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백두산에서 생각나는 것들
[시론] 백두산에서 생각나는 것들
  • 논설위원실
  • 승인 2010.08.17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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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은 예부터 한국인에게 인생에 한번 꼭 가보고 싶은 산이었다. 백두산에 정계비가 세워진 지 약 50년 뒤에 백두산 기행을 했던 서명응(徐命膺 1716-1787)은 임금이 내리는 홍문관 수찬 벼슬을 세 번씩이나 사양한 죄로 갑산으로 귀양을 가면서 "내가 아직 하지 못한 일이 세 가지로, 그 하나는 「주역」을 읽는 일이며, 하나는 백두산을 구경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금강산 유람을 하는 것인데, 이번 유배지가 마침 백두산 아래인 것은 하늘이 백두산 구경을 이루어주시기 위함"이라고 썼다.

한민족에게 백두산이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산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백두산이야말로 "이 나라 산 줄기의 아비"(古山子金正浩)요, "우리 종성(種姓)의 근원이자, 우리 문화의 연원이고, 역사의 포태(胞胎)"(六堂 崔南善)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 나라 잃은 백성으로 단군탄강의 성지요, 강역산하의 조종(祖宗)인 백두산에 오르는 감회는 더욱 각별하고 애틋하였다. 최근 내 나라, 내 강토를 밟고서가 아니라 중국 쪽으로 백두산을 오가면서 한국인들이 느끼는 감회 또한 유다를 수 밖에 없다.

언제 어디로 오르건 감격스런 백두산 풍경

언제, 어떻게 오르건 백두산 여러 봉우리와 그에 둘러싸인 천지의 신비스런 모습을 보고 감격하지 않는 한국인은 없다. "정오에 산 꼭대기에 올랐다. 순간 높은 절벽이 사위에 솟고, 바위 봉우리가 숲처럼 열립(列立)하여 병풍처럼 펼쳐진 것이 마치 큰 봉황새가 날아오르는 듯 하였다."(朴琮 1735~1798, 白頭山遊錄) "산꼭대기에 도착하매 천지의 물빛이 쪽보다도 더욱 푸르고, 거울보다도 더욱 고요하여, 창공에 배회하는 백운의 그림자와 전후좌우에 삼엄하게 버텨선 고봉준령의 머리가 그 속에 비치는 그 장엄한 풍경은 오직 감격을 일으킬 뿐이었다."(동아일보 1921년 8월 21일자, 동아일보탐험대). 과연 안개와 비구름 걷히는 연봉과 천지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새 하늘, 새 땅이 열리는 곳이 바로 여기로구나 싶을 만큼 신령스럽기까지 한 것이다.

내가 이러저러한 인연으로 너 댓 차례나 백두산에 오를 수 있었고, 그때마다 천지의 선연한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더 없는 행운이었다. 비바람 끝에 천지가 열릴 때 우리 민족이 바로 천손(天孫)일지 모른다는 황홀한 신비감에 젖기도 했다. 백두산이야말로 한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땅이며, 한민족의 역사와 숨결이 배어있는, 뗄래야 뗄 수 없는 한민족의 땅이라는 것을 다짐하곤 했다.

그러나 지난 7월, 백두산 종주산행을 하면서는 백두산은 한민족의 땅, 그 이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전에는 오직 천문봉 쪽으로 바로 오르거나, 장백폭포를 거쳐 천지 달문에 이르는 북파(北坡) 길만이 개방되어 있더니, 언제부터인가 서파와 남파 길도 열렸다는데, 이번에 나는 서파 쪽으로 올라 북파 쪽으로 내려오는 종주산행길을 걸으면서, 백두산을 조금은 더 깊고 넓게 오감할 수 있었다. 백두산이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서파 쪽에는 백두산이 화산폭발할 때 거대한 용암이 휩쓸고 지나간 금강대협곡이 있다. 사람들은 비록 규모는 작지만 미국의 그랜드캐년을 방불케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천지 주변의 능선을 따라 피어있는 야생화는 그 종류와 색깔도 다양하려니와 펼쳐진 천상화원의 그 크기와 아름다움에서 내가 보았던 지상의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백두산은 그 안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그 크기와 깊이를 알 수 있는 산이었던 것이다.

별유천지 백두산은 한민족의 땅, 그 이상!

솔직하게 말한다면, 산의 크기와 그 유장함을 놓고서는 백두산보다는 장백산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산이었다. 서파에서 북파를 향하여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면서, 오른쪽으로는 천지를, 왼쪽으로는 저 멀리 만주벌판을 보는 낮은 장쾌하기까지 했다. 비산비야(非山非野) 끝없이 펼쳐진 평원은, 과연 마음껏 말 달리고 싶은 유혹을 저절로 일게 했다. 백두산은 단순한 하나의 산이 아니라, 거대한 하나의 세상, 별유천지였던 것이다.

청 태조의 전설이 서려있는 서파 쪽의 왕지(王池)는 백두산이 우리만의 성지일수는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시대에 따라 선비·오환·실위·몽골·읍루·말갈·물길·여진·만주족으로 불리웠던 동호(東胡), 숙신(肅愼)족과, 부여·고구려· 발해를 세웠던 우리 예맥족, 그 모두에게 백두산은 각기 나름대로 의미있는 산이었다. 한반도의 6배가 넘는 만주 땅에서 일어난 세력들은 혹은 너무 강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존재를 잃어버렸는가 하면, 약해서 정복되거나 문화적으로 중국에 동화되었다. 백두산은 한민족의 존재 역사와 그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백두산은 또한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묻고 있다. 그리고 백두산은 그 누구도 배타하지 않고, 독점적으로 그 누구의 땅도 아닌, 그 둘레에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는 여러 민족, 모든 사람들의 신성한 땅일 수 밖에 없다. 홍익인간의 정신이 계시된 땅이다. 남북 민족은 말할 것도 없고, 여러 민족의 모든 사람들이 더불어 함께, 두루 인간을 이롭게 할 홍익문명을 이루어 나가라고 묵언으로 말하고 있다. 토문에서 보았던 여위고 왜소했던 북한 병사의 모습과 함께, 북한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곳도 백두산이다. 그러고 보면, 백두산은 하늘로, 세계로, 미래로 나아가야 할 역사의 원천이자 열려있는 창구다.

글쓴이 /김정남
· 언론인, 본지 고문
· 前 평화신문 편집국장
· 前 민주일보 논설위원
· 前 대통령비서실 교문사회수석비서관
· 저서 : <진실, 광장에 서다- 민주화운동 30년의 역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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