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백혈병 아버지를 살려주세요”
“제발 백혈병 아버지를 살려주세요”
  • 조규일 특파원
  • 승인 2010.08.13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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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수기증 기다리는 이봉열 씨의 딸 그레이스 김 씨

건강했을 때의 이봉열씨와 두 자녀들. 왼쪽이 어릴적의 그레이스김.
골수 기증자를 간절히 찾고 있는 이봉열 씨(56세)의 딸 그레이스 김(23세) 씨가 달라스를 방문했다. 8월 2일(월)부터 샌안토니오 약학대학에 진학하는 김 씨는 바쁜 와중에도 달라스 곳곳에서 일어나는 골수기증 등록운동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기 위해 온 것이다.

지난 12월 백혈구 수치가 높아져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의사의 진단 이후 가족이 겪었던 마음 고생을 담담히 풀어낸 김 씨는 “아버지(이봉열 씨)와 새어머니(박경애 씨)는 처음에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에 힘들어 하셨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러나 주변의 사람들의 격려와 신앙의 힘을 바탕으로 이봉열 씨와 박경애 씨는 지난 6월 급성백혈병(AML)이라고 의사가 결론을 내렸을 때 주저앉지 않고 오히려 일어섰다.

열 살 때 돌아가신 엄마, 그 슬픔이 아직도…

김 씨는 “아버지는 방사선 항암치료의 고통도 가족의 힘으로 버텨내고 있다”면서 “이번 일이 가족의 아픔이 치유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씨 가족의 아픔은 그가 열 살이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동생 브라이언의 생일이라 정확하게 기억한다”는 김 씨는 “1997년 5월 23일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동생의 생일준비를 태권도장에서 하기로 하고 준비를 하던 엄마(고 이성윤)가 잠시 병원에 다녀오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병원에 입원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끝내 동생의 생일파티는 하지 못했어요.”

그날 이후 남매는 약 5개월 동안 병원에 가야만 엄마를 볼 수 있었다. “엄마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는 항상 1시간 30분 정도 차를 타고 병원까지 가야 했고, 아빠는 엄마를 위해 일을 해야 해서 자주 병원에 가지는 못했다”는 김 씨는 “엄마와의 이별이 화요일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레이스 김 씨는 그날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와 남동생과 함께 병원에 도착했다. 여느 때와 뭔가 다르다는 것을 감지했던 그는 의사가 이모에게 “인사를 해야 될 것 같다”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가 어리기 때문에 이모가 대단히 조심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그냥 그 때 알았던 것 같아요. 그날 처음으로 엄마가 우는 모습을 봤어요. 한 번도 우는 모습을 본적이 없었는데 산소호흡기를 빼고 천국에서 보자고 이야기했어요.”

아빠랑 동생을 잘 돌보라는 당부를 마치고 다시 산소호흡기를 쓴 이성윤 씨는 다시 눈을 뜨지 않았다.
머리로는 죽음이라는 것을 아는데 마음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아 이별하는 동안 눈물조차 흘리지 않았던 그는 동생과 아빠를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슬퍼할 여유도 없었다. 일곱살인 동생 브라이언 군은 그같은 상황을 알기에 너무 어렸다.

3년 후 이봉열 씨가 새어머니 박경애 씨와 재혼을 하고 나서 또 다른 변화를 경험해야 했던 그레이스 김 씨는 새로운 가족에 적응해야 했다. 10대라는 민감한 시기에 큰 변화를 겪으며 힘든 시간을 신앙의 힘으로 이겨낸 그녀. 그런 가족에게 이봉열 씨의 백혈병 진단은 또 다른 시련이었다.

현재 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남동생 브라이언은 아버지의 소식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일을 통해 “다시 옛날 엄마를 잃었을 때가 기억이 나는지 브라이언은 많이 불안해했다”고 김 씨는 말했다.

이봉열 씨와 박경애 씨 사이에 태어난 막내딸 헤나 양은 이제 열 살이다. 정확히 김 씨가 엄마를 잃었던 때와 같은 나이이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다는 그는 “헤나가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고 전했다.

헤나 양도 조금씩 변화를 겪고 있다. 이봉열 씨가 방사선 항암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예전에는 그냥 아빠에게 덥석 안기기를 좋아했던 막내 딸은 이제는 손을 씻어야 아빠를 만질 수 있다. 밖에서 돌아온 후 아빠에게 가기 위해서는 꼭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방사선 항암치료가 면역력까지도 죽이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불고 있는 골수기증 등록운동

그러나 이런 고통의 시간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먼저 이봉열 씨가 신앙의 힘으로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새어머니 또한 남편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박경애 씨는 이 일을 겪으면서 막내 딸 헤나의 나이에 겪었던 김 씨의 고통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며 둘은 어머니와 딸로서 서로를 향한 사랑이 더욱 깊어졌다.

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온 동생 브라이언은 부모의 모습을 보면 차츰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다. 이봉열 씨를 제외하고는 가족 중 유일한 남자라는 사실은 브라이언을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하고 있다.

이제는 새어머니를 위로할 정도까지 가족을 지키는 남자가 되어 가고 있다. 이런 노력은 하나 둘씩 주변의 도움으로 이어졌고, 노스 캐롤라이나의 한인 교회들을 중심으로 골수기증 등록운동이 일어났다.

지난 6월 12일 노스 캐롤라이나 Raleigh에서 미국계 아시안들이 행사를 가졌고, 6월 19일에는 크리스찬 커버넌 교회, 6월 27일에는 노스 캐롤라이나 Greensboro 지역 3곳의 한인 교회에서 골수기증 등록행사가 진행됐다.

또한 지난 7월 초, 세계 유학생 선교운동 단체인 ‘코스타’가 열린 시카고에서는 코스타 행사 중 골수기증 캠페인이 진행돼 한인 유학생들의 많은 참여가 있었다. 달라스에서는 7월 18일 뉴송교회, 25일 영락장로교회가 이봉열 씨를 살리자는 운동에 참여했다.

오는 8월 15일에는 세미한 교회, 22일에는 이봉열 씨 소식을 접하기 전 이미 골수기증 등록운동을 준비한 달라스 중앙연합 감리교회까지 달라스 시민들의 생명을 살리겠다는 마음이 적극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축복을 받은 것 같다”는 그레이스 김 씨는 “달라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런 움직임이 정말 감격적이다”라며 감사를 전했다. 그는 기회가 되는 한 달라스로 와서 골수기증 등록운동 자원봉사자로 일할 예정이다.

“건강하기 때문에 백혈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젊지만 백혈병에 걸려 골수기증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김 씨는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이기에 나의 일이 될 수도 있다”며 골수기증 등록운동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골수기증에 대한 편견과 오해 대신, 진실을 선택할 때 한 생명이 살아날 수 있다”는 그는 한인들의 참여를 간절히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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