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과 멀어져 가는 러시아 변방 고려인
조국과 멀어져 가는 러시아 변방 고려인
  • 최명철 특파원
  • 승인 2010.08.16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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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 차별 속 고려인 연결망 단절"

`카레이스키' 박비탈리씨 "생전 한국 가고파"

`고려인 3세'인 박비탈리(60)씨는 반평생 이곳 저곳을 떠돌다 1978년에야 러시아 남서쪽 아디게야공화국의 수도 마이코프에 정착했다.

1937년 스탈린의 소수민족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을 때 박씨의 가족은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로 갔다.

이주 과정에서 큰아버지를 잃어버렸고, 그를 찾으려 가족은 박씨가 13살 때 다시 체첸으로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대륙을 횡단하며 떠돌아다니던 삶은 박씨가 28살이 되던 해 이곳 러시아 변방 도시에 짐을 풀면서 마침내 끝이 났다.

14일(현지시간) 만난 박씨에게 한국은 영원한 조국이다. 서툴지만 우리 말도 곧잘 구사한다. 1982년 부모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집에서는 한국어로만 대화를 했다고 한다.

그는 "한국 말을 들으면 100% 이해하지 못해도 말은 다 통한다"고 했다.

박씨 자녀도 한글을 읽고 쓸 줄 안다. 박씨는 "본인들이 원해서 한글을 배우도록 했다. 일본어와 중국어, 한국어 책을 구해 스스로 배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씨와 같은 이곳의 고려인은 세대를 거듭하며 `내 뿌리는 한국'이라는 사실만 기억할뿐 조국의 역사, 문화와는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다.

대표적인 민요 아리랑도 곡조는 알지만 가사를 몰라 부르지 못하고, 탈춤이나 사물놀이 등도 접해본 적이 없다.

그나마 영화나 인터넷을 통해 조국에 대한 갈증을 해결하는 것이 전부였다.

박씨는 "한국은 한반도에 있고 남북이 전쟁으로 갈라져 있다. 한글은 한문보다 복잡하지 않아 배우기 쉽다"고 한국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얘기했다.

하지만 그에게 `국치 100년'을 묻자 "할아버지, 할머니 등 어르신들이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많이 이야기했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한 나라였는데 한반도가 작아서 일부를 일본으로 보냈다'고 한 이야기가 기억난다"며 다소 엉뚱한 대답을 했다.

이처럼 조국과 멀어지는 것은 박씨가 사는 마이코프에는 고려인 사이의 연결망이 단절됐기 때문이다. 이곳에 정착했던 고려인들이 하나둘씩 대도시로 떠나면서 지금은 20∼30가족, 140여명만 남았다.

승용차로 2시간 떨어진 인근 도시 끄라스노다르에 1천여명이나 되는 고려인들이 연합회를 형성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렇게 고려인이 이곳을 떠나는 데는 보이지 않는 차별도 작용하고 있었다.

박씨는 "아디게야인과 한국인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당연히 일자리는 아디게야인에게 돌아간다. 일자리 말고도 불이익을 당할 때가 많다"며 `카레이스키'의 힘겨운 삶을 털어놓았다.

그래도 박씨는 조국에 대한 동경을 가슴 속 깊이 품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TV로 한국 소식을 접할 때면 강한 친근감이 든다. 러시아에서 한국산 자동차나 전자제품 이야기가 나올 때면 `우리 형제들이 만든 것'이라며 자신 있게 소개한다"며 "(여기 사는 고려인은) 모두 다 마찬가지겠지만 기회가 되면 생전에 한국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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