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Garden] 똘 장군아, 잘 가
[Essay Garden] 똘 장군아, 잘 가
  • 최미자 재미수필가
  • 승인 2023.04.24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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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로스앤젤레스발 방송뉴스에서 동물병원 의사들이 보호자의 동의 없이 약과 치료비를 과다 청구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몇 달 전 우리 강아지도 의사의 약물과다 사용으로 갑작스레 발작하다가 떠나버렸다. 거의 두 해 동안 서서히 진행되는 백내장으로 봉사였지만, 잘 먹고 잘 걷던 우리 반려견 ‘똘 장군’. 뜰에서 열심히 걷는 씩씩한 그를 바라보며 우린 본을 받아야 한다며 대견스러워까지 했다. 그리고 아쉽지만 언젠가 노환으로 자연스럽게 떠나기를 기원했다. 시신을 묻어야 할지 화장해야 할지 결정이 어려웠다. 마침 날씨가 차가워 시신을 상자에 넣고 매일 바라보며 삶과 죽음에 대해 또 생각했다. 약 오십 년 전 6년간 중풍으로 고생하다 58세에 떠난 아버지의 시신이 화구에 들어가 활활 타던 충격은 내게 큰 인생 공부가 되었다. 또 타인의 죽음을 대할 때마다 큰 집과 돈, 명예 같은 부속품들은 모두 허무하다고. 아웅다웅 다투며 무엇을 가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라는 훈계라며 배웠다.

아주 오래전, 건강이 안 좋아 두 번이나 인공유산으로 살생한 부족함을 훗날에야 나는 뉘우쳤다. 돌아보면 인연이 되어 온 두 마리의 반려견을 정성껏 기르고 마지막까지 지켜본 일도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지난번 쿠키도 잘 키워 보냈지만, 이 녀석과의 인연은 특별했다. 17년의 세월. 입양했던 딸이 고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흰 수염이 났었지만 우리의 사랑으로 건강한 중년을 보냈다.

동물병원에서 치석을 제거하다 오히려 이빨에 금이 가버려서 딸이 매일 이를 닦아줬다. 그동안 서로 못 본 세월도 보상해주면서 20년은 살아달라고 딸은 당부하면서. 식사 당번인 나는 상추, 두부, 토마토 등을 돌아가며 마른 개밥에 섞여주며 먹였다. 가끔 나의 실수로 배탈이 나 설사할 때는 흰죽이나 흰 빵으로 회복시키곤 했다. 그동안 구수한 냄새가 나는 통닭으로 입맛을 부추기느라 우린 또 얼마나 사 먹었는지 모른다.

반려견의 이빨이 성할 때의 일이다. 내가 열무김치를 담그려고 줄기의 힘줄을 벗기며 톡톡 부러뜨리는 소리를 듣고 양푼 곁으로 쫓아와 앉아 달라고 조르곤 했다. 아삭아삭 열무 줄기를 맛있게 먹던 신기한 녀석은 전생에 한국인 같아 우릴 웃겼다. 최근까지도 김치찌개 냄새를 좋아하여 돼지고기를 씻어 먹이곤 했다. 노인이 되면 입맛이 떨어지듯, 우리 개도 밥그릇에 코를 한참 킁킁거리다 먹던 일이 사람과 다름없었다.

또 한밤중에 언젠가 내가 응급실에 갈 때였다. 내 바짓가랑이를 마구 긁어대며 도대체 어디를 가느냐고 울부짖던 일이다. 그의 예견이 신기했다. 덕분에 난 살아 집에 돌아와 이토록 그의 시중을 들었는지도 모른다. 계란 크기만 한 총명한 그의 두뇌. 그래서 부자들은 유산을 남겨주기도 하고 애견을 복제하는가 보다. 어릴 적 예방 주사와 광견병 주사를 맞았을 뿐 병을 모르고 산 반려견이어서인지 더욱 그리워진다.

인명은 재천이라던데 우리 애견에게도 하필 그 시간에 코요테에게 귀를 물리며 불행은 찾아왔다. 내가 발라준 지혈제로 상처도 잘 나았는데. 갑자기 눈이 아파 병원에 데리고 간 게 탈이었다. 수의사는 잘 키웠다며 놀라기도 하고, 갈 때가 되었으니 준비하라는 말도 했다. 그런 노견에게 나에게 묻지도 않고 항생제 주사를 목에 놓고 먹는 항생제까지 처방했다. 살리려는 욕심으로 우리도 매일 먹였다. 독한 약으로 위장에 탈이 났는지 다음날부터 전혀 먹지를 못했다. ‘베이트릴’이라는 항생제 주사.

강아지는 구토만 계속하더니 사흘째부터는 일어서지도 못했다. 나는 먹던 약을 중지하고 종일 않고 미음을 겨우 두어 숟갈 먹였더니 저녁에 오줌이 몇 방울 떨어졌다. 그러다 발작하면서 마지막 밤을 지새웠다. 열여덟 살이 되는 생일날 새벽에 결국 고개를 떨구었다. 죽기 전날은 딸 얼굴로 힘들게 다가와 비비며 볼에 키스를 하듯이 인사까지 했다. 고통스러워하는 애견이 너무 측은하여 보내주겠다고 딸은 결심했고 우릴 깨웠다. 그렇게 내 품에서 새벽에 눈을 감았다.

뜰에 묻어보려고 구덩이를 매일 팠는데 세 번째서야 배수가 잘되는 언덕을 겨우 찾았다. 로즈메리 이파리로 덮어주고 경전도 읽어주고 남쪽으로 머리를 놓아야겠다고 생각하니 나의 마음도 차분해졌다. 나도 언젠가 한 줌의 재가 되어 이 정원에 조금 뿌려지길 원하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 포르투갈 시골에 사는 서른 살 개의 뉴스가 흥미롭다. 평생 목줄을 해본 적이 없고 온 들판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사람 음식을 먹고 살고 있단다. 개 병원에 갈일 약을 먹을 일도 없을 것이다.

자유, 건강식, 운동, 환경, 사랑은 우리 모두의 귀중한 생명 줄이 아닐까. 코요테에게 귀를 물린 일로 스타가 됐던 똘 장군의 이야기를 듣고 지인들은 자기 반려견과의 추억담을 전해왔다. 한 분은 코요테에게 목이 물린 강아지를 남편의 은퇴 연금보너스로 수술했으며 지금도 남편 곁에 살아있다고 했다. 동물을 사랑하는 미담이 우리 가족의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었다. 갑작스러운 이별을 믿지 못하는 딸은 서럽게 울다 지쳐 스케치북에 반려견의 그림을 그리며 마음을 달랬다. 불교에서는 떠나는 혼을 슬프게 붙잡지 말아야 좋은 데 태어난다고 한다. 똘 장군아, 잘 가.

필자소개
미주 한인언론 칼럼니스트로 활동
방일영문화재단 지원금 대상자(2013년) 선정돼
세번째 수필집 <날아라 부겐빌리아 꽃잎아> 발행
네번째수필집 <날아라 부겐빌리아Ⅱ>(2022)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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