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명박과 김정일의 키스
[시론] 이명박과 김정일의 키스
  • 전대열<大記者>
  • 승인 2011.11.26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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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신문지상에 여러 장의 사진이 한꺼번에 실렸다. 한 눈에 봐도 누군지 알만한 인사들이 부끄러움도 잊고 입맞춤을 하고 있어 기사를 읽어보기 전에는 어리둥절하기 까지 한다. 사진 위쪽에는 영자(英字)로 ‘UNHATE'라는 글씨가 보인다. 서로 미워하지 말자는 뜻으로 베네통사에서 설립한 재단의 이름이다.

이태리의 유명 의류전문업체인 베네통측이 사회 환원의 한 방법으로 화해와 사랑을 표현하는 재단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 재단에서 사진을 합성하여 제작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들은 “광고에 존중 사랑 관용의 메시지를 담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진의 주인공들이 대립과 갈등을 빚고 있는 대표적 인물들이어서 캠페인의 메시지는 금방 머릿속에 들어온다. 우리의 안중에 맨 먼저 꽂히는 인물은 이명박과 김정일의 입맞춤이다. 두 사람 다 안경을 끼고 있어 부딪쳐 깨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만큼 밀착한 키스다. 눈을 지그시 감은 미국의 오바마는 중국의 후진타오와 가벼운 입맞춤의 자세를 취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압바스는 키 차이가 있는 듯 위아래가 분명하다. 독일 총리 메르켈과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는 유일한 남녀 간의 키스신이라 다정하기 그지없다.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장면이 진짜 정렬적인 키스를 하고 있는 듯하다.

이들 외에도 미국과 오랜 갈등관계에 있는 베네주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와 오바마도 출연하여 오바마는 겹치기를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끄는 게 교황을 등장시킨 일이다. 정치인들이야 만화로 풍자되기도 하지만 근엄한 종교영역은 잘 간드리지 않는 게 상수다.

아니나 다르랴. 교황 베네딕토16세와 모스크바의 종교지도자 아흐메드 알타예브, 이집트의 알하즈아르 등 심한 대립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입 맞추게 한 것은 교황청의 분노를 샀다. 교황청 대변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는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든 광고에 교황의 사진을 조작한 것은 용서할 수 없다. 교황에 대한 존경심이 결여됐고 신도들의 종교적 정서를 해쳤다.”고 강력히 비판하고 나섰다.

언젠가 이슬람 비판소설을 썼다가 살해명령을 받은 이도 있다. 한국에서도 비구니 영화를 제작했다가 불교계의 반발로 상영조차 못했고 주연배우 김지미는 머리 기르느라고 애만 썼다. 이처럼 종교영역은 패러디나 희화화의 대상이 되기를 극히 싫어한다.

성직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모욕이 될 수 있으면 아예 자제하는 게 좋다. 그러나 한번 발행된 광고사진이 널리 유통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인터넷에 올렸던 글이나 사진을 곧 삭제하더라도 이미 한 단계만 넘어가면 수많은 네티즌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지 못한다.

베네통에서는 대단히 기발한 아이디어로 생각하여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만들었을 테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논평을 통하여 “인기가 시들해진 베네통이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위한 고육책으로 이 광고를 제작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광고 제작비만도 무려 1000만유로(약 150억원)를 투자했으며 유명잡지인 뉴스위크, 뉴욕매거진 등에도 캠페인 광고가 실릴 예정이다.

베네통사가 고육책으로 내놨다는 월스트리트저널의 논평처럼 세계의 지도자들을 합성사진으로 희화화시킨 광고는 일시적인 흥미를 끌 수는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혐오의 감정을 자아낸다면 역효과 아니겠는가. 우선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교황청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 꺼림칙하다.

아직까지 다른 국가에서는 아무런 항변도 없었다고 하지만 북한의 김일성이 교황청 다음 차례로 나올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는 온갖 세뇌공작을 통하여 북한인민들의 숭배를 받는 것처럼 보인다. 교황이 받고 있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존경심과는 차원이 다르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인간 이외의 인간’인 듯 행동한다.

한국에 왔던 북한 무용단 아가씨들이 김정일 사진이 비를 맞고 있다고 울면서 품에 안고 모셔가는 장면은 일종의 광신앙으로 보여 우리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그런 김정일이 ‘남세스럽게’ 대낮에 이명박과 남자끼리 입을 맞추고 있는 사진이 퍼져보라. ‘위대한 위원장동지’의 권위와 숭앙심을 해쳤다고 당장 난리를 피울 개연성이 크다. 자유스러운 우리들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이명박과 김정일의 키스는 썩 기분에 내키는 일이 아니다. 남북화해의 상징은 입맞춤으로 되는 게 아니다.

우선 정서에 어긋난다. 입맞춤은 사랑하는 남녀 간의 애정표현이지 게이들의 불장난처럼 천하게 보여서는 씁쓸하다. 더구나 외국 업체의 상업광고에 각국의 대통령들이 무더기로 등장하는 것은 분명히 초상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 보도사진이나 만평의 대상이 되는 것을 초상권 보호라는 명목을 걸 수는 없겠지만 상업용으로 쓰이는 것은 비록 UNHATE를 내걸어도 제소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베네통은 교황의 사진만 회수할 게 아니라 화해 사랑 관용이 통할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을 억지춘향으로 합성시키지 말고 즉각 취소와 함께 진정을 다하여 사과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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