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매달려 미 국회 ‘위안부 결의안’ 끌어내
13년 매달려 미 국회 ‘위안부 결의안’ 끌어내
  • 이종환 기자
  • 승인 2010.08.23 18: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애넌데일의 이문형 사장

 
이문형 사장은 워싱턴 DC 지역 한인타운인 아난데일에서 형제트로피라는 기념품점을 경영하고 있다. 교회나 학교, 단체들에서 쓰는 다양한 상패와 기념품을 제작 공급한다.
이태미 한미문화예술재단 이사장(남부매릴랜드 한인회장)을 따라 이문형사장의 가게를 들렀을 때만 해도 그가 해온 일에 대해 잘 몰랐다.

하지만 얘기가 시작되자 귀가 솔깃해졌다. 기념품 얘기가 아닌 다른 얘기였다.
2007년 7월 30일 미 하원은 만장일치로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일본정부는 과거 조선과 중국 등지의 부녀들을 강압적인 방식으로 위안부로 끌고가 성적 노리개로 삼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일본 총리가 이 사실을 공식 성명으로 인정하고, 사과하기를 권고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이었다.

미 하원이 이 같은 결의는 이어 미상원과 캐나다 국회의 위안부 결의안으로 이어져, 일본 정부가 과거에 대해 사죄하도록 압박하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이는 워싱턴 DC에 있던 한인들의 오랜 노력의 결과였다는 점을 사실 이문형 사장을 만나기 전까지는 잘 몰랐다.

“92년 9월이었습니다. 일제때 정신대로 끌려갔던 황금주 할머니가 워싱턴의 우리 교회에 와서 간증을 했습니다. 나는 그의 얘기를 눈물을 그칠 수 없었습니다. 힘없는 민족의 아픔을 느꼈습니다”
그해 12월 워싱턴에서 정신대문제대책위가 발족했다. 지금은 플로리다로 이사간 이동우 권사가 초대에서부터 4대까지 회장을 맡았다.

이문형사장은 부회장을 맡아 장장 13년을 이 일에 매달렸다.
“매주 목요일이면 워싱턴의 국회의사당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전시도 하고 의원들을 상대로 설득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2-3명이 1개 조로 해서 나눠서 국회의원 사무실을 다 돌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정신대 생존자 112명의 워싱턴 방문을 성사시켰고, 이윽고 미 하원과 상원의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켰다는 얘기다.

“일본측은 이를 한일 양국의 문제라고 주장했지죠. 미국 국회가 결의할 것이 아니라고 집요하게 로비했으나, 결국 우리가 이겼습니다. 인권과 관련된 반인류적 범죄라는 우리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지요”
2007년의 위안부 결의안이 워싱턴 DC에 사는 우리 한인들이 93년부터 시작한 14년에 걸친 노력의 결실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이문형 사장은 1943년생이다. 1970년 독일에 광부로 가서 8년을 지내고, 간호사이던 부인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오랜 이민생활 탓인지 “애국가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는 그는 북버지니아한인회가 하는 한사랑종합학교 이사를 맡아 한글학교 운영에도 오래 기여해오는 등 한인 커뮤니티에 큰 애정을 쏟아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 11(한신잠실코아오피스텔) 1214호
  • 대표전화 : 070-7803-5353 / 02-6160-5353
  • 팩스 : 070-4009-2903
  • 명칭 : 월드코리안신문(주)
  • 제호 : 월드코리안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다 10036
  • 등록일 : 2010-06-30
  • 발행일 : 2010-06-30
  • 발행·편집인 : 이종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호
  • 파인데일리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월드코리안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k@worldkorean.net
ND소프트