 선생이셨다. 그래선지, 필자는 한국어, 영어, 일본어 고전문으로 시를 쓰며, 그 시 주제에 맞춰 그림을 그린다. 일본어 고전문의 중요성의 일단은 거기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고대조선어의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데에 있다. 고조선의 언어는 중앙아시아 저 너머로 퍼져있었으며, 영어에도 영향을 끼친 흔적이 있다니, 필자가 아깃적에 독일어 노래를 ‘조선어’로 듣던 것도 일리가 있었던 것일까?

이번 일본 출장 중 12월 1일 동경예술극장에서 있은 조수미 콘서트를 앞두고 간담회가 끝날 때 필자는 자신이 그린 그림 두 점을 조수미 가수에게 선물했다. 하나는 ‘한복을 입은 모나리자’인데, 원제목은 <낙낭의 최마리아>다. 이 그림을 선택한 이유는 그 목소리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영원한 아름다움을 선사하시는 현시대 최고의 디바에게 필자가 모나리자의 영원미 모사에 도전하여 그린 그림을 바치고 싶었음은 물론, 현재 이탈리아에 사신다는 그녀가 그곳에 들고 가셔서 이탈리아인들에게 보여주기를 바래서다. 자리를 같이한 사람들이 이 초상화가 그녀를 그린 것으로들 보신 것처럼 이탈리아 사람들도 그렇게 볼 것 같다. 아무튼, 드레스 입은 조수미와 한복 입은 모나리자는 참으로 묘한 조합이다. 하나는 동양인의 몸을 지닌 가수가 서양문화를 완전히 소화해내어 서양 옷을 입었다. 다른 하나는 모나리자의 신비성을 지닌 인물에다가 완전히 한국적인 옷차림을 씌웠다. 일견, 김광섭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처럼 복잡하고 아리송한 조합이나, 그 근본이나 공통분모는 하나이다. 영원한 아름다움!

이번 조수미 콘서트의 첫 노래는 극적 교향곡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꿈속에 살고 싶어라>를 배치됐다. 이번 콘서트의 선곡은 주최 측인 하시모토 코퍼레이션이 끝까지 고민고민하며 정했다고 들었는데, 어째서 이 작품으로 시작했을까? 필자의 ‘모나리자’는 셰익스피어의 저 유명한 소넷 18번을 번안한 시들이 곁들여 있다. 셰익스피어에 있어서, 영원미와 순정은 상통된다. 필자가 번역, 출간한 권보드레 선생의 <연애의 시대> 띠에 출판사 측이 단 문구가, “조선에는 연애가 없었다”였다. ‘연애’라는 것은 독립된 근대적 자아끼리의 사랑이고, ‘연애’란 단어가 근대 신조어란 뜻인데, 전근대 조선에는 인애, 애정, 흠모의 정이 일반적이었으나, ‘연애’가 없진 않았다.

일본어로 ‘신쥬우’라는 동반자살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조선에서나 일본에서나 각성한 개인의 사랑은 사회로부터 무형유형의 압력을 받아, 죽음으로써만 이뤄진 것은 영국의 저 유명한 두 사람과 같다. 로미오, 줄리엣, 시인 셰익스피어의 사랑은 유일성의 애틋함 속에 영원미를 잡아낸다. 동경예술극장에서 지금, 이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여러모로 대중화되어 썩어빠진 현금 일본 사회에 대해 유일적 주체성을 환기하려는 의도였을까? 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필자의 지나친 통찰이리라.

필자의 그림 제목이 <낙낭의 최마리아>이지만, 조수미 가수는 이날, 카치니의 <아베마리아>를 불렀다. 이 노래는 사실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말기 카치니의 작품이 아니라, 소련의 작곡가 블라디미르 바빌로프의 작품이다. 공산권의 작곡가가 웬 마리아 찬가냐? 라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러시아 정교와 관계가 있는 걸까? 아무튼, 이번 콘서트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즈음해, 우크라이나 난민 연주자 모녀도 초청하여 우크라이나 상황을 묵상하는 시간도 가졌다. 어째서 슈베르트나 구노의 아베마리아가 아니라, 하필이면 바빌로프의 아베마리아였을까? 거기에 무슨 의도가 있었던 것일까? 이것도 필자의 지나친 독단이리라.

그런데, 전쟁에 대한 평화의 메시지가 있다고 할 때, 조수미, 다른 일본인 남자 가수들, 재일동포 제 자가수가 합창으로 일본가곡 <후루사토(고향)>를 불렀던 것은 의미심장한 뜻을 품어서 풍겨 공기 진동으로 울려퍼진 듯했다. ‘고향’은 근대적 주체의 근원이자 현대철학의 한 키워드다. 전쟁으로 희생되는 것은 고향의 풍경이자 사람들이고, 과속화되는 근대합리주의를 해체하는 근거 또한 고향과 같은 공동체, 다시 말해, 알몸으로 들판을 뛰놀던 신체적 기억 또는/그리고 거짓 없이 서로 교통할 수 있는 인간끼리의 영혼적 교류이다.

조수미 가수의 기교나 카리스마 넘치는 아우라 등에 관해 쓰고자 했는데, 인터넷을 살펴보니, 이미 너무나 많은 찬사들이 세상에 넘쳐난다. 필자가 한 마디 덧붙이는 것이 사족이랄까, 무의미할 것 같아, 필자의 여러 경험적 기억과 연관해서 말하자면, 필자가 석사논문으로 연구한 바 있는 조선 최초의 근대적 극작가 김우진과 정사한 걸로 알려져있는 윤심덕이 거의 100년 전의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였음이 환기된다. 나혜석의 당시 윤심덕 평을 읽어보면, 너무 심하다 할 정도의 혹평이다. 당시 세평도 윤심덕의 적이었다. 단순히 윤심덕을 변호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만, 어쩌면 그녀의 진가를 이해했던 것은 김우진, 홍난파 정도밖에 없었던 것일까?

<사의 찬미>를 녹음한 닛토레코드사가 조선에 축음기를 유행시켜 큰돈 벌기 위해 윤심덕을 죽였다거나 극적인 정사를 연출했다는 둥 여러 풍설들이 당시부터 있었다. 당시 신문에 두 사람이 이탈리아 로마에 살고 있다는 기사가 실린 바 있다. 그로부터 약 100년이 지나, 우리는 조수미라는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 소프라노 가수를 가졌고, 그녀는 이탈리아에 실지로 살고 있다. 사의 찬미가 아니라 생의 찬미이다.

조수미 가수는 자신이 성악가이지만, 한국 사람들이 창 같은 전통음악을 더 즐길 것을 원한다고 한다. 그것도 일리가 있거니와,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국 근대의 가곡들을 들어보니, 여러모로 ‘고향’적 ‘한’의 문제계, 철학적 사색 거리가 오장육부에 스며들어온다. 한편으로 북한 가곡을 상기하곤 한다. 조선 가곡의 완성은 우리의 ‘미완의 근대’, ‘압축 근대’의 어떤 문제성을 풀어내는 힘과 열쇠를 담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러고보니, 조수미 가수 자신이 북한 콘서트에 대한 열망을 여러 번 밝히신 바 있다. 몇 년 전에 일본 교토 명문대 도시샤 출신 한국인 사업가와 친해져 얘기를 나누는 가운데, 그분이 북한 노래를 좋아한다고 해, 유튜브로 <발걸음>을 함께 들었다. 북한은 음악, 영화가 장난 아니다. 죽인다. 북한 가창단이 부른 퀸의 <I want to break free> 동영상도 있다. 웬일인가? (“break free”를 자유 진영을 파괴한다는 뜻으로 잘못 해석한 건 아닌 것 같고….) 하기야, 남한 트로트 스타들이 방북 콘서트를 해왔다. 조수미 가수가 북한 콘서트를 하게 되면, 그것은 조선 음악사에 길이 남을 빅 이벤트가 되리라. 아프리카도 좋지만, 북한도 가시면 어떠신지?

<낙낭의 최마리아>를 여동생에게도 선물했다. 질녀도 늘 곁에서 보면서 느끼는 바 있었으면 좋겠고, 대학 진학 후부터라도 노력하면 이 아저씨처럼 한국인화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인생 진로를 개척해나갔으면 한다. 암튼, 돌싱인 필자나 여동생이나, 노총각, 노처녀 사촌 형제들, 남자불신이 있다는 조카딸아! 모두 잘 결혼해서 아이들이나 낳자. 조수미 가수 또한 행복한 결혼을 하셔서 어여쁜 아기 낳으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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