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칼럼] 엄지 게임
[대림칼럼] 엄지 게임
  • 김경애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장
  • 승인 2023.05.02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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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하던 오른쪽 엄지가 어느 날 갑자기 더 악화되면서 아예 마우스나 운전대도 잡지 못할 정도로 아프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다녀봤지만 오진의 연속으로 상세불명의 통증은 계속 되었다.

오른쪽 엄지가 부실하니 나머지 손가락들이 고생이다. 원래 엄지와 식지로 뭔가를 집거나 뽑을 때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던 둘도 없는 명품집게였는데 하는 수 없이 어설픈 왼손으로 집거나 오른손 식지와 중지를 사용해야만 했다.

왼손은 오른손이 하는 모습을 늘 지켜 보고만 있다가 정작 ‘업무대행’을 시켰더니 움직임이 어수선하다 못해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역시 왼손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잘 모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여러 가지 기회를 반납하고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어이없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인간의 손가락은 열 개가 되었을까? 워낙 다른 손가락처럼 길었을 엄지손가락은 왜 짧고 굵게 진화되었을까?

그러다가 인간들이 동물들은 할 줄 모르는 악수라는 인사법을 고안해 낸 것 또한 신기하지 아니한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2019년에 시작되었던 코로나19 펜더믹으로 인해 3년째 수많은 인연을 코로나 19가 없는 저세상으로 허무하게 보내드리기도 했다.

슬프고 허무한 마음은 이루 형언하기 어렵지만 거두절미하고 그동안 많은 사람이 마스크 속에 진실한 표정을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은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일이다. 눈은 웃고 있는데 입은 욕을 하고 있었고 소통을 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스킨십 중 하나로 뽑는 악수는 절대 피하고 허구한 날 만나면 서로 주먹질만 해댔다.

부모나 형제를 만나도 반갑다고 포옹을 하기는커녕 주먹질해대는 것 또한 당연지사가 되었고 워낙 치열하던 정치판은 더 가관이었다. 당내 인사들끼리도 주먹질, 상대편 당파와 만나도 당당하게 주먹질, 아무튼 주먹질로 세상은 온통 난장판이 되었다.

사람을 만나도 악수를 거의 안 하게 되다 보니 엄지는 사실상 제구실을 못 하게 되었다. 악수할 때 엄지를 제외한 네 손가락만 쓴다면 그것은 순전히 터치일 뿐 악수한다는 의미가 없다.

서로 네 손가락을 맞댄 상태에서 엄지손가락으로 상대방의 손을 감싸면서 꽉 잡고 흔드는 게 통상적인 악수라고 말할 수 있는데, 만났을 때 반가운 감정을 전달하는데 큰 몫을 해왔다. 그런 의미에서도 엄지는 중요한 몫을 감당한다. 엄지가 없으면 아귀힘이란 존재하지 않고 엄지와 다른 네 손가락이 함께 힘을 써야 손아귀가 생기며 그때 비로소 강한 힘으로 뭔가를 잡을 수 있게 된다.

엄지의 소중함을 새삼스럽게 느끼던 중 갑자기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톨게이트 지날 때 생각이 났다. “하이패스 차량은 1,2,3,10,11,12,13입니다”라는 비서 아리의 멘트를 들으면 필자는 늘 2차선 혹은 3차선을 달리다가도 곧바로 1차선으로 차선을 변경한다.

왠지 모르게 톨게이트를 눈앞에 두고 1차선으로 달릴 때면 초등학교 때 100m 달리기에서 1등을 하려고 젖먹던 힘까지 내어 달리던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시속 30km의 톨게이트를 지나고 나면 뒤에서 늘 빵빵거리는 소리가 시끄럽다. 작은 체구의 모닝카는 체면이 구겨진 채 1차선을 이탈하며 비틀비틀 2차선 혹은 3차선으로 밀려난다.

잠깐 맛보았지만,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1등은 그래서 모두가 하고 싶은가보다. 그런 스릴과 기분은 가끔 스스로 엄지를 뽑아 자화자찬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래저래 유용하던 엄지가 요즘 많이 아프다. 지금 아픈 엄지는 아무것도 바로 잡을 수 없다. 게다가 깁스를 해놨더니 만천하에 손가락 아프다는 것을 자랑하게 되었고 외관상 이미지도 좋지 않다.

사람들은 왜 아픈지? 병명은 무엇인지? 관심 조로 묻고 있지만 아프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당사자는 답답하기만 하다. 엄지가 안 아플 때는 엄지의 중요성을 몰랐지만 아파지고 보면 아마도 누구든지 다 새삼스럽게 그 소중함을 알게 될 것이다.

단언컨대 한 나라의 엄지인 대통령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대통령도 아프면 국정을 두루 살필 수 없고 국경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국면이 말이 아니게 구겨지게 될 것이라는 쓸데없는 노파심이 생긴다.

어설픈 걱정은 씹던 껌 버리듯 뱉어버리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 전문가를 찾아 아픈 엄지부터 먼저 살펴봐야겠다. 손가락만 아픈 것이 아니라 언젠가 낙상으로 다쳤던 목부터 시작해서 연쇄 병변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으니 병의 원인을 찾아내어 치료받는 것이 시급한 것 같다.

행여 필자가 늘여놓은 엄지에 관한 사설에는 관심이 없더라도 시간이 되면 서울 도심에 나들이 한번 가보는 것도 좋을듯싶다. 뉴스거리는 못되지만, 도심 곳곳에서는 요즘 상대방의 한 손을 잡고 엄지끼리 싸움을 하여 다른 사람의 엄지를 눌러서 못 빠져나오게 하면 승리하는 ‘손가락 씨름’ 게임을 하는데 그 걸린 상금이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상대방의 치켜세운 엄지를 과감히 꺾어버리는 ‘손가락 씨름’ 게임 같은 작은 행사를 크게 벌이는 사람들, 정치적 생명마저 꺾일까 봐 두렵기도 하지만 팔자 한번 고쳐보겠다고 도전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고 들었다.

어마어마한 상금에도 관심이 가지만 참가자들의 승부욕와 게임의 룰 그리고 행사의 구조적 문제 등등이 더 궁금하다. 지금은 좀 아프지만 엄지를 잘 치료하고 재활을 열심히 해서 필자도 직접 체험해보려고 한다. 엄지를 꼭 치료해야 겠다는 나만의 이유를 찾은 것 같다.

필자소개
재한동포문인협회 대표, 재외동포포럼 이사, 중국 애심여성 민족공익발전기금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중국 제4회 애심여성컵 은상, 동포문학 시 대상, 향촌문학대상, 민족공훈대상, 일본 카라즈컵 가작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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