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조의 맛과 멋 ㉜] ‘벽상(壁上)에 걸린 칼이’와 ‘양말 희극’
[우리 시조의 맛과 멋 ㉜] ‘벽상(壁上)에 걸린 칼이’와 ‘양말 희극’
  • 유준호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
  • 승인 2023.05.01 0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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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조의 맛과 멋을 소개하고 창작을 북돋우기 위해 연재물로 소개한다. 고시조와 현대시조 각기 한편씩이다. 한국시조협회 협찬이다.[편집자주]

* 고시조

벽상(壁上)에 걸린 칼이
- 김진태 

벽상에 걸린 칼이 보믜가 낫다 말가
공(功)없이 늙어가니 속절없이 만지노라
어즈버 병자(丙子)국치(國恥)를 씻어볼까 하노라

김진태(金振泰?~?)는 영조 때 가인(歌人)으로 호는 군헌(君獻)이다. 이 작품은 벽 위에 걸어둔 칼에 녹(보믜)이 슬었단 말인가. 아무런 공을 쌓은 바 없이 늙어만 가니 칼만 속절없이 만진다. 아, 이 칼로 병자호란의 수치를 씻어보고 싶다는 시조이다. 1636년 일어난 병자호란은 인조가 남한산성에 45일간 청나라 군대에 포위돼 항전하다가 결국 삼전도(三田渡)에 설치된 수항단(受降檀)에서 청태종(淸太宗)에게 항복하면서 끝났다. 전후 소현세자를 비롯한 수십만 명이 청에 끌려가 인질과 노예가 되었으니 중기 조선을 뒤흔든 일대 참변이었다. 이 치욕을 씻고자 하는 마음이 여기 담겨 있다. 

* 현대시조

양말 희극(洋襪 喜劇)
- 한분순

구멍 난 양말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타인의 생을 감싸 올올이 헤어져도
이별에 사무침 없이 입을 벌려 웃는다

한분순(韓粉順 1943~)은 197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나와 한국시조시인협회장을 지냈다. 이 작품은 양말을 바라보는 시선이 애틋하고도 사무침이 깊다. 구멍 난 양말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구멍이 날 때까지 발을 감싸준 고마움, 함께한 시간들, 이 모두가 사람의 삶의 시간을 따뜻이 보듬어 주었지만, 정작 양말 그 자체는 헤지고 구멍 나고 남모르게 희생? 아닌 희생의 시간을 보내고 사람의 곁을 떠난다. 사람의 옷이나 신발들은 이렇게 자기 가치를 다 하고 그 쓸모의 용도가 사라지면 버려지거나 소각(燒却)을 한다. 이렇게 그 이별에 대해 사무치는 정을 표한다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고 생각한다. 헤어지면서도 그 이별에 대해 화를 내거나 아쉬움을 말하기보다는 입을 벌려 헤헤 웃어주는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네 인생사가 이러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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